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Oct 27. 2024

이방인이 되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오늘 퇴사할게요."             


  




 요 며칠 연신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었더니 어제 내린 비의 여파 때문인지 골목과 도로의 아스팔트가 축축하게 젖어 눅눅한 기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내 기분처럼. 이상하게 그것이 퍽 위로가 되었다. 밤에 비가 왔으면 다음 날 아침엔 땅이 젖어 있어야지, 당연하지. 오후든 다음날이든 습도나 일조량에 따라 언제든, 결국 아스팔트는 다시 마를 것이다.


 어떤 일이 몰아치면 그 일에 젖어 있어야지. 언제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르고 말 거야. 언제까지고 흠뻑 젖어 있을 순 없으니까, 지금 잠시 축축할 뿐이야. 나는 창문을 닫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암막 커튼 사이로 삐져나온 햇살 탓에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아스팔트는 바짝 말라 있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태양이 쨍한 빛을 뿜고 있었고, 골목길엔 건물과 전선의 그림자가 아스팔트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맑은 날에만 보이는 그림을.


 “다 말랐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커피를 내렸다. 건조한 말투였음에도 퍽 감탄처럼 들렸다. 고소하면서 향긋한 커피 향이 온 거실을 가득 메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여유를 만끽하기가 무섭게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가방엔 잊지 말아야 할 서류도 챙겼다. 발걸음이 미친 듯이 가벼웠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사색이 된 부장이 내게 물었다.

 “아니, 지하 씨 갑자기 그게 무슨?”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갑자기 왜?”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느라 혼났다. 정말이지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을 참기 위해 입속에서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진짜다. 아침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나는 오늘 퇴사한다.

“뭐어?”

 부장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미친 사람을 쳐다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황당하네–. 요즘 젊은것들은.”

 햇살이 눈부셔서 퇴사한다니. 이 무슨 소설 ‘이방인’ 속의 한 장면도 아니고.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는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 주인공 뫼르소에게 경찰이 왜 죽였냐고 묻자, “햇빛이 너무 눈 부셔서.”라고 대답한다.


 크 – 얼마나 멋진가. 겉멋에 취해있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껏 비아냥대도 좋다. 정말 햇빛이 눈부셔서 나는 드디어 퇴사할 용기가 났고, 마침내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사직서를 제출했다. 더 이상 축축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으니까.


나는 이걸 ‘카뮈식 퇴사’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이방인 식 퇴사’라고 할까...?






 부장은 퍽이나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문지하를 괴롭힐까에만 골몰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내가 장난이라도 친다고 생각했는지 사직서를 안 받겠다느니, 한 달만 쉬고 와서 다시 생각해 보라느니 계속 나를 설득하려고 들다가 내가 앵무새처럼 퇴사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사직서를 들이밀자, 마지못해 사표를 수리해 주었다. 그러면서 돌연 세상 쿨한 척하며 "나중에 밥이나 먹자"고 말했다. 밥이나 먹자고? 웃기지 마. 구역질이 확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고진중. 그는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인사였다.

 이름과 달리, 그는 그리 진중하지 못했다. 다만 다른 방면으로는 참으로 성실한 탓에 성희롱,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매년 고소를 당했다. 그러다 보니 고진중 이름이 '고소 진행 중'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물론 지금도 그는 고소 진행 중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본인 별명을 몸소 충실히 증명할 요량인 모양이었다. 여자 직원들만 보면 치근덕 대기 일쑤였고, 학벌 콤플렉스와 언론사 출신이 아닌 블로거 출신이라는 '출신의 비밀(?)' 탓에 공채 출신이나 학벌이 좋은 기자가 들어오면 콕 찍어 괴롭히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나는 그가 제일 싫어할 만한 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었다.


입사 첫날, 같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고진중은 담배를 내밀었다.

"자."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고진중을 쳐다봤더니, 그래서 뭐? 그게 뭐가 문젠데? 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배워. 내가 담배 사줄 테니까."

 그러면서 그는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비흡연자에게 흡연을 권하는 게 폭력이라는 거 모르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그의 옆에 멀뚱멀뚱 그저 서 있었다.


  다음 날 출근했더니 느지막이 도착한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담배나 피우러 가자,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눈치껏 밖에 바람 쐬러 나가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따라 나갔다. 나가서 담배를 내미는 그에게 아, 저 담배 안 펴요. 대답했더니 그의 미간이 가운데로 쫙 쪼그라들었다.

"야, 너 내가 담배 배우랬지. 기자가 담배도 안 피우면 취재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취재원들 담배 피우면서 하는 얘기도 주워듣고 그래야 단독도 쓰고 그러는 거 아냐."

