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때는 혹하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김 부장의 오찬담화

2025년 1월 1일 세는 나이

나는 서울 자가에 공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다.

2025년 1월 1일이 된 오늘,

한국식 나이로는 51살, 연 나이로는 50살이 되었고, 만 나이로는 아직 50살이 되기까지 몇 달 남았다.

써놓고 보니 송희구 작가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패러디 같다.


2021년 발간된 이 웹소설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난다.

20~30대 직장인들이 꿈꾸는 눈앞의 소망인

그 비싼 서울에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 하나 갖는 것,

그리고 회사에서도 부장이라는 관리자 타이틀을 달아보는 것,

이런 세속적인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일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던 이유는 현재 나의 모습도 수많은 "김 부장"과 크게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 살이 미완의 청춘과 불안으로 제각각이듯이

쉰 살 아저씨도 그저 "김 부장"이라고 형상화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고 불안한 제각각인 인생들이다.


그런데 인생에 대한 의미는커녕 누가 몇 살인지 물으면 아직도 내 나이가 몇인지 헷갈린다.

2023년 6월 28일 법적 사회적 나이 기준을 일원화하는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었다.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가 1월 1일에 두 살이 되는 셈법은 한국에만 있다며,

한국식 나이가 불합리한 관습이라고 치부하였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것이 아니라 미역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반세기가 훌쩍 넘게 행정적으로는 만 나이와 연 나이를 써왔고,

생활 속에서는 세는 나이를 아무런 문제 없이 써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바꾸는 거지? 사람들은 왜 아무런 저항이 없는 거지?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고 싶어 하는 어린 친구들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려지고 싶은 어른 인구가 훨씬 많아진 고령화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는 나이 :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나이

그런데 사실 신정이라 불리던 양력설 1월 1일에 떡국을 먹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구정이라 불렸던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서 어... 그새 한 살 더 먹나?라는 의문과 함께

매년 1월과 2월 사이는 세는 나이의 혼란의 시기이긴 했다.


1894년 7월 27일(음력 6월 25일)부터 1895년 7월 6일(음력 윤 5월 14일)까지

추진한 근대화 개혁인 