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수가 생명을 바꾼다는 것을 알기까지
“안녕하세요, 신규 간호사 김민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나의 응급실 첫 출근이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발을 들였던 시기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였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선배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간호복 위에 방호복을 덧입고, 마스크와 모자, 장갑까지 착용해 눈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직 2월의 차가운 겨울이었지만, 그 옷 안에서 선배님들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고 계셨다. 그 장면은 나에게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았다.
그 순간, 종합병원 응급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이곳에서 과연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게 되었다.
입사 면접에서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다소 가볍게 “병동이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예의가 없어 보일 수도 있었던 답변이었다. 그런데도 간호부장님은 나를 꿰뚫어 보신 듯, “병동보다는 응급실에서 배워보는 게 좋겠다”며 나를 응급실로 보내셨다. 그 순간을 떠올리니,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첫날 나는 신규 간호사 지침서와 응급실 실무 지침서를 들고,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책을 보며 공부했다. 환자가 들어오면 선배님들을 따라다니며 한 손에 수첩을 꼭 쥐고 메모를 했다. “처음 한 주는 구경만 하면서 잘 따라오라”는 말에 안도했지만, 이어진 말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독립 준비해야 해요. 윗 선생님 하는 대로 그대로 해야 하고, 못 하면 그때부턴 뭐라 듣는 거니까, 잘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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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함 속에 찾아오는 긴장
평소의 응급실은 때로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 보였다. 환자의 중증도도 그리 높지 않았고, 대부분은 간단한 처치 이후 귀가하거나 입원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잔잔할 수만은 없었다. 요양원에서, 혹은 119 구급차를 타고 들어오는 환자들 중에는 혈압과 맥박이 불안정하고 의식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평소의 고요함 뒤에 숨어 있던 긴장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듯했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119를 타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한 환자를 맞이한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환자의 상태를 스스로 사정할 수 있는 도구—예를 들면 동공 반사나 GCS 사정 같은 기본적인 평가조차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선배 간호사 선생님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무엇보다 그때 선배님이 해주셨던 말이 오래 남았다.
“선생님, 여기가 환자가 적다고 해도 중증 응급환자 공부 안 하면 안 돼요. 진짜 큰 문제가 있는 환자를 우리가 환자사정 하나 못 해서 잃을 수도 있어요.”
나는 그저 “설마 그런 환자가 또 오겠어”라는 생각에 피식 웃고 넘겼지만, 그 말은 내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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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기의 순간
엑팅 독립을 하고 맞이한 지 2주 차, 나의 첫 단독 근무였다.
이브닝 근무, 저녁 식사 전쯤 한 환자가 기력이 뚝 떨어진 채로 내원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었고,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불안했던 나는 환자 사정보다 먼저 선배님을 찾았다.
“선생님, 환자 상태가 좀 이상한데 봐주실 수 있으세요?”
선배님이 환자를 보시더니 곧바로 목소리를 높이셨다.
“왜 바로 안 데리고 들어왔어? 빨리 눕히고 바이탈 체크하면서 당까지 재야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서둘러 바이탈과 혈당을 측정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혈당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고, 환자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급히 과장님을 부르고, 과거력과 현재 상태를 보고하려 했지만 목이 떨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결국 메모해 둔 사정지를 그대로 선배님께 드린 채, 나는 처치에 투입되지 못하고 옆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웠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의식을 잃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패션 간호사’처럼 느껴졌다.
이후 환자에게 당 주사가 투여되면서 상태가 회복되었고, 다행히 귀가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정리된 후, 선배님의 말은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찔렀다.
“민혁 선생님, 여기가 아무리 안 바쁘다고 해도 중증은 반드시 와요. 저렇게 혈당 조금만 떨어져도 환자는 금방 쓰러진다고요. 우리가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그게 그대로 환자 생명으로 이어져요. 지금 CPR이라도 터지면 준비할 수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환자는 오면 오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날의 선배님 말씀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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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배운 것
“너 왜 응급실에 왔어?”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솔직히 “부장님이 보내서요”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선배님의 눈빛은 그런 대답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환자 처치와 간호를 배우고, 치료하려고요.”
그러자 선배님은 단호하게 물으셨다.
“그래, 그거야.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안 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력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선배님의 말은 날카로웠지만,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네가 못한 걸 왜 나한테 사과하니? 환자한테 미안해해야지. 네가 모르고, 못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모두 환자에게 돌아가는 거야. 실수 들킬까 눈치 보지 말고,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해.”
그 말은 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사실 나는 작은 실수들을 종종 했다. 포도당 수액에 약물을 섞어야 하는데 일반 수액에 넣는다든지, 기본적인 실수들이었다. 다행히 그때마다 선배님이 잡아주셔서 환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순간순간의 허술함이 결국 환자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곧 내가 간호사로서 책임감을 갖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의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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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나는 아직도 그날의 부끄러움을 기억한다. 선배님의 말처럼, 내가 부족했던 순간은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환자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며 살아간다. 응급실 간호사로서의 무게감은 그렇게 내 어깨에 얹혔다. 그리고 그 무게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