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금요일을 맞고 싶었습니다만
비가 오는 금요일 아침이다.
어젯밤에는 천둥도 치고 번개도 치고 바람도 많이 불어 학교 교실에 아귀가 딱 맞지 않는 창문이 있어 문을 통해 비가 들이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다음 주에 기말고사를 앞둔 큰 아이가 새벽 한 시가 넘어도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며 콧노래를 하는데 노랫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아래윗집에 울릴까 봐 조용히 해 달라고 카톡을 보내고 아이와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정신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어 피곤한 아침을 맞았다.
비가 오면 어른들의 출근길도 늦어지지만 아이들의 지각도 많아진다. 원래 지각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비 오는 날은 꼭 지각을 한다.
출근하자마자 음악실에 들러 앞뒤로 에어컨 송풍 기능을 틀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공기 청정기 세대를 켜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해 놓고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지각이 3명.
오늘은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5월 중에 아이들에게 1인당 1대씩 스마트 기기를 배부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더니 6월 말쯤 기기를 배부할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아이들에게 비 오는 날 실내 생활 안전교육을 간단히 하고 서로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 감정을 건드리는 말 하지 않도록 당부를 하고 1교시 수업을 하러 갔다.
2교시 수업을 마치고 음악실 정리를 한참 하고 있는데 반장이 또 음악실로 내려왔다.
"선생님, 지안이와 민규가 싸웠어요. 엄청 크게 싸운 것 같아요. 배를 때리고 레슬링 기술을 쓰고.. "
"지금 싸움이 다 끝난 상태니?"
"아뇨. 지안이가 민규 배를 먼저 때리고 아이들이 말리고 있는 걸 보고 바로 내려왔어요. "
교실에 올라가니 민규 배를 때렸다는 지안이는 마스크가 다 벗겨지고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민규는 학년 부장 선생님과 학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장님께서 아이들의 경위서를 받고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누시겠다고 하셔서 아이들이 다친 곳이 없는지만 확인을 하고 다시 음악실로 내려갔다.
지난주에는 아이 둘이 장난을 치다가 창문을 깨더니 오늘은 육박전을 하다니. 평화로운 금요일을 보내고 싶은 중2 담임의 소박한 희망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나는 주당 24시간의 수업을 하는데 월요일 하루만 4시간 수업이고 나머지 4일은 5시간 수업이다. 하루에 5시간 수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빡빡하고 강도가 높아서 아이들의 활동이나 실기 수업이 있는 주는 거의 집에 오면 몸살이 날 지경이 되었다.
음악실에서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수업 시작 전에 조금씩 일찍 음악실에 오기 때문에 일찍 온 아이들을 위해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음악실에 수업하러 온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수업이 연달아 있는 날은 3층에 있는 담임 학급 교실까지 자주 올라가 보질 못한다.
매 시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날에는 아이들이 행동도 조심하는데 오늘처럼 내가 수업이 계속 5시간 이어서 있는 날에는 오늘처럼 싸움도 일어나고 지난주처럼 창문도 깨지고 하는 것이다.
나는 때로는 학교에 수업을 하는 선생님 말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수시로 순회하고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짬을 내서 아이들을 주시한다고 해도 나 같은 전 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1,2, 3학년 모든 학년을 수업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반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또 수업시간에 맞춰 특별실에 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반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일일이 컨트롤을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단이탈이라도 하면 학부모님들이 꼭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들은 그 시간에 뭐 하고 계셨나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선생님들은 주로 그 시간에 교과수업을 하고 있거나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교과시간 중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감정 조절이 안되어 난동을 부리는 학생을 맡아줄 wee 클래스가 있어서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잔뜩 찌푸린 날씨처럼 어두운 마음으로 수업을 다 마치고 오늘 싸운 민규와 지안이를 남겨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랬다.
지안이는 이번 주에 하루 빼고 매일 지각을 했다. 지안이는 우리 반 컴퓨터 도우미라서 지각을 하면 교과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 설치를 누군가가 대신해 주어야 했는데 민규가 이번 주에 계속 컴퓨터 설치를 해 주었던 것이다. 민규가 핸드폰 도우미라서 핸드폰을 가져다 놓으러 가는 길에 항상 컴퓨터를 가져왔던 것이다.
