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Jan 29. 2024

볼일보고 손 안 씻는 사람

최불암시리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화장실에 갔다 나올 때 항상 손을 씻던 최불암이 어느 날 씻지 않고 나오자 물었다. 왜 지금은 손을 안 씻었냐고. 그랬더니 최불암은 오늘은 화장실에 휴지가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최불암시리즈는 썰렁했지만, 솔직히 난 이 유머는 재미있어했다.


한 가지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난 볼일 본 후 손을 씻어야 한다는 걸 20대 후반에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라 공무원이 되기 전에 다녔던 IT 회사를 말한다) 그때 내 뒷자리엔 불평불만이 많은 대리님이 계셨다. 그 대리님이 자주 지적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손 씻는 거였다.


"볼일을 봤으면 손을 씻어야지, 우리 회사는 손을 안 씻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손을 씻고 있는 걸 보면 자기도 씻어야 한다는 걸 왜 모를까. 회사에서 그러면 매너가 없는 거야. 그 손으로 너랑 악수한다고 생각해 봐. 아휴. 더러워. 너는 당연히 손 깨끗이 씻지?"


사실 급하면 손을 안 씻었던 적도 있었고 그렇게까지 꼭 씻어야 하는지 이해는 안 됐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나까지 불똥이 튈까 봐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는 대리님께 걸릴까 봐 손을 꼬박꼬박 씻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대리님이 없더라도 습관처럼 손을 씻게 되었다.




얼마 전에 (지금 다니는) 회사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은 사람을 봤다. 볼일을 보시고 나오시길래 세면대를 쓰시겠지 싶어 자리를 잠깐 비켜드렸는데 거울만 쓰윽 보시곤 바로 나가셨다. 원래는 남이 뭘 하든 신경을 안 쓰는 게 정상인데, 그날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나 보다. 예전에 대리님이 생각났다. 저 모습을 봤다면 분명 자리에 와서 나에게 투덜거렸겠지.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고등학교에서 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화장실에서 나올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걸 누군가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이었다.


근데 이건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손 씻는 사람을 본다고 나도 꼭 손을 씻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 사람도 최불암처럼 휴지가 없었거나, 손에 튀어서 씻는 걸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즉, 누가 말해주기 전까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손을 씻지만, 마치 대리님처럼 씻지 않은 사람에 대해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꽤 비약일 수 있겠지만 한마디만 더 해보자면,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처음 하는 사람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익숙지 않은 업무에선 실수도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하지 못한다고 혼내는 건 갑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너무 어이없는 실수에 답답함을 느껴도, 절대 밖으로 표 안 내고 최대한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만날 상사나 선배들도 그런 분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