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C잡지에 기고하는 내 칼럼에는 자꾸 노골적인 악플이 달렸다.
'이 사람 글은 지나치게 사변적인 듯'
'이 정도 수준의 글이나 싣는 거보니 C잡지도 이제 맛탱이 갔네.'
'ㅋㅋㅋㅋㅋ이런 건 개나 소나 다 쓸 수 있겠다'
'혹시 한국 공포 영화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해 글 쓰시는지?'
'전문성도 없는데 오지게 아는 척'
아이디는 하나같이 alskdjfh123. 그 댓글에는 조용한 좋아요와 싫어요가 비등비등하게 섞여 있었다. 미나어로123. 혹시 누군지 유추할 수 있을까 싶어 한글로도 쳐 봤다. 그냥 키보드 위의 손을 왼손 한번, 오른손 한번 교차로 쳤을 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악플은 여진처럼 미세하게 내 기분을 진동시켰다. 점점 더 아래로 침잠하도록.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고, 글을 쓸 때마다 은연중에 신경이 쓰였다. 안티팬도 팬이라더니. 내 글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데, 꼬박꼬박 챙겨 읽으며 댓글을 다는 정성이 갸륵했다. 그래, 당신. 내 글을 매주 기다리고 있는 거 알아. 그렇게 생각하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예 안 보고도 싶었지만, SNS나 유튜브처럼 잡지사 웹 사이트에는 댓글 중지 기능 따윈 없었다.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 글이 왠지 별로인 것 같은 날에는 댓글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하긴. 내가 전문 평론가도 아닌데,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이유로 이렇게 칼럼을 기고할 자격이 있는 걸까. 전문성도 없는데 오지게 아는 척하는 거 맞지 뭐. 나중에는 악플을 어느 정도 수긍하기까지 했다.
속상한 마음에 절친인 서림에게 연락했다. 글에 남겨진 댓글을 캡처해 보냈더니 금방 답이 왔다.
"그냥 신경 쓰지 마. 심심해서 그래."
서림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심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심심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도 묵묵히 또 성실히 심심한 사람들.
대부분 상대를 끊임없이 헐뜯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심심한 사람들이다. 시간이 넘치고 한가하니 그런 일밖에는 할 게 없는 사람들. 내 일에 몰두해 있거나, 어딘가 한곳에 집중해 있거나, 그로 인해 바쁜 사람들은 남 욕할 겨를이 없다. 남들 신경 쓸 시간 자체가 없는데 언제 욕까지 하고 앉아 있으랴. 그런데 alskdjfh123은 늘 심심했고, 내 글에는 항상 꾸준히, 성실히, 심심한 alskdjfh123의 댓글이 달렸다.
임서림. 말하자면 그녀는 니트 같은 사람이었다. 장인이 직접 손뜨개로 뜬 잘 짜인 니트. 날실과 씨실이 정확하게 교차한 직조에 겉으로 빠져나온 매듭 하나 없이 명료한, 정교하고 단단한 사람. 쉽게 올이 풀리지 않는 사람. 그 한 벌로 간절기를 거뜬히 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소중히 다루고 정성스레 관리할 필요가 있는 애정이 가는 사람.
서림은 나와 P시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향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지금 생각하면 시답잖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에는 전부인)을 털어놓았고,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학창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같이 공부했고,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에도 가까웠지만, 서울에 올라 와 보니 묘한 동지애가 생겨 자연스레 더 각별한 사이가 됐다. 객지 생활에 지쳐 문득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낄 때면, 서림을 만나는 것으로 크게 위로가 되고 해소가 됐다.
우리는 만나서 매번 했던 과거 얘기를 하고 또 했다. 무수히 반복해도 그 이야기들은 전혀 지겹지 않고 재밌었다. 서로 흑역사를 놀리기도 하고, 연애 상담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신림과 신촌의 맛집을 번갈아 가며 오갔고, 서로의 대학 축제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1111지진 이후, 서림은 니트에 코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코 하나가 나가기 시작하니 올이 풀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서림의 엄마는 P시에서 큰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오래된 만큼 유명하고, 원생도 많았다. 1111지진이 발생한 그날, 그 유치원에서는 사고가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기둥 하나가 6살 꼬마 아이의 머리 위로 꼬라 박혔다. 그 사고로 6살 꼬마 아이가 크게 다쳤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원장이었던 서림의 엄마는 큰 죄책감을 느꼈고, 유치원을 당분간 휴원하고 깊은 우울 속으로 침잠했다. 유치원 건물이 너무 낡았었어. 내가 낡게 내버려 뒀던 거야. 서림의 엄마는 돌림 노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시기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서림은 엄마를 신경 쓰랴, 로스쿨 공부를 소화하랴 고군분투하다 보니 무리하기 일쑤였고 자주 쓰러졌다. 수액을 맞아도, 응급실에 실려가도 엄마에게 연락하지 못했고, 어쩌다 엄마가 알게 돼도 서림의 엄마는 서림에게 철저히 무신경했다. P시에서는 여전히 규모 3.0에서 3.5 수준의 여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유치원 문을 닫듯 마음의 문까지 완전히 닫은 엄마에게 서림은 원망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의 우울이 서림의 우울을 더 짙게 채색했다.
