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알로하링 Nov 09. 2020

17. 난임부부에게 상처가 되었던 말,말,말

저는 , 생각보다 씩씩하지 않아요. 

저는, 생각보다 씩씩하지 않아요. 


우리는 화학적 유산을 겪고 나서 아주 가끔 울컥하는 느낌은 있지만 오히려 매달 단호박 임신테스트기를 만날 때 보다 훨씬 괜찮아 졌다. 사실 괜찮아 졌다 라기 보다는 화학적유산 보다는 그냥 실패가 더 나았던 것 같다.

몸도 회복해야 하고, 우리 마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당분간 난임병원은 쉬기로 하고 우리의 조급함도 내년으로 미뤄 두기로 했다. 홀가분해 진 마음은 아니지만 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온전히 맡아 하룻밤, 이틀밤도 세워가며 해낼 수 있을 만큼 일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 '나'라는 본캐에서 '교육기획팀 팀장'이라는 부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지내고 있었다. 


Q. 난임부부가 들었던 말들 중 상처가 되었던 말은 어떤 말이 있었나요? 

Q.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려오는 부부에게 상처가 되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해 나는 그동안 다양한 관계 속 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다. 소위 말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 그 어느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구나'또는 '아,네' 라고 잘 흘려 들을 수 있는 정도 였다. 다만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 너희보다 더 늦게 결혼한 부부도 아이가 생겼는데 안부러워? 

- 왜 애는 안가지는거야? 

- 옷을 그렇게 춥게 다니면 아이가 안생긴다. 옷 좀 따듯하게 입어라 

-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가 늦게 생긴다. 


책한 권을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4년 동안 많은 이야기도 들어왔다. 그럴 때 마다 수도 없이 이런 말들이 듣기 싫다고 속으로는 이야기 했지만 겉으로는 그냥 듣고 넘겼다.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머릿 속에서 지우기 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나의 마음을 스위치로 off 시키는 것과 같은 느낌이였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바라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의 도가 넘는 이야기 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아. 



'밥 값을 해야지'


최근 단단했했던 마음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그동안 수 많은 관심 속의 이야기에도 단단했던 나 였는데 그 날의 이야기는 순간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이제 밥 값 해야지, 이제 밥 값 할때 되지 않았어? 시어머니 보기에 미안하지도 않니, 이제 아이 낳아서 밥 값해야지' 순간 나는 귀를 의심 했다. 큰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도 아니였는데 온 순간의 소음은 모두 사라지고 칼 같이 꽂히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그 분은 가볍게 전한 이야기 였다. 오랫동안 봐온 부부에게 관심의 인사 정도로 생각하는 표정이였다. 


집에 가고 싶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남편과 함께 갔지만 같이 있을 수 없는 공간이 이였기 떄문에 나는 한 시간을 넘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오랫동안 울었다. 일주일에 한번 기쁜 마음으로 오는 곳이였는데 다시는 이 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는 이 곳에 오고 싶지 않다. 


아이가 없으면 '밥 값'을 하지 못하는 건가요? 아니 밥 값이라는 단어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일 인가요?

그동안 들어왔던 그 어떤 이야기 보다도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정도 이야기에 나의 행복한 일요일을 포기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상처되는 이 말 한마디에 일요일을 포기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훌훌 털어버리자 라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털어내기 어려웠던 말이다. 


 


이번 일로 양가 부모님과 우리 부부 모두에게 힘들고 마음이 쓰였던 시간 이였다. 하지만 우리 답게 해결이 된 시간 이기도 했다. 그동안 친정과 시댁이라는 사이에서 아이 문제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서로 소통하기가 어려웠다면 어쩌면 이번 일을 통해 서로에게 터 놓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함께 화내 주셨고, 함께 다독여 주셨다. 또 함께 눈물을 흘렸고, 함께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하면 이 일에 대하여 더 단단해 질 수 있는지 고민해 주셨다. 오히려 어려웠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생각정리도 잘 되어서 불편하기만 했던 일요일 그 곳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 처럼 우리 가족은 두 팔벌려 안아 주시는 어머님과 일주일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버님과 불 같이 화를 내면서도 웃는게 이기는 거야 라고 쿨한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이에서 가장 힘들었을 김남편 까지,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단단해 졌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서는 최근 업무에 도움이 되는 교육관련 자격증을 공부하고 취득하여, 보수교육 중에 있다. 그리고 자격증 취득에 작은 축하 파티도 했다. 나도 그럴 것이 나 답다고 생각했다 ! 남편도 남편 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에 열심히 인 사람이예요. 


'우리 애 밥 값은 우리 애가 알아서 잘 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  


7년 연애 후 결혼 4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16. 어두움 끝에 빛 한줄기, 화학적 유산의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