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성공과 실패가 아닌 가능성
동생이 추천해준 책이 있었다. 곳곳에 동생이 흔적이 가득한 책. 유명하단 말에 한두장씩 넘겨갔다가 동생이랑 싸운 날에는 쳐다도 보기 싫었다. 그러다 다시 주인공의 선택이 궁금할 때면 또 조금씩 찾아 읽다 어느새 마지막장에 이르러 있었다.
주인공 노라는 전반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생을 끝내려 했고 그 끝자락엔 노라만의 삶의 도서관이 있었다. 그간 삶에서 했던 모든 후회들로 만들어진 도서관. 그 도서관에서 노라는 있을 수도 있었던 삶을 하나하나 경험해가기 시작한다. 록스타, 국가대표, 음악 선생, 교수, CEO, 비서, 쉐프, 나무 심는 사람, 곡예사, 미용사, 회사원, 물건 훔치는 좀도둑, 유리 공예가, 현장 관리직까지. 평행우주 속에서 노라는 천 가지 다른 삶을 거치게 된다.
'한 마디로 숱하게 많은 삶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삶을 살면서 노라는 웃고 울고, 평온하고 무서웠으며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느꼈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돌아갈 때마다 엘름 부인을 만났다. '
노라는 삶의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또 이별한다. 그러면서 삶에서 잊고있었던 느낌들을 되찾아간다.
노라는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생각했다. 얼마나 활기가 넘치고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던가.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치밀었다.
삶의 생기란 계속 살아있으면 익숙해지기 쉬운 것이다. 익숙해져있기에 눈치채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은 후에라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잊어버린다. 경도와 위도가 얼마나 긴지 무감각해진다.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광활한지 깨닫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노라는 짐작했다. 하지만 일단 그 광활함을 알아차리고 나면, 무언가로 인해 그 광활함이 드러나면,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희망이 생기고 그것은 고집스럽게 당신에게 달라붙는다. 이끼가 바위에 달라붙듯이.'
물 속에서 물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생이란 무한한 선택지와 가능성을 인지하면된다. 그런 후엔 작가의 표현대로 어떠한 희망같은 것이 고집스럽게 달라붙는다.
누군가는 같은 나이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누군가는 세계가 주목하는 팝스타가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해서는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기였을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수많은 양상의 삶으로 나타나게 될까, 그것이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진실 하나가 이 소설을 통해 내 안에서 구체화되었다. 대단히 성공한 락스타와 일상과 타협한 평범한 작가 사이에는 정말 별차이가 없다는 것. 그러니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도 대담함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것. 쓸데없이 삶에 주눅이 들어서는 정말 안되는 일이다.
진짜 나를 찾고 싶던 시절엔 이런 고민이 있었다. 나에게 영향을 준 것들로부터 내가 진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부모, 환경, 나라, 언어, 문화...그것들이 나를 형성해버렸는데 그것들을 떼어내면 나에겐 뭐가 남지 하는 고민. 그런 것들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도 있었고 싫어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환경에 지배당하긴 싫었지만 원초의 자아가 그것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지도 참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파껍질을 까도까도 나오는 건 그저 양파이다. 그 모든 것은 ‘나’를 형성해준 재료일 뿐이다. 그것들은 이미 나의 일부였다. 아마 나의 양파 속 자아 찾기는 계속될테지만 동기는 나에게만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힘은 나의 것이다.
언젠가 언니와 앤드류 솔로몬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평소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얘기하지 않는 언니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싶었다. 어느 날엔가 두꺼운 백과사전같은 그 사람의 저서까지 다 읽었다길래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봤다. 그냥 별 내용은 없는데 하나는 깨달았단다. 어떤 우울의 끝이든, 여기가 끝이고 더는 나아질 수 없단 생각이 들 때가 있을텐데 거기가 끝이 아니라고. 책이 주는 메시지도 맥이 같았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고 싶어질 때 우리는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기에 수많은 가능 세계가 우리 앞에 계속 펼쳐져있고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한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두려움은 우울과 절망을 넘어 사랑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출발선의 감정이다. 그녀가 말하는 두려움은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오는 첫단계는 두려움이라고 단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계속 있다간 사랑이라는 것에 발을 담그게 될 것 같은 두려움. 그 달콤함 뒤에 영영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아득하고 너무앞선 두려움. 그러나 그것이 사랑에 대한 비용이라면 감수할 가치가 있는 비용일 것이다.
1학년 신입생 때 들었던 수업 하나가 생각난다. 전공맛보기 같은 수업이었는데 매수업 으리으리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경영과 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왁자지껄함 혹은 입시성공에 도취한 듯한 약간의 열기로 뒤덮였던 그 때 송도의 1년 동안엔 가족들과 떨어져 나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 중 단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신뢰에 대해 어떤 연사분이 했던 말이다. 신뢰란 본질적으로 나를 vulnerable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신뢰의 본질이라고. 남이 찌를 수도 있게 나의 등을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비용을 치르기 싫다는 것은 애초부터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적으로 상처와 이별의 가능성을 전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취약함을 포용하고 감수하고 사랑하는 것, 두렵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그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어떤 의도도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사랑은 사람을 길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버린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도 있고, 오감의 온갖 호사를 누릴수도 있고, 상파울루에서 2만 명 관객 앞에서 노래할 수도 있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수도 있고, 지구 끝으로 여행할 수도 있고, 수백 만의 팔로워를 거느릴 수도 있고, 올림픽 메달을 딸 수도 있지만 사랑이 없다면 이 모든 건 무의미하다.
가끔은 자신만의 진실을 말하기만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죠
자정의 도서관을 여행하는 이 자의 대사처럼 나는 우리가 각자만의 진실을 말해도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밖에는 죽어도 모르는 그 느낌의 골짜기에 우리는 서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자신만의 진실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삶의 슬픔과 비애에만 젖어있지 않고, 함부로 인생의 끝을 단정하지 않는 것. 때로는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힘들어도 며칠이라도 판단을 유보해낼 수 있는 인내심과 용기.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미국에 온지 이틀째, 나는 하루키가 말한 어도어센스를 잃어버린 것도 같다. 달러로 결제를 하고, 양옆에 흑인이 지나가도 아무것도 신기하지도 경이롭지도 않다. 그렇게 간절하던 미국행이 이렇게 진면목을 드러내는가 싶어 불현듯 절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냉기를 겪고 나면 또 다시 찾아올 열기에 무척 감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다시 찾아올 삶의 생기 혹은 사랑 비슷한 것들에 이전보다 더욱 충실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