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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빈 Oct 12. 2020

종로의 보령약국

을씨년스러운 광장시장과 보령약국의 하얀 디멘터들,

그들은 빙빙돌아 동심원의 방향으로 생명을 받고 내어주기를 반복한다.

그러고나면 종로에는 깃털이 부산스럽게 자신의 흔적을 정박했다.

경화된 각질이 도망가버린 그날.

일요휴무는 부단히도 한주의 기억들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이북식 저녁을 먹고나서 토치카에서의 광기와 우체국의 괴물들을

상기하며 아모레미술관의 나무에 앉고서기를 반복했다.

깃털들의 움직임, 광기의 소리, 괴물의 영도.

다시 한 주를 부단히도 준비하는 이북의 사물들.

-

하루를 온전히 전시를 보는데 사용했다.

서울에 가면, 나는 왠지 모르게 나를 가혹하게 대한다.

시간이 없다고 없을것이라고 빨리는 아니더라도 서둘러야지라는 마음으로 다리를 부추긴다.

종로5가의 전시장을 나와서 마주한건 광장시장이였다.

이전에 군대에 있을 때 다른 소대의 친구랑 이곳에서 육회와 전을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꽤나 이국적으로 잘생긴 그아이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나가다가 tv조선의 인터뷰를 할뻔도 했지만 유유히 산책의 길로 통했다.

그런생각의 찰나 길목에서 눈에 미친 보령약국은 마치 신선한 충격, 진부한 용어가 되어버린 컬쳐쇼크로 작용했다. 약국이 은행의 모티브를 따서 운영하는 것처럼 창구가 있고 여러명의 흰 가운을 입은 정정한 약사 선생님들이 사방의 꼭지점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광장시장의 고요함, 을씨년스러운 그날의 온도와 달리 보령약국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하얀 디멘터(해리포터에서 나오는 영혼을 빼앗는 괴물?)같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적절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약사는 약봉투를 챙겨줄것인데 그 두 가지가 모두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을 마칠 즈음, 을지로 3가까지 걸어가는 길목에는 유난히도 비둘기 깃털이 부산스럽게 땅을 점유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왠지모를 불안한 기운들. 전시장에서부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검색하는 곳마다 일요휴무를 가용한 상태에서 그것이 한 주의 부단함을 보여주는 끝머리 같았다. 머리카락과 피부의 각질이 떨어지는 것처럼, 벗겨나가는 것처럼 깃털도 조류에겐 각질이 아니던가. 경화된 각질이 도망을 간 것인지, 자발적인 탈반의 작업을 거친것인지 모를 일요일은 모두 일요휴무를 위한 저장장치였다. 그 각자의 기억들을 난 헤아릴 수 없다. 그렇게 토치카에서 보낸 1년을 보고나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한후 탈영역 우정국이라는 전시공간에서 본 마지막 날의 전시. 이미 생성된 사물의 물성을 해체하여 새로운 조형을 구축한 작가님의 작업. 입구의 검은장막은 겆혀있고 나는 그들의 미로속에서 부단히도 사진을 찍어댔다. 왼쪽으로도 비비고 오른쪽으로도 비비고. 그 사물들이 매달리거나 뻗쳐있거나 쌓아있거나 하는 게 어느 형태로도, 어느곳에서나 나타나는 괴물들의 모습같았다. 그래서 깃털들의 움직임과 토치카에서 전송받은 광기의 분열음들, 괴물들의 각도들은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신용산에 있는 이북식 찹쌀순대집에서 걸쭉한 국물을 흡입하고 바로 옆에있는 아 모레퍼시픽 미술관의 긴 나무의자에 몸을 앉혔다. 너도나도 가고싶은 오토바이, 차들의 음성, 사람들의 모습은 재빠르게 해산했다. 


집으로 가는 기차까지 2시간 30분이 남았는데 눈과 귀와 다리는 기능이 저하되었고 그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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