나의 꿈이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오해만 풀려도 신앙을 지키기가 한결 쉬워진다.
Q.T. 책에 언제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라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생각할때 나는 은연중에 '폭력성'을 떠올린다는 걸 알았다. 하나님과 왕의 이미지가 겹쳐 보일 때, 하나님과 주권자라는 말을 겹쳐 생각할 때 나는 '폭력'을 떠올렸다. 그래서 왕이신 하나님,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달갑지 않았다. 이 말들이 나의 소망이나 나의 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내 인생을 조정하는 분이라는 말로 해석되었다.
인간 세상에서 보통의 왕들은 그렇다.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남의 인생을 조정한다. 주인은 자기의 꿈을 이루는데 자신의 종을 희생시킨다. 인간 세상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다 보니 이런 터무니없는 오해들이 쌓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폭군'이 아니며, 폭력적이지 않으시다.
아브라함 이야기를 보며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린 시점이 있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맞다.
하지만 '이삭'은 사실 아브라함의 '사적 소망'이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재미있는 선후 관계가 발견된다.
창세리 15장 1절.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신다.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나타나신 하나님이 금방 떠나기라도 할 것처럼 대뜸 이런 말을 꺼낸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2절)
하나님이 나타나시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간 아브람의 말을 직역하면 이런 말이 아닐까.
"하나님 저 복 좀 주세요. 저는 아들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숨도 안 쉬고 다음 말을 이어간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나만의 번역 : 하나님이 아들을 안 주셔서 복 주셔도 물려줄 사람이 없습니다.)
공손하게 무례하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브람에게는 '세대'를 이을 자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땅도, 소유도 풍족해졌지만, 딱 하나가 없었다. '자녀'. 아브라함은 인간 된 마음으로 자녀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하시자마자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자기의 필요를 구한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5-6절.
말씀을 읽는데, 머리가 시원해졌다. 말씀이 해석되는 것 같았다.
'실현 가능성 0%였던 나의 소망이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는 순간 100%의 가능성이 된다.'
아브람 부부는 불임 상태이거나, 난임을 겪었던 것 같다.
'이삭'은 아브람 부부의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소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자마자 숨도 돌리지 않고 인간적 소망을 꺼내놓는 아브람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브람의 소망을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시켜 주신다.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은 그 말씀을 지키실 수밖에 없는 분이다. 말씀하신 이상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아브람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성취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말씀을 알아듣고 전율했다. '하나님이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소망을 무시하지 않으시다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에 비하면 자기 씨가 필요하다는 아브람의 자녀 계획은 무시해도 될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개인적인 소망을 자신의 더 멋진 비전에 껴넣어 주신다.
하나님은 나의 보잘것없는 계획표를 자신의 크고 놀라운 계획표 안에 포함시켜 주신다.
0%의 가능성을 100%의 가능성으로 만드시는 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
모두 각자의 소망이 있다. 누구는 그것이 취업이 될 수도 있고, 아브람처럼 자녀를 얻는 일일 수도 있고, 결혼을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하나님은 인간의 소망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소망을 아시고, 그 소망을 성취할 방법을 고민하신다.
소망. 때때로 헛된 망상처럼 느껴지는 말. 가끔은 허영이 투영된 야망과 헷갈리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안에 소망이 어느 형태로 남아 있든 걱정할 필요 없다. 내 소망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면,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그 소망을 하나님의 소망으로 대체하실 것이다.
지금 사방에 욱여쌈을 당한 것 같은 상황이라도 소망을 포기하지 말라.
불가능한 나의 소망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은 하나님께 내 소망을 던지는 믿음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6절)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호와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의 소망을 이루셨다. 아멘.
성경의 '기적'의 책이다. 새로운 교회 한홍 목사는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성경에서 기적과 죄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