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배려, 누구도 묻지 않지만 기분은 좀 그래요
난임부부에게 다가온 명절, 나를 향한 감사한 배려
아주 감사하게도 우리는 명절 스트레스가 없다.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전을 부치는 일도, 시누이를 기다리고 가라는 잔소리도 없다. 자식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양껏 준비하시는 어머님과 허허 웃으며 맞아주시는 아버님, 그리고 나는 요리 솜씨가 들키지 않을 정도의 전, 동그랑땡을 한 끼 먹을 정도로 준비해 간다. 우리가 좋아서 했던 직접 빚은 만두고 있었고, 처음 해본 식혜와 약밥도 있었다. 함께 오손도손 둘러앉아 음식을 하던 나의 어릴 적 설날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결혼하고 첫 명절부터 이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어느덧 익숙해지기도 했다. 매주 어머님 아버님을 만나는 이유도 있지만 짧은 명절을 지내야 하는 직장 다니는 아들, 며느리, 딸, 사위를 배려해 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크다.
우리도 결혼 초부터 약 2년 반이 지날 때 까지는 시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이모 남편의 사촌들까지 북적거리는 내가 어릴 적 느꼈던 설날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시골집에서의 설이 즐거웠다.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나의 시댁 어른 그리고 친척분들은 우리에게 아이에 대한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시지 않으셨다.
- 이제 좋은 소식 있어야 하지?
- 너무 일만 하다가는 아이가 안 생긴다.
- 얼른 예쁜 손주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수도 없이 우리를 향한 아이를 기다리는 말. 감사하게도 우리의 친척분들은 속으로는 생각하셨을지라도 겉으로 이야기하신 적이 없다. 항상 우리의 일과 건강 그리고 즐거운 삶에 궁금해하셨고, 걱정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이 역시도 겉으로 표현하시지 않는다. 아마도 혹여나 이런 질문들이 스트레스가 될까 봐 어머님, 아버님이 나서서 이야기하시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시할머니 댁에서는 할머니 다음으로 큰 어른이신 아버님, 어머님이 '아이와 관련된 질문 사전 차단'을 하셨나 싶을 정도로 명절에 우리에게 들려오는 '아이, 임신'에 대한 질문은 단 하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한 배려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황이 그저 평범하게 안부로 전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전하지 못하게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친척이 아니어도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는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느끼는 생각이다. 우리가 불편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고마운 배려이지만 가끔은 이들의 관심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지 미안함 마음이 크다.
우리는 1년 반 만에 시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짧은 명절이라 어머님, 아버님은 시간 내서 시골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가면 아직 손주며느리라고 세뱃돈도 받는다! 그리고 오랜만에 북적북적한 설날 분위기도 느끼고 싶다. 감사한 배려 덕분에 주눅 들지 않고 명절을 즐기러 간다.
7년 연애 후 결혼 4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