담배를 피우면서 단독 거리를 얘기할 만큼 멍청한 취재원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야만적인 행태는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매일 담배로 태클을 걸던 고진중은 이번에는 술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야, 기자는 술 잘 마시는 것도 하나의 능력인 거야. 너는 술도 잘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도대체 기자 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이런 식이면 내가 너에 대한 평가를 좋게 해 줄 수가 없어."

 그놈의 평가. 그런 게 평가 기준이라면 좋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업무적인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면 배우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할 텐데 자꾸 술과 담배 가지고 뭐라고 하니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이 직업이 너한테 맞다고 생각해?"

 나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일에 능동성도 있어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어휴, 너는 너무 모범생이야. 생각보다 더 꽉 막혀 가지고. 쉽게 가는 방법을 모르고 왜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돌아가니. 이 일이 너한테 맞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 봐."

 그러면서 그는 또 담배를 건넸다. 나는 역시 거절했다.

"너는 때가 너무 안 묻었어. 기자 하려면 너무 깨끗하면 안 돼."

 그는 지그시 내 팔뚝을 만지며 말했다. 그의 손길에 기분이 한순간에 드러워졌다. 퇴사해야겠다, 나는 그때 속으로 결심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 채우고 퇴사하게 되면 그게 나중에 내 발목을 잡을까 봐, 내 과실로 여겨질까 봐 나는 참을 수 있는 데 까지 좀 더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폭언과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가 내리는 지시는 하나같이 항상 불명확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

 "다시 써."

"부장, 기사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음, 마음에 안 들어."

"어떤 부분을 고치면 좋을까요?"

"몰라, 그냥 마음에 안 들어."

 그냥이라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기사가 길다고 해서 짧게 썼더니 짧다고, 길게 썼더니 길다고 뭐라고 했다.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외래어를 지적하면서 외래어를 쓰지 말라고 해서 북한 기사처럼 죄다 우리말로 바꿨더니 어색하다고 뭐라고 했다.

 

취재를 해가면 항상 기사 야마를 그의 뇌피셜로 잡고 기사를 마구잡이로 뜯어고쳤다. 취재를 기반으로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취재 내용을 억지로 뇌피셜에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나는 그 기사가 내 사진과 이름을 달고 나간다는 것에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가 기사를 뜯어고쳐놓으면 문장의 주술이 맞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문맥에 맞지 않는 튀는 표현이 많았다. 어휘력이 극히 한정적이라 매번 같은 단어가 반복됐다. 이를테면 제목은 항상 '기승을 부리는~'으로 시작됐다. 나는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기사가 처참히 너덜너덜해지는 걸 봤다. 당시 내 기사에는 "지하야 또 기승을 부리냐"는 댓글이 달렸다.


고진중은 '다만'을 '허나'로 고치고 '때문이다'를 '탓이다'로 고쳤다. '~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문장 어미를 '능사는 아닐게다'라고 고쳤다. 그 무렵 그는 부쩍 사극에 빠진 모양이었다. 나는 허탈해졌다. 사극 말투를 현대어로 고쳤더니 부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다름 아닌 '월권'이라며 경위서를 써오라고 했다. 경위서를 쓰던 밤, 코미디가 따로없다는 생각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하하하 웃어대며 경위서를 썼다.


 고진중은 종종 내 기사에서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하면서 이상한 블로그 주소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너는 명색이 S대 국문과 출신이 이딴 사소한 맞춤법도 몰라서 어떡하냐고 온갖 성질을 다 부렸는데 알고 보니 블로그에 나온 내용이 틀린 거였다. 국립국어원이 아니라 블로그로 맞춤법을 검색하는 언론사 부장의 기개와 대담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역시 블로그 출신이라 그런지 블로그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자기가 직접 포스팅한 자신의 블로그 글일지도 몰랐다.


 기사를 올려도 일부러 서너 시간 동안 기사를 보지 않고 데스킹을 미루는 일도 잦았다. 기자는 부장이 데스킹을 해야 기사가 출고되고 퇴근할 수 있는데, 고진중은 그 꿀 같은 권력을 활용하지 않을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기사를 2시에 올려도, 3시에 올려도 심지어 오전 11시에 마감해도 항상 7시가 넘어 데스킹을 봤다. 낮시간 동안 뭐 하냐고 당직자에게 슬쩍 물어보면 항상 블로그를 보고 있다고 했다. 과연 블로거 출신다웠다. 종종 저녁 미팅이 있는 날은 밤 9시, 10시에도 갑자기 데스킹을 보면서 기사 수정을 요구했다.