민규는 계속 지각을 하는 지안이가 못마땅해서 하는 일마다 계속 핀잔을 주었는데 마침 수업시간에 교과서가 없었던 지안이를 보고는 교과서는 왜 안 가져왔냐. 하는 일마다 왜 그러냐. 이런 식으로 말해서 지안이가 화가 나서 민규이에게 욕을 하고 참지 못하고 민규의 배를 먼저 때렸다. 우리 학교 레슬링 부인 민규는 의자에 앉아 있는 지안이를 뒤에서 안아서 들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 들어지지 않아 들었다 놨다를 두 번 정도 반복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민규에게 레슬링 기술 쓴다고 이야기했고 얼른 달려온 학년 부장 선생님 덕분에 싸움은 금방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민규가 지안이을 두 번이나 안아서 들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다는 장면에서 웃음이 빵 터져 셋 다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3교시에 싸움이 일어났지만 둘은 이미 화해하고 감정이 다 풀린 상태였고 지안이는 민규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지안이가 민규의 배를 한 대 쳤다고 했지만 지안이의 몸은 오랫동안 레슬링으로 단련된 몸이라 하나도 아프지도 않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지안이가 민규의 배를 쳤을 때 민규도 지안이를 주먹으로 때릴 수 있어지만 때린 것이 아니라 친구를 뒤에서 번쩍 들어 혼내주려고 했다는 기발한 발상(?)에 어이가 없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각자 잘 못한 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고 서로 사과를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를 했다. 학부모님께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일 정도를 말씀드리고 5시쯤 되어 엉망이 된 음악실을 뒤로 한채 퇴근을 했다.
어젯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오후부터 머리와 눈이 너무 아팠는데 오늘은 퇴근 후에 저녁거리를 사러 갈 힘도 없었다. 오늘 저녁은 배달음식으로 대충 먹기로 하고 다섯 시 20분쯤 집에 가서 고등학생 큰 아이가 오기 전까지 잠깐 눈을 붙였다.
저녁식사로 시킨 치킨을 조금 덜어 친정 부모님 댁에 가져다 드리고 친정 부모님 댁에서 놀고 있던 셋째 아이를 데리고 와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둘째가 영어학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간단히 설거지를 하고 큰 아이들이 요즘 푹 빠진 마라탕 재료를 아침 배송으로 주문하고 목이버섯을 사러 집 앞 마트에 가는 길에 산책을 잠깐 한다.
나는 요즘 저녁 먹고 잠깐 밖으로 나오는 이 시간을 하루 종일 가장 기다리는데 요즘은 저녁 날씨가 너무 상쾌하고 바람도 시원해 이어폰을 꽂고 걷는 이 시간이야말로 엄마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그저 나만 생각해도 되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가 이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때는 어디든 따라나서는 셋째를 잘 데리고 앉아서 놀아주거나 설거지를 한다.
다행히 우리 집 앞에서 우리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이 피는 데크로드가 잘 되어 있고 데크로드만 따라 걸으면 20분 동안 산책을 할 수 있고, 데크로드를 벗어나 큰길을 건너면 바다가 보이는 수변 공원에도 갈 수 있다. 농담으로 남편에게 우리 동네 수변 공원이 시카고 셰드 아쿠아리움 근처의 수변 공원보다 낫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동네 수변 공원 맞은편에는 커피숖과 맛있는 음식점과 영화관, 대형 마트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서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안전하다.
데크로드 끝나는 지점에는 스타벅스도 있어 나는 가끔 미국에서 스타벅스 가던 생각이 나거나 스타벅스 상품권이 생기면 저녁에 산책 나가서 컵을 사 오거나 원두를 사 올 수도 있다.
오늘은 마라탕에 들어갈 목이버섯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오니 9시가 조금 못 되었다.
내일은 학교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으니 우리는 모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새벽까지 공부하던 큰 아이도 오늘은 둘째 아이와 체스를 한판 해 주고 씻고 어느새 거실에 내 옆에 앉아서 종알거리더니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매일 10시의 강박에 매여 10시가 넘으면 책을 읽지 못해서 우는 셋째 아이도 오늘은 11시까지 책도 볼 수 있고 게임도 조금은 할 수 있다. 둘째 아이도 영어 숙제를 주말로 미루고 동생과 놀아주었다.
주말이 있고 쉼이 있어 힘든 일도 참고 할 수 있다.
힘들었지만 평화로운 하루의 마무리. 오늘은 조금 늦게 잘 수 있는 이 여유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