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거울: 어느 이방인의 초상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를 읽고 떠오른 나의 기억 속 장면들

by 강마담


장면 하나, 소음.


보수적인 백인 동네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에서 미국 유학 첫 해를 보내고 있던 시절 이야기. 당시 미국의 여느 동네처럼 내가 살던 대학가 동네에도 <반즈 앤 노블>이니 <보더스>니, 카페를 낀 대형 서점 체인이 있었다. 도서관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그 어중간한 분위기가 좋아서 나는 종종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곤 했다. 그 지역의 가장 유명한 거주자 중 한 명인 작가 존 그리샴도 거기 가끔 출몰한다더라 들은 터라 어쩌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양반이랑 마주치게 될 지도? 이런 상상을 하며.. 그날 역시 중국인 친구와 그곳에 같이 앉아 있었고, 전화가 걸려와서 나는 별생각 없이 한국어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길게 통화한 것 같지도 않고, 내 목소리가 그다지 큰 편도 아니었는데, 어떤 점잖은 백인 할머니가 다가와 나를 제지했다.


“네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지장을 주고 있잖아. 전화 통화는 밖에 나가서 하도록 해.”


순간 얼굴이 확- 달아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에 앉아 책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중국인 친구는 더 당황해했다.


“이 안에서 네가 젤 조용히 말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나의 통화 목소리보다 주변 테이블에서 대화하고 있던 목소리들이 훨씬 더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다고 생각한다. 미국계 로펌 상하이 지사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유학 온 그 친구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당장 가서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친구만큼 영어가 자유롭지 못했고, 당장 그 순간 누가 쳐다볼까 봐 알 수 없는 수치심에 이미 위축되어 버린 나는 그냥 그곳을 피해 버리고 싶었다. 사람 좋아 보이고 교양 있어 보이던 저 백인 노인 이웃들이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를 속으로는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모르는 언어,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대화가 아니라 ‘소음’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서구에 대한 선망과 동경은 없는 편이라 생각했건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할리우드 영화나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특정 몇 개국 백인 위주 세계관을 나도 모르게 나의 세계인 양 내면화시키며 일방적 친숙함을 키워 왔던 걸까. 막연히 그 세계의 '보편적' 구성원의 일원이라 믿었던 내가, 현실에서는 '소음'을 내는 이방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한국의 지하철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대화 소리, 이태리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던 현지인들의 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모르는 낯선 언어라 유독 더 큰 볼륨으로 내 귀에 와서 꽂히는가 보다, 그때마다 그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장면 둘, 거울.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영국 살던 시절,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영국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파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게 되었다. 이미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끝에 환승 편을 기다리느라 지친 상태에서 비행기에 올라탄 직후, 뒤늦게 탑승한 이들이 꾸역꾸역 기내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고, 복도 쪽 좌석에 이미 자리 잡고 앉아 있던 나의 눈높이는 아버지와 함께 걸어 들어오던 6세 남짓 꼬마와 마주쳤다.


“니하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꼬마는 수줍은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 짧은 찰나에 굳이 또 모든 동양인이 다 중국인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나 보다.


“Oh, I’m not Chinese, I don’t speak Chinese.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 중국어를 모른단다)”


딴에는 한껏 자상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고 했는데, 꼬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기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가 막 웃으면서 나에게 “He can’t understand English. We’re French. (얘가 아직 영어를 몰라요, 우리는 프랑스인들이거든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으윽- 나도 그 꼬마랑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 아니, 똑같지 않다. 그 꼬마는 그저 자기가 유일하게 아는 동양 언어로 낯선 동양인에게 인사하고 싶었던 것뿐이었을 텐데, 나는 나의 '가르침'을 위해 영어를 '보편적 언어'로 전제하고 말해버린 것.


언젠가 영국인 지도교수가 중국에서 열리는 학회 안내문을 보여주며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을 한 번 발표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네에? 법 체계도 아예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무엇보다 중국어 전혀 못하는데요?" 했더니 흠칫 당황한 눈치. 아니, 지금 설마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끼리는 비슷한 언어로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거? 동양인이라고 다 중국말할 줄 아는 거 아니고 서양인이라고 다 영어 하는 거 아니라고! 옆에 붙어 있는 이웃 나라말이라고 막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라고!! 속으로 분개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 한층 더 부끄러워졌다.



해외에서 지냈던 내 삶의 시간들을 잘라 베어내어 단면을 들여다보면, 타인의 무지와 편견에 상처 입고, 나의 무지와 편견에는 관대했던 모순적인 순간들이 피카소의 큐비즘 회화처럼 덕지덕지 패치워크 되어 있을 것 같다. 얼기설기 막연하게 이론으로 공부했던 것보다 단 한 번이나마 타인의 처지에 나를 놓아볼 수 있는 경험들이 더 강력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것을 돌이켜 볼 때, 어쩌면 이런 크고 작은 성찰의 기회에 노출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지적으로 게으른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무의식 속 '가짜 보편성'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세계와 불화를 겪으며 깨지고 다시 꿰매어지는 여정. 그렇게 나 자신과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알고 싶어 지게 되는 그 길을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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