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Oct 27. 2024

말을 잃다



침묵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이제 내 옆에는 은위도 서림도 없다. 서림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문득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을 말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너무 많은 남의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내 안에 지극한 피로와 쓸데없는 감정의 잔여물들이 찌꺼기처럼 쌓여 있는 거라는 생각. 용량은 정해져 있는데 남의 이야기로 너무 많이 채운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돌볼 여력을 상실했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침묵은 능동적인 것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침묵은 시간 속에서 성장하지 않고, 시간이 침묵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시간에는 침묵이 동행하고 시간은 침묵에 의해서 규정된다. 내가 입을 다물면 침묵이 시작되고, 내가 입을 열어야 비로소 그 시간이 끝이 난다.


침묵은 하나의 언어다. 표상이다. 침묵함으로써 그것은 말보다도 더 깊은 하나의 응축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침묵은 이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순수하고 고결한 침묵은 목적을 가진 말들을 흡수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다. 침묵이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침묵은 말을 삼킨다. 무수히 많은 말들은 침묵 속에서 진동할 뿐이다. 나는 지금껏 이 강력한 침묵이라는 언어적 도구를 아예 활용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언어가 이용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 섣불리 이용할 수 없는 침묵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침묵하는 것만이 내 안에 거대하게 뚫린 공동을 매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방출하는 것은 끝없이 공허하게 만들지만, 응축하는 것은 무언가를 채운다. 더 많이 입을 다물고, 대신 찬찬히 생각할 것. 그래서 나는 말을 잃기로 했다.


질식할 같은 침묵은 안의 에너지를 응축시키면서 점점 나를 투명하게, 투명하게 만들어갔다.






P시는 지진범시민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정부를 상대로 여전히 지난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정부 : 50만 P시 시민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P시 시민들은 이제 지진 트라우마가 아니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끊임없는 삽질, 실질적인 대책이 아닌 시간 끌기식 대응에 트라우마가 생기겠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수습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기약 없이 긴 싸움이 되어 버렸다. 피고 대한민국, 원고 50만 P시 시민의 싸움은 답보상태였다.





로스쿨 생활은 참을 수 없으리 만큼 권태스러웠다. 민법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문장들이 머릿속에 있는 거대한 반사판에 닿아 튕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학교 캠퍼스를 한 바퀴 산책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돌아와도 도무지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의 둔기에 가까운 두꺼운 민법 책을 갈기갈기 다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다 불현듯 휴대폰으로 '가면성 우울증 자가진단'을 검색했다. 


□ 나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다.

□ 나는 무슨 일을 하든 흥미가 없다.

□ 나는 최근에 울음을 참기 힘들다.

□ 나는 최근에 자주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 나는 최근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 나는 최근에 일상생활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 나는 최근에 자주 우울한 기분이 든다.

□ 나는 최근에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 나는 최근에 걱정이나 불안감이 자주 든다.

□ 나는 최근에 잠을 자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선택지를 읽을 때마다 당연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가지 항목 중에 10가지 모두 해당됐다.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눈물이 났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면허를 취득하면, 그래서 변호사가 되면, 나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이건 누가 원하는 삶인가.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은 늘 부모님 뜻대로 해 왔던, 내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게 두려워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님의 말을 들었던, 그러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의 여지를 남겨뒀던, 지금까지의 선택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토록 나약한 나 자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울음을 꺽꺽 삼킬 때마다 몸이 진동했다.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면 되는데, 묵묵히 참고 견디면 되는데, 그럼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그건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나는 거지 같은 직장 상사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하며 회사에 다닐 때도, 시뻘건 눈으로 밤을 새우며 공포 영화를 보면서 칼럼을 쓸 때도 지금보다는 행복했던 것 같았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나를 달래 왔는데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침묵한 채로 가만히 멈춰있었지만, 사실 진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 것은 힘들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니까. 가만히 있으려면 힘을 줘야 했다. 버텨야 했다, 머물러야 했다, 밀어야 했다. 밀려나지 않으려면 나도 그만한 힘으로 열심히 반대 방향으로 밀어야 했다. 그래서 겉보기엔 움직이지 않았지만,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꺽꺽 거리며 울음을 삼키다 겨우 진정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입을 뗀 탓에, 진동을 감지한 성대가 어색하게 미동했다. 마이크에 녹음된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처럼 내 목소리가 제법 낯설게 들렸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분명히 말했다.


"나, 로스쿨 자퇴할래."


말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말이 내 몸을 울렸다. 오랫동안 침묵하다 깨달은 것은 우리가 말할 때 생각보다 신체 내부가 더 많이 진동한다는 사실이었다. 성대의 울림이 귀를, 가슴을, 장기를 모두 진동시키며 우우웅 울렸다.


내 인생을 위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해.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고, 그 순간 성대가 울리지 않았음에도 온몸이 전율하며 진동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P시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인물과 사건 역시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이전 12화 두고 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