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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Sep 13. 2024

쓸개 빠진 공무원

#1

얼마 전에 담낭(쓸개)염으로 담낭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주 만에 회사에 돌아왔을 때 우리 국 사람들 모두가 환영해 주었다. 나보고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라며 열심히 일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말라고 그랬다. 나에게 0.5인분 밖에 기대하지 않으니 일보단 빨리 몸부터 회복하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내가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었을까.


#2

담낭 절제 수술은 잘 끝났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고열과 복통, 설사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난 의사 선생님께 설사랑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중에 설사에서 세균이 검출된 이후에야 장염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주셨다. 처음부터 내 말을 듣지 않은 선생님이 원망스럽다가도, 환자의 주관적인 말을 다 듣다 보면 제대로 진료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어 이해가 되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민원인은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어 하고, 공무원은 핵심만 듣고 싶다. 그래도 난 환자 말에 귀 기울여 듣는 의사가 좋듯이, 민원인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


#3

여름에 척추/척수 감염으로 입원하는 동안 병가를 오랫동안 썼다. 그리고 연달아 담낭까지 아팠을 땐 남은 병가가 얼마 없었고, 개인 연가를 쓰고 수술을 받았다. (이제 연가도 없어서 내년 걸 당겨 써야 할 상황이다) 솔직히 지금 몇 주라도 더 쉬면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 싶었지만, 공무원이기 때문에 1년에 최대 60일까지 병가를 쓸 수 있어서 퇴원 후 바로 출근했다. 이럴 땐 공무원이 안 좋다 싶다가도, 병가 중에 월급이 다 나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4

오랜만에 보는 사람은 날 못 알아볼 정도로 살이 빠졌다. 장염 때문에 병원에서 며칠간 먹질 못해서였다. 야윈 내 모습을 본 직장 동료들은 이거 산재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다. 그렇지만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담낭염은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워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아 보였다. 누구는 질병휴직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그랬다. 보통은 후임이 올 수 있도록 6개월 이상 휴직을 하는데, 내 병으로 6개월짜리 진단서를 끊긴 어려워 보였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내가 나이롱환자는 아닌 게 증명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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