 꼭 주말만 되면 당직자가 아닌 나에게 연락해 이것저것 수정해라, 외신을 받아써라 따위의 지시를 했다. 밖이라 지금은 어렵다고 당직자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더니 기자는 24시간 연락이 돼야 하고, 주말이라도 잠시 외출할 때는 늘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정말 중요하고 급한 이슈라면 출입 기자가 처리하겠지만, 받아 쓰라고 지시한 외신 기사는 블로그 포스팅 용에나 적합한 별 의미 없는 가십 기사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 주말마다 이런 요구가 반복되자, 스트레스 때문인지 살이 점점 빠져갔다. 내 몸무게는 결국 40kg 밑으로 떨어졌다. 팔에는 수액 바늘 자국이 늘어갔다.


 하루는 취재원들과 미팅 중에 고진중이 불쑥 말을 던졌다.

"얘 허리 너무 가늘지 않아요? 나 허리통 이렇게 작은 애는 처음 봤잖아. 나 얘 살 5kg 찌우는 게 올해 목표야."

아하하, 많이 드셔야겠어요 기자님. 그렇게 대답하는 팀장급 취재원의 표정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 대리는 나처럼 웃지 않았다. 고진중이 고진중하는 순간이었다. 네가 가만히 냅두면 된단다.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계속 살이 빠지는 거잖아.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하루는 횡단보도 신호가 깜빡깜빡할 때 전화가 와서 뛰어 건너면서 급하게 받았다(고진중은 신호가 두 번 울리기 전에 받지 않으면, 기자가 정신 안 차리고 휴대폰 신경 안 쓰고 있냐며 각종 폭언을 쏟아 부었다).

"네, 부장."

"너 숨소리가 왜 이렇게 거칠어?"

 "아, 지금 이동 중이라 뛰면서 받아서요. 무슨 일 때문이시죠?"

"아니, 대낮에 운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헉헉 거려."

 그의 목소리에는 음침한 기운이 깔려 있어 소름이 쫙 끼쳤다.

"지시하실 사항 있으신가요."

 나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건너 편에서는 흥미롭다는 듯 계속 훙냥훙냥대며 숨소리 타령을 했다. 그러더니 별 일 아니고, 자기가 오후에 병원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고 침을 맞아야 하니까 기사를 좀 일찍 올리라고 했다. 점심 미팅에 가는 중이던 나는 택시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 덜덜 거리며 서둘러 기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건 그가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고진중은 자기 말을 자기 말로 반박했다. 하루가 다르게 말이 바뀌었다.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하다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 지를 몰랐다. 어제의 고진중 말대로 하면 오늘의 고진중이 뭐라고 하고, 오늘의 고진중 말대로 하면 내일의 고진중이 뭐라고 하는 식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욕을 먹는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언급한 것들은 귀여운 수준이고,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각종 기행과 폭력적인 시간들이 고스란히 축적돼 갔다.


 회사에 말해봐도 바뀌는 건 없었다. 국장은 더 최악이었고, 똑같은, 아니 더 악질인 사람이었다. 그는 국장실에서 늘 전자 담배를 피고, 라면을 먹다가 토악질을 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회사에는 늘 전자담배 특유의 비릿한 담배 찐내가 났다. 당직하느라 사무실에서 내근할 때면 꾸웨에엑, 꾸웩 하는 소리가 계속됐다. 문제를 제기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많은 선배들이 퇴사했다. 남아 있는 선배들은 대부분 그런 부장과 국장에게 충실히 아부하거나, 철저히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일하는 부류였다.

 

결국 이렇게 되니 자포자기의 심정이 됐다. 나는 1년만 참자, 참자, 하면서 겨우겨우 버텼고 그러는 사이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됐다. 물에 젖은 솜처럼 몸도 마음도 점점 무거워졌다. 늘 축축하게 젖어있던 음습한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회사를 때려치웠다.          






 이방인 식 퇴사를 해서 그런가. 퇴사 후의 삶은 철저히 다시 ‘이방인’이 되는 과정이었다. 아니다, 애초에 온전히 편입된 적 없으니 새롭게 이방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이방인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해야 하나.  


 지난하고도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기꺼이 선택한 이 '자발적 부랑자'의 길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내 인생에서 필수적인 것만 남겨야 하는데, 내게 있어 회사는 그런 게 아니었다. 밥벌이 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꼭 그것만이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다른 일로도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이었다. 야금야금 정신을 갉아먹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 영혼을 내어주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그들에게 일일이 내가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 구구절절 그럴싸한 이유로 포장하고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는 나보다 그들이 더 잘 알지도 몰랐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들어가, 아득바득 버텨 전환된 정규직 직장을 기어이 때려 치운다. 눈부신 햇살의 반에 반만큼도 숭고하지 못한 영혼의 소유자들, 그들을 버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이전 09화 너를 버리고 오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