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택 Feb 04. 2024

휠체어 승객을 위한 기내 화장실

설거지는 나의 몫이 되었다

  2023년 10월 충칭에서 한 달 동안 머물다 돌아온 아내는 입국한 다음날 서울나우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수술을 하고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 나는 병원에서 아내 곁을 지켰다.


  아내는 충칭에서 이슬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받쳐들고 외출했다. 시 중심의 해방비 주변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왼쪽 손목의 골절상을 입었다. 충칭에서 간단한 치료를 하고 한국에서 수술한다고 입국했다.


  코로나 이후 충칭-서울 구간은 아시아나항공은 운항하지 않고 에어차이나만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차이나 항공편에 자사 코드를 붙여 판매한다. 이를 코드쉐어(Codeshare)라 한다. 자사의 항공기를 운항 노선에 직접 투입하지 않고도 마치 투입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누린다. 항공사 간에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공동운항 방식이다.


  아내가 입국하는 날 인천공항 1청사의 1층 입국 게이트 E에서 아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사 여직원이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아내는 거기에 앉아서 무릎에 올린 가방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해맑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왼손에 깁스를 했는데 석고 깁스였다. 예전에 초등학교 때 짝꿍이 팔을 다쳐 했던 바로 그 석고 깁스였다. 아직도 저런걸 하나? 어쨌든 다친 모습을 보니 속이 아팠다.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이 사람이--"라며 말을 흐렸다. 상냥하고 친절한 여직원은 아내와 나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다시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나도 고개 숙여 인사하며 고마움을 전달했다.           


  항공 여행을 하다 보면 기내에 휠체어 승객이 탑승하는 것을 본다. 동반자 없이는 거동이 안되는 승객들은 탑승 시작 전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다른 승객보다 먼저 탑승한다. 하기할 때는 반대로 맨 마지막에 하기한다. 탑승 및 하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그러한 절차를 따른다.

 

  2023년 5월 뉴욕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노부부를 기억한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부축하고 통로를 이동한다. 좁은 화장실 문을 열고 아내를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밖에서 한참을 지키던 남편은 아내가 안에서 인기척을 하면 다시 부축해서 좁은 통로를 통해 조심조심 한걸음 한걸음 자리로 돌아온다. 돌아와 자리에 앉는 것 역시 아까 일어설 때처럼 어렵고 힘든 일로 보였다.


  노령인 남편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를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힌 이후에는 아내의 머리를 빚으로 다듬어주고 또 팔과 어깨를 주무르며 애정을 전한다. 땀을 흘리며 정성껏 아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 동안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도 “기내 화장실 문이 좁아 불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 나의 공감은 거기에서 멈췄다. 미국 교통부(DOT)가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항공사는 앞으로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 기내 화장실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Pete Buttigieg(미국 교통부 장관)은 “오늘날 수백만 명의 휠체어 사용자는 항공기 탑승 전에 스스로 체내의 수분을 배출하거나 아니면 항공 여행을 피하거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기내 화장실을 더 크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휠체어 승객이 다른 승객과 동일한 품격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라며 휠체어 승객의 기내 화장실 접근 및 편의성을 향상하겠다고 했다. (USA TODAY. July 26, 2023)  


  지금까지 규정은 통로가 2개인 대형 항공기에만 접근이 수월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수년 동안 항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B737과 A320 같은 단일 통로 항공기(Single-aisle aircraft)도 점점 더 먼 거리를 운항하게 되었다.

 

  이제 2026년부터 신규 도입되는 단일 통로 항공기의 화장실은 접근성 기능을 향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벽 손잡이, 접근 가능한 수도꼭지 및 제어장치, 호출 버튼 및 도어 잠금장치, 휠체어 통행에 대한 장애물의 최소화, 사생활 보호를 위한 시각적 칸막이 등이 포함된다.


  2033년에 주문하거나 2035년에 인도를 시작하는 125석 이상의 신형 단일 통로 항공기의 경우는 완전히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설비해야 한다. 장애가 있는 승객이 기내 화장실에서(필요한 경우 동반자의 도움을 받아) 접근이 가능하고, 출입하며 모든 화장실 시설을 사용하고 기내 휠체어를 이용하여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규모의 화장실을 하나 이상 구비해야 한다.


  미 DOT 규정은 이미 운항 중인 항공기에 대해서는 개조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규정이 발효된 이후에 항공사가 기내 인테리어 개조를 위해 기존의 기내 화장실을 교체하는 경우는 이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휠체어 승객과 동반 가족의 항공 여행이 한층 수월해지겠다.


  아내가 충칭에서 휠체어를 타고 입국하던 그날부터 설거지는 나의 몫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럴 것같다. 가사노동에 대한 나의 잠재력이 드러났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미국에 정착한 엄마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