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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Nov 06. 2023

눈을 감았다 뜨면 어른이 되어있기를

dry season of life

빨리 어른이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되면 지옥같은 기숙사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어른을 두려워하지도 않을거라 생각했다. 내 잘못과 선택이 아님에도 받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반쯤은 틀리고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는 상투적인 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이토록 고통스러운 날에는 그 말은 오히려 사실과 정반대였다고 해야할까.


아빠가 쓸데없이 뜸을 들이는 날은 보통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빠에게 빌려줘야하는 돈이 점점 커질 때마다 그리고 점점 그런 모든 일과 과정이 예사로워 질때마다 점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엄마의 아빠를 향한 그간 지독한 혐오와 폭언이 내게도 내재화되어 나는 어느새 자발적으로 아빠없는 아이가 되어있다. 어느날 길을 걷다 든 생각에 악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빠의 온 몸과 생으로 나에게 덤비어 기대어오는 무게를 견디고도 또 그런 것에 앞으로도 익숙해져야 한다니. 그러고도 나는 기댈 곳이 없어 휘청이게 되는 그런게 어른이라니. 대체 얼마나 철이 없어야 그 따위 걸 아름답게 꿈꿀 수 있다는 말인가.


가족과 친구 내 주위는 이미 폐허가 된지 오래다. 누군가의 시체와도 같은 생의 짐들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야 하는 날도 있었다. 감히 떠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누군가의 생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좀먹고 부서뜨려 마치 암세포처럼 내 마음 속 타인의 존재는 악취만을 뿜는다. 그들을 향한 지독한사랑이 어느새 지독한 혐오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그릇과 나의 분수를 그제서야 깨닫고 씁쓸해진다. 각자의 십자가가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어쩌면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길 줄 알게되는 게 이 과정인건가. 


생각을 애써 비우고 바쁘게 살다 어느날엔 세면대에서 비명이 나왔고 어느날 밤엔 옆방에서 누군가 곤히 잠을 자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막고 통곡하다 지쳐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이쯤에서 죽어버릴 수도 없고 앞으로도 까마득히 남은 나날에 나는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내 삶에 과연 해뜰날이 오긴올까, 사는게 행복해 웃어본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쓸모없이 셈해본다. 


그런날엔 어김없이 일어나 모래알같은 밥알을 씹고 채비를 하고 나와 버스에 오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몸이 아픈 날 쓴 약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듯 생을 곱씹는다. 씹을수록 미간이 구겨지는 쓴약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아무맛이 나지 않을때까지 생각한다. 이 쓴 맛에 무뎌질 때쯤에야 어른이 되는 것이라, 그렇게 나를 타이르며 나는 눈물에 젖은 두 눈을 애써 뭉개어 부릅뜨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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