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실천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어려움
지금껏 나는 업(業)으로써 사회복지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워낙에 이곳저곳 이직(移職)이 잦았던터라 스스로 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자평(自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한번 직장을 옮긴 요즘 점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는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사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스스로 던지는 질문치고는 너무나도 원초적인 질문이다. 현재 맡은 직책이 직원들을 이끌고 사회복지를 실천해야 할 처지에 있다보니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직원들을 볼 낯이 없을 것만 같아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단지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망상이라고 가볍게 웃어 넘길 일만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가
보통 사람들은 나같은 사회복지사가 당연히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그게 정작 나는 쉽게 수긍이 잘 안된다. 직업이라는(특히 급여을 받고 일하는) 것이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적당히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 그만일텐데 구태여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들면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왠지 배부른 생각이라는 것쯤은 모르는바가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돈을 받고 일한다고 다 똑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더군다나 지금 내가 하고 있은 일은 다른 일도 아닌 '사회복지'가 아닌가. 사회복지 일이 단지 먹고 살기위해 억지로 하는 일이라면 나는 정말 슬플 것 같다. 만약에 그렇다고 하면 사회복지사와 보이스피싱 일당이 다를게 뭐가 있겠나 싶다.
나 같은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삼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공무원과 별반 다를게 없는 직업이다. 누가봐도 사회복지는 분명 옳은 일이고, 그걸 실천하는 사회복지사도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이 서지 않는 걸까? 인터넷에서 정부가 하는 일들에 달린 댓글을 보다보면 좋은 말은 찾아보기 힘들고 비판하고 욕하는 말들이 훨씬 많다. 정부에서 하는 일은 당연히 국민들을 위한 사업일테고, 공무원들은 지침에 따라서 수행할 뿐인데 그걸 두고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인터넷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 현장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는 국민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고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정책이기 때문에 누가봐도 사회복지는 옳은 일이고, 그걸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회복지사의 일도 반드시 옳은 일일텐데 사회복지 정책을 만드는 순간부터 현장에서 사회복지사가 실천하는 사소한 행위까지 옥신각신 말들이 참 많다.
사회복지를 실천한다는 건, 사회복지사가 시설이나 사무실, 지역사회 안에서 일로서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것은 서비스일 수도 있고, 행정이 될 수도 있고, 조직을 경영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사회복지사 개인이 가진 가치관이나 의지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게 함정이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는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복지사가(또는 공무원이) 어떻게 사회복지를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옳은 일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다시 "사회복지는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무작정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자로 씌여진) 사회복지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실들, 이를테면 사회복지에 대한 정의, 법률에 적힌 문구 하나하나, 교과서에 실린 사회복지 이론과 실천방법들, 사회복지시설 입구에 붙여 놓은 설립근거와 미션, 비전, 가치, 핵심사업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쓴 각종 보고서들 ...... 어느것 하나 부정(不正)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당연히 옳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다.
사회복지사는 도덕적인가
만약 길을 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도덕적인 사람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자기자신이 부도덕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건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하는 일이 부도덕하고 청렴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회복지사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 양(羊)의 탈을 쓴 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소시오패스(sociopath, 사회병질자)이거나 아니면 사이코패스(psychopath)일 가능성이 크다. 둘 중에 뭐가 됐든 간에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역사회와 타인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반사회적 인격을 가졌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사회복지사는ㅡ같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들도 마찬가지ㅡ 우리가 사는 사회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필수 직업군이다. 만약 사회복지사가(또는 공무원이 또는 의사, 변호사, 판·검사, 군인, 경찰 따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주어진 일을 단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일한다면 이 사회는 정말 희망이 없는 고담시티(Gotham City: 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된 범죄도시)와 별반 다를게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는 다른 어떤 직업들보다 더 완벽한 도덕성과 고도의 공감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도덕성이라는 것이 개인의 양심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스스로 도덕성을 판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소시오패스라서가 아니라) 사회복지를 실천하다보면 사회복지사는 어느정도 수준에서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기도 하고, 또 도덕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행위를 최대한 합리화시키며 살아간다. 어차피 실천의 결과로 인한 도덕적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규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딱히 책임질 일도 별로 없다는게 이 바닥의 현실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와 같은 공공(公共)의 일은 도덕성을 대신 판단해주는 제3의 견제장치를 마련해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점검을 하게 한다거나, 몇몇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수시로 감시를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와 같은 공적인 일들은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서 오히려 부도덕하기가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과 부패, 또는 직장 내 갑질을 일삼는 사회복지사라면 가까운 정신병원에 가보는 것이 맞다. 물론 스스로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안타깝지만 사회복지는 언제나 옳은 일인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사회복지사의 도덕성도 그다지 믿을 만한게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 말한 사회복지에 대한 전제가 틀린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는 옳은 일이고, 그 실천도 도덕적·윤리적으로 올바르게 행해져야 하는게 맞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부도덕한 사회복지사마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요지경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도덕적이고 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마땅히 공경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게 잘 안된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동이 올바른 것임을 알면서도 막상 눈앞에 닥치면 망설이게 된다. 뇌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뜻 거절하지 못한다. 이는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인간이 선함을 알고도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커다란 약점이다.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적어도 대학에서 수년간 전공으로 공부를 마쳐야 한다. 사회복지 전공과목에는 사회복지의 가치와 철학, 실천 기술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윤리의식도 가르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배울만큼 배웠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그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또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회복지를 실천에 옮기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중국 명나라때 철학자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아는 것은 곧 실천의 시작이고, 행하는 것은 곧 배움의 결실이다. 그러므로 지행을 함부로 쪼갤 수 없다"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했다.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실천했을 때 비로소 "안다"라고 할 수 있다. 안다고 해서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다'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알고 있는 지식을 오용하면 오히려 큰 민폐를 끼칠 수 있다. 부도덕한 사람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오용해서 실천한다면 아주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현장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다. 사회복지사가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사회복지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사회복지 지식을 오용해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사회복지사 개인의 앎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타인(또는 사회)에 큰 해(害)를 입힐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사의 실천은 사회복지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되고, 사회복지에 대한 앎(지식)은 제대로 된 실천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사회복지를 제대로 안다는 것 무엇인가? 그건 사회복지사의 실천(행동)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회복지는 실천학문이다. 알면서도(아는 척?!하면서) 제대로(도덕과 윤리에 맞게) 실천하지 않으면 그건 사회복지를 아는 것도 사회복지도 아니다.
명확히 깨닫고 정확히 파악한 것을 행하는 것이 곧 앎이요, 실재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 곧 행이다. 실천해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알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헛된 망상에 불과하기에 행해야 한다. 이처럼 앎과 실천은 본디 하나다.
―왕양명《전습록》中
사족(蛇足): 흄(David Hume)의 문제
사회복지의 현실과 가치,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복지사가 제법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윤리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의 묘사'와 '가치의 당위' 문제를 '흄(David Hume)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회복지 실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런 가운데 당위성을 찾아내지 못하는 과정에서 오는 가치관의 혼란은 사회복지를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알고,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고민이다. 혹여라도 이러한 '흄의 문제'로 인해 사회복지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포기하려는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사회복지를 제대로 실천하라는 양심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다.(♣)
― 자꾸 챗바퀴를 도는 느낌이지만(철학적 사유란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알쓸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