“나는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될 거야.”
언젠가 서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왜?”
“건강하지 않은 결혼보다 건강한 이혼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되도록 돕고 싶고……”
나는 결혼도, 이혼도 해보지 않은 서림이 어떻게 진정으로 건강한 이혼이니 뭐니 하는 걸 논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뿐이었다.
“음…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거 아냐.”
나는 단지 그렇게 말했는데, 묵직한 침묵이 이어졌다. 테이블 위에 거대한 바윗덩어리 하나가 쿵, 하는 굉음을 내며 떨어진 직후 맴도는 진동 섞인 정적 같았다. 뭐지? 서림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데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거야, 우리 부모님 때문이지.”
공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그녀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들킨 것처럼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들춰진 진실을 애써 덮으며 무마하기보다는 까발려 보여주자는 심산이었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줄곧 우리 엄마 아빠가 제발 이혼했으면, 이혼했으면, 하고 생각했어. 그러면 내 인생도, 엄마 아빠 인생도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말이야. 지금도 물론, 그렇게 생각해. 엄마 아빠는 나 때문에 억지로 같이 사는 것처럼 보였거든. 당신들이 직접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고.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나를 실수로 낳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그 말은 아무리 들어도 아팠어. 도무지 무뎌지지가 않더라.
서림은 언니가 둘 있었고, 언니들과는 15살 이상 차이 나는 늦둥이였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늦둥이니까 당연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예정에 없던 나를 낳아서, 나를 낳았기 때문에, 식습관에서부터 생활패턴, 사고방식, 취향, 성격, 온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지 않는 당신들이 서로 살을 부대끼며 억지로 ‘참고’ 살아가고 있다는 그 한탄이 정말 듣기 싫었어.
그럴 때마다 나는 큰 죄책감을 느꼈어.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지. 내가 태어나지 말았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우리 부모님은 쉽게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서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걸 도와주고 싶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내 질문은 너의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고통을 들춰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단지 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을 뿐이라고 구구절절한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 하는 걸까. 그러는 사이 또 얕은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덮은 건 또 서림의 목소리였다.
“미안, 놀랬지? 내가 갑자기 이런 얘기해서.”
“아니, 미안하긴. 내가 미안하지”
“결혼해서 불행한 세상 모든 부부들. 내가 싹 다 이혼시킬 거야, 두고 봐.”
“푸하하, 멋진 포부네.”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서림이 애써 유쾌하게 말해서인지 내심 더 미안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말대로 그런 변호사가 되어주길, 진정으로 바랐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남몰래 응원했는지도. 하지만 서림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 들어가자마자 전혀 다른 분야의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경영인수합병 자문 변호사였던가.
나는 이상하게 다소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탓할 것도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지도, 또 새로운 이유를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그냥 서림의 선택을 멀리서나마 존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응원이었달까. 물론, 이건 지금 와서 하는 변명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짧은 문자였다.
“나 로펌 나왔어”
그냥 그렇게만 왔다.
“잘했어.”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는 질문도, 언제 퇴사했냐는 물음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고 그저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잘했어, 단지 그 한마디 외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됐다. 퇴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과 불안이 있었겠지, 그리고 나서 내린 결정이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잘한 일이지 뭐란 말인가.
“네가 처음이야. 왜냐고 안 물어본 사람은.”
그렇게 답장이 왔다.
“괜찮아?”
왜냐고 묻는 대신 나는 다시 그렇게 물었다. 다시 답장이 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괜찮아질 거야.”
그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괜찮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괜찮아질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읊조렸다. 그리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응, 분명 그럴 거야.”
답장을 보내자마자 다음 달쯤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고, 이상하게 나는 서림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때 돼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래, 하고 대답해 버리면 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 나는 대답에 신중했다.
“다음 달은 좀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한껏 위축된 올이 풀린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올이 풀려 있는 누군가도, 위로해 주기엔 버거웠다.
“그래 그럼 나중에.”
그렇게 답이 왔고, 한참 후에 서림을 만났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고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