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타히티 바다 레지던시

현재, 모오레아(mo'orea) 섬

by 파나오

몸을 움직이면서 하루를 시작해야할 것 같은 마음에 웃옷을 걸치고 신발을 신었다. 멀리 가지진 않는다. 고바위 언덕에 사는 탓에 작은 산책도 격한 운동이 되기 십상이다. 정말 말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의 정의에 부합할 만큼만 걸었다. 길 옆을 따라 계곡이 흐르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늘 호박잎을 따오는 터를 둘러보았다. 어제부로 늙은 호박 하나를 다 먹었기에 초록잎 사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호박은 없고 달개비만 무성하다. 망고 나무 꼭대기에는 주렁 주렁 달린 망고들이 붉게 물들어가는데 못해도 십오미터는 될 높이여서 감히 넘보지는 못하고 입맛만 다신다. 그밖에도 길에는 다양한 모양의 풀들이 있다. 내가 배운 대부분의 풀에 관한 지식은 한국에 관한 거여서 이곳 타히티의 들풀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떤 풀은 한국에서 알던 풀과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먹어봐도 되는 건지 확신은 없다. 아마 이쯤에서 누군가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앱(app)을 사용해 검색하란 말을 할 법도 하다. 아직 그정도로 절실하진 않은 것 같다. 일단은 망고와 호박잎을 채집하는 것으로 만족.

채집한 것들과 자전거 사고 상처

엊그제 만들어둔 퇴비함을 돌아본다. 플라스틱 화분에 드릴로 물구멍을 뚫고 땅을 파서 묻었다. 지리산자락 숲에서 지낼 때를 생각해보면 먹은 것과 싸지른 것들이 모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큼 큰 만족감을 준 요소도 없었다. 퇴비함을 만들기 전에도 음식물 쓰레기는 들판 여기 저기에 흩어 버리곤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풀을 기르고 싶기에 그것들을 모아 퇴비로 만드는 퇴비함부터 만들게 된 것이다. 풀을 기르는 일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한국과 계절도 기후도 다르고, 한국처럼 텃밭 농사에 관한 지식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잘 알지도 못한다. 배울 수 있는 이들의 존재가 고프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에 관한 정보조차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은 가까운 곳에 우프(wwoof) 운영을 하는 캠핑장이 있음을 알게 됐고 거기에 있는 정원을 보고 힌트를 얻기로 정했다. 마코가 (종류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원 일을 하기에 여러 장비를 다 갖추고 있는 것에서부터 일단 감사하다. 마코가 내가 없는 동안 폐목재를 구해다 뒷마당 두 군데에 텃밭 자리를 잡아놓았다.


"어디로부터 정보를 얻나? 어떻게 안 것을 스스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막연히 책을 뒤지고, 소셜 네트워크를 뒤적이고, 무작정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느껴진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연결들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것이 이번 이곳 방문에서 해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적어도 그 필요를 절절히 느끼는 것까지라도.

또 하나의 주제는 돈 없음이다. 돈이 없고, 적당한 돈 벌이도 없다. 그 사실이 조금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경험도 아니어서 한편으로 덤덤하기도 하다. 2020년 즈음부터 돈 없이도 지낼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연마해왔다. 채집과 퇴비만들기도 그 중 하나고, 바다에서 노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나에게는 그 어떤 빚도 앗아갈 수 없는 바다와의 진득한 관계가 있다. 바다에서 노는 것을 무턱대고 좋아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어렸을 적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나오는 베짱이의 처지처럼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나는 초등학생 때 개미와 베짱이 연극에서 베짱이 역할을 맡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기도 하다. 사라질 수도 있고 비교당할 수도 있는 돈과 같은 기준에 스스로를 얽매지 않고,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이 필요로하고, 길러내고 싶은 자산을 일구어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느껴서다. 지난 1년을 지나오면서 마침내 닿은 여기 이 마음에서, 나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어마어마하게 짜릿한 만족감을 느낀다. 전혀 다른 환경의 낯선 바다를 잔뜩 누비고, 게다가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뿐 아니라 기초 해양 생태학과 생물학을 통해 바다 자체에 대한 배움을 연마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이던 열대 바다에서 이제는 아는 얼굴들이 더 많다. 마치 잘 모르는 이들만 가득하던 파티에 가던 기분에서 이제는 함께 차도 마시고, 안부도 묻고 조금 긴 대화도 나눌 수 있는 모임에 드나드는 기분이다. 물론 여전히 모르는 것도 아주 많지만. 돈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와 상관 없이 여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나의 배짱(!)이 대견하다.


나는 여기서의 조금 긴 머뭄을 '바다 레지던시'라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도 바다에 매일 간다는 점은 똑같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과 프리다이빙을 나누고, 스스로도 잠수를 단련한다는 점도. 바다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배움을 구하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바다를 통해 더 연결하고 싶은 것도 같다. 지난 1년의 여정을 좀 더 찬찬히 돌아보고, 소화할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마침 떠난 지 딱 1년 되던 날에 자전거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덕분에 피가 좀 났고, 며칠 동안 어정 어정 걸음도 엉성해졌다.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동거인과 작은 다툼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방수 밴드를 붙이고 바다에는 계속 갔다.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몸이 속도를 늦춰준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1년 바다살이 중 이 정도로 다친 것은 처음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앎을 구할 것인지?"의 문제가 한편으로 글을 쓰기를 더 어렵게 하기도 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보고, 듣고, 어떻게 내놓아야 그것이 침략적이지 않은 앎이 될까. 마치 처음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을 접하고 맞닥뜨렸던 어려움과도 비슷하다. 내가 안다고 믿었던 세계, 나의 앎의 방식이라고 믿었던 세계관이 또 한 번 흔들리고 부서지고 해체하는 중이다. 분하고 어이가 없게도 이미 나에게 '탈식민'에 관해 읽으라고 권해준 동료들은 십년 전부터도 많았다. 지금 읽는 중인 응구기와 씨옹오의 글도 대학 때 수업을 같이 들었던 누군가가 읽으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글인데, 이제야 읽는다. 아직 소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겠거니. 한국 바깥에서 여러 인종적 관점에 대해 체감하고, 부딪히고, 탐구하면서야 비로소 왜 '식민주의'에 대해 내가 파헤쳐야 하는지 그 필요를 절절히 느낀다. 홀랑 홀랑 떠다니는 여행자로 살면서 저변에서 느꼈던 찜찜함, 어딘가 갑갑함, 미진함, 소화되지 않음, 미묘한 소외감, 또는 죄책감... 그런 것들이 날 여기로 이끌었다. 일 년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슈를 여러 사람들과 그들의 관점에서 대화 나누며 여기까지 온 것도 있다. 한국 안에 있을 때의 나는 어떤 글을 읽거나, 관점을 접하고는 쉽게 그것이 내 것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어버리곤 했던 것 같다. 한국 밖이라고 갑자기 나의 세계가 월등히 넓어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한국 바깥에서 무언가를 마주하고, 상호작용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과정이 한국 안에서보다 훨씬 더 더디고, 막막하고, 거칠고, 괴로운 따름이었다. 그렇게 몸을 갈고, 들이밀고, 짜내어가며 다다른 '앎'이야말로 조금이나마 몸에 남는가보다.


모든 우연적인 연결, 주변같은 만남들에 이 배움을 빚지고 있다고 느낀다. 히치하이킹하며 만난 사람(헤레모아나라는 이름을 가진 운전자. =바다를 사랑한다는 뜻)들, 여전히 머물수밖에 없는 도미토리 숙소에서 만나는 이들, 입술에 문신을 하고 타히티 댄스 페스티벌에서 내 옆에 앉아 하카를 말하는 마오리 사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산으로 우릴 데려가며 지역 농산물에 대해 말해주던 까미긴 섬의 제임스, 겨울이면 언제나 귤을 나누어주는 제주 이웃들, 물 속에서 구르고, 뛰고, 퍼덕이는 아이들의 반짝거림...


바다 연결자가 되기. 바다와 인간을 연결하면서 마주할 그 울퉁불퉁하고 복잡함을 다 살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몸으로부터 말하기 위해서 이 모든 여정을 다 겪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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