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떠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아내를 만나 결혼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마흔다섯. 나는 마침내 하나의 이정표에 도달했다.
순자산 33억 원. 숫자로만 보면 대한민국 상위 1%. 단순한 상징을 넘어, 지금의 소비 수준을 유지해도 자산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느는 구조.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자유’의 조건을 갖추었다.
오랫동안 막연히 꿈꾸기만 했던 삶.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삶의 입구에, 나는 서 있다.
나는 이제 회사를 떠나려 한다. 유한한 인생,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뭔가를 소모하며 버티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경험하는 삶.
설렘과 기대 속에 나를 다시 던져보고 싶은 욕망.
하지만… 아직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동안 조기 은퇴를 실현한 이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
대부분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소진이 은퇴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동기였다.
싫은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자유.
그것이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직장 생활은 보통의 삶과는 조금 달랐다.
정년이 보장되고, 야근과 회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8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유연한 근무,
무엇보다 전 세계를 돕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
그런 곳에서 나는 ‘워라밸’을 실현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 삶을 내려놓기가 참 어렵다.
경제적 자립으로 이미 떠날 자격은 충분한데,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은, 나 자신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아직 다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 속에 서 있다.
퇴사를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고, 그 과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여정을 미래의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누군가가, 나처럼 혼란스러울 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