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몸을 부르르 떨듯 밤새 미세하게 진동했다.
지진은 발생하기 얼마 전부터 예측할 수 있을까. 단층이 어긋나는 내부균열이 발생한 후에 지반이 미세하게 변하는 지각변동에 이르면 그제야 일반인들이 감지할 수야 있는 걸까. 아니, 그때까지도 너무 미세한 움직임이라 오직 지진계로만 감지할 수 있는 걸까.
지진은 인간보다 동물들이 먼저 감지한다 던데. 실제로 지진 전조 증상 중 하나로 동물의 이상 행동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동물들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이유없이 갑자기 짖거나, 새들이 집단적으로 비정상적인 비행경로를 보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동물원의 곰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뱀이 굴 속으로 숨기도 한다. 동물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진운'이라 불리는 특정한 형태의 구름이 나타나기도 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우물이나 샘물의 수위가 갑자기 오르기도 한다.
자연이 이렇게 경고하는데, 인간은 왜 전혀 알지 못하는 걸까. 나처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멍청한 꿈이나 꾸질 않나. 하긴, 그것도 예지몽이라면 예지몽이었다.
밤중에 규모 5.4의 여진에 한 번 깬 이후로, 불안해서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긴급재난문자를 보니 규모 2.7의 여진이 또 한 차례 발생했다. 집에서 전화가 와 받았더니, 부모님이 아침에 내 호흡과 퍽 비슷한 불안이 가득한 목소리로 "서울에 지진 났다던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캔들이 깨져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깼다는 말 따윈 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혹시 모르니 지진대피요령 같은 걸 잘 숙지하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뉴스를 잘 챙겨 보라는 말과 함께.
다음날 아침, 수능이 연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수험생들의 안전을 위해 일주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는 줄곧 정부가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구조적 손상이 발생한 수험장도 있고, 불안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를 학생들과 여진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교육부는 지진 규모가 5.0 이상이 되면 일단 시험지를 덮고 시험을 중지하겠다는 지침을 내놨다. 4.9면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서 시험을 봐야하는 걸까? 수험생들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나는 멍하니 뉴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이 나와 앵커와 인터뷰하는 걸 보고 있었다.
"실제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을 규모로 따지지는 않습니다. 구조물의 피해와 연관되는 것은 최대지반가속도, 그러니까 중력가속도가 1이라고 할 때 1에 대해서 몇 퍼센트의 수평력이 작용했나, 그것이 내진설계라든지 지진의 피해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라고 해도 아주 깊은 데서 발생한 경우와 얕은 데서 발생한 경우, 먼 곳에서 발생한 경우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경우의 피해 양상이 제각각이라 단순히 규모로 피해 정도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앵커는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듯 찜찜한 기색으로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 했고, 그런 표정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대지반가속도니 뭐니 하는 전문용어 가득한 설명을 휘리릭 들어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 나도 어느새 앵커와 비슷한 표정이 됐다.
진원.
지진을 일으키며 에너지가 처음 방출된 곳.
지진이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진원지에서부터 출발해, 단층을 분석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지진이 발생한 날인 11월 11일을 따서 '1111지진'이라고 불렀다. 1111지진은 단층면 상에서 128°의 미끌림각으로 운동하면서 오른쪽으로 이동한 역단층 운동으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덕분에 이제 '1111'하면 빼빼로 데이가 아니라, 기다란 막대기 4개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연상됐다.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서 발생하는 지리적 요인이 큰 자연발생적 지진이다. 환태평양 조산대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 때문에 '불의 고리'라고도 불린다. 판 구조론에 따르면 판의 경계에서 지각변동이 특히 활발한데, 환태평양 조산대는 바로 그런 판의 경계들이 모여 이루어진 곳이다. 모든 지진의 90%가 이곳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반면, P시에서 발생한 지진은 인위적으로 촉발된 지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대한지질학회와 해외 전문가들은 1111 지진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지열발전 실증연구 프로젝트에서 수행했던 수리자극 실험이 지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벌써 몇년 전,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한 시추작업이 지진을 유발한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P시 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열발전 실증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설치한 파이프에 주입한 물의 압력에 의해 단층이 자극됐고, 이 때문에 임계응력상태에 있던 단층에서 지진이 촉발됐다는 것이다.
진원은 물 주입을 위해 굴착한 파이프의 4.5km 끝지점의 바로 아래였다.
정부조사연구단은 P시지열발전소에서 최소 다섯 번의 자극이 주어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 지진은 인근 P시지열발전소의 실증연구에 따른 '촉발 지진'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P시 시민들은 서둘러 전문가와 함께 '1111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을 꾸려 국회에서 P시 지진의 원인과 진실을 규명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발전소 인근에서 2년 동안 100회에 달하는 사전 지진이 발생했지만, 이를 철저히 은폐해 1111 지진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단장으로 나선 P시 지역 대학교수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단장이 근무하는 대학교는 1111 지진 당시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한 건물이 심하게 붕괴됐고, 건물 주변에 있던 학생 2명이 2차 사고로 인해 즉사했다.
공동연구단은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한 정부가 소극적인 대응을 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할 계획이라면서 더 이상의 기만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열발전소의 즉각 폐쇄와 사전지진 은폐에 대한 책임과 사과, 처벌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누군가는 책임 지고, 누군가는 처벌 받고, 누군가는 보상받아야 할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 지진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진앙 주변 토양이 액상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진원지 주변 땅들이 불안정하게 흘러 다녔다. 지반이 움직이다보니 추가적으로 구조물이 손상되거나 파괴될 위험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얕은 깊이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그 무렵, 내 안에서도 액상화가 일어난 모양인지 수많은 생각들이 액상화된 토양처럼 머릿속을 부유했다. 나는 마지막 학기라서,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싱숭생숭한건가 보다 생각하며 그저 그것들이 둥둥 떠다니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