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붕괴되는 것과 정신이 무너지는 것 둘 중 뭐가 더 잔인할까. 뭐가 더 회복하기 힘들까.
2010년대 초중반, ‘멘탈붕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줄여서 ‘멘붕’이라고 쓰기도 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정신이 혼미하거나, 소위 정신 줄을 놓은 상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통제력을 잃었을 때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점차 사용되는 범위가 넓어져 조금만 당황스러운 상황에도 ‘멘붕’이라는 말이 남용됐다.
사려고 했던 옷이 품절되도 멘붕, 원했던 만큼의 성적이 안 나와도 멘붕, 물을 쏟아도 멘붕, 멘붕, 멘붕, 멘붕……사람들은 참 자주, 잘도 멘탈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붕괴된 멘탈을 아시나요?
하지만 규모 6.7 지진이 있었던 그날 이후, P시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 말을 농담처럼 쓸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가 가라 앉았다. 집들은 뭉개졌다. 많은 사람이 다쳤다. 몇몇은 죽었다. 대부분 낙하하는 간판, 건물의 잔해에 머리를 맞거나 부서진 건물 틈에 끼어있다 운명했다.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몇 천억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붕괴'.
지하 깊은 곳. 지각과 외핵 사이 분포하는 맨틀. 상부맨틀에서 지진파 속도가 불연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꿈틀대던 밤. 저 깊은 곳에서 발생한 단층. 그것이 만들어 낸 지각의 균열과 갈라짐. 지하에 축적된 탄성에너지의 급격한 방출과 그것이 만들어 낸 진동. 거대한 흔들림.
하지만 그것이 흔든 것은 비단 땅뿐만이 아니었다.
지진은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들었고, 그것이 붕괴시킨 것은 아파트나 건물만이 아니었다. 지진은 사람들의 정신을 붕괴했다. 무너진 집이나 건물은 새로 지으면 되지만, 망가진 정신은 좀처럼 복구하기 어려웠다. 멘틀이 붕괴되자 사람들의 멘탈도 자연스레 산산조각 난 것이다.
P시에는 공황장애나 트라우마에 걸린 사람들이 급증했다. 특히 10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 중에서 유독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놀이터에 나가 놀지 못했고, 몇몇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P시 사람들은 우울에 젖어들었고 의욕을 상실했고,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P시의 수험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일주일 연기된 수능을 치렀다. 학생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한 채로 그날 시험에 임해야 했다. 학부모들도 불안하고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인지 그날 하루, P시에서는 소화제와 위장약이 불티나게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과 위산과다로 위경련에 시달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수능 당일 여진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맨틀붕괴와 멘탈붕괴. 이 둘은 어느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수천명의 이재민이 임시대피소로 지정된 체육관에서 먹고 자면서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보금자리 때문에 말 그대로 거리에 나앉은 상황이 된 것이다. 자던 밤 중에 갑자기 천장이 사라진 A씨는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다. 퍽 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는데 부서진 천장의 잔해가 발 밑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질 것만 같아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어쩌다 깜빡 잠이 들면 천장에서 묵직한 철근이 떨어져 A씨의 대가리에 박히는 끔찍한 악몽을 꾸고 또 꿨다.
P시에 있는 H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 B는 지진 당시를 회상하면서 "우르르 쾅쾅하는 굉음에 땅이 솟아 올라서 폭발물이 터진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당시 영상을 보니 정말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겪으니 너무 공포스러웠다는 학생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액션 영화를 좋아했던 B는 더 이상 액션 영화를 즐기지 못했다.
P시는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았다. 시내에는 쾌활한 분위기의 캐롤이 울려퍼지는 대신, 눅눅하고 습한 분위기가 풍겼다. 액션 영화를 즐기지 못하게 된 건 비단 B뿐만이 아니었다. 12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는 '스케일이 다른 액션이 주는 쾌감!'이라는 포스터 문구가 무색하게 P시 시민들에게 쾌감을 주지 못했다. 폭발이 난무하는 영화관 좌석은 텅텅 비었다.
이 해 겨울, P시에는 유독 많은 비가 내렸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P시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남쪽에 위치한 해안도시라 매년 으레 그런 것이었지만, 지진 때문인지 그건 고역이었다. 사람들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소리나 작은 천둥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쿠르릉, 하는 기미만 보여도 책상 밑으로 숨거나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갔다.
사람들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미세한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랐고, 휴대전화도 진동으로 맞춰두지 못했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C영화잡지사에서 온 전화였다. 공포영화를 생존자의 관점에서 분석한 영화 평론이 공모전에서 당선됐다는 전화였다. 남들이 잘 내지 않는 영화 장르를 선택한 전략이 유효했다. 수상까지는 전혀(까지는 아니고 많이) 기대했던 게 아니라서, 오히려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듣는 것처럼 얼떨떨했다. 전화를 건 편집장의 목소리도 축하를 건네는 목소리라기 보다는 방학 숙제를 주는 선생님처럼 묵직하고 차분한 톤이었다.
"저……그래서 말인데, 문지하 씨가 공포 영화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칼럼을 연재해 줬으면 해요. 코너 이름은 미팅에서 같이 의논해봐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학생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잡지의 지면을 꽤 많이 할애한다는 게 C잡지사에서는 이례적인 결정이라는 말을 덧붙여 가며 편집장은 조곤조곤 말했다. 다음 달부터 이주일에 한 편 씩. 마감일은 둘째, 넷째 주 목요일.
나는 인턴 생활과 병행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주일에 한 편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계산과 좋은 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 공모전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기 보다는 얼떨떨한 기분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무턱대고 수락했다가 중간에 안 되겠다며 던져 버리는 책임감 없는 행동은 하기 싫었다. 그럴거면 차라리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맞나 싶다가도 이 기회를 포기해 버리는 건 너무 아쉬웠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리를 하더라도 어떻게든 하면 하게 돼.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언론사 출근까지는 일주일 남짓 남아 있었고, 시험도 끝났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그때까지 짧고 굵게 최대한 쉬기로 했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공포영화와 관련된 책 7권을 주문했다).
지각은 대류하는 맨틀 위에 떠있다. 밀도가 낮은 대륙판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해양판 보다 위에 놓인다. 맨틀이 대류하면서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밀려들어 갈 때, 대륙판에 가해지는 마찰력 때문에 대륙판도 해양판의 이동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구부러지게 된다. 일정 스트레스가 쌓이면 원래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에 의해 해양판과 함께 밀려 들어가던 대륙판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오는 현상 때문에 지진이 발생한다.
내 멘탈은 스트레스가 축적된 맨틀처럼 자꾸 내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고 있었다.
이러다 갑자기 핑! 하고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갈까봐 두려웠다. 어딘가로 억지로 말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조차 제어가 되지 않는 불안감. 이 막연한 불안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계획대로 인턴도 합격했고, 공모전에도 당선됐고, 기말고사도 무사히 마쳤는데. 일이 너무 술술 풀리니 오히려 더 불안한 걸까. 아니면 그냥 요 며칠 연재할 칼럼을 위한 공부랍시고 공포 영화를 몰아 봤더니 정신이 쇄약해진 탓일까. 나는 읽고 있던 '한국 영화 속 등장하는 처녀 귀신의 전형성'이라는 책을 덮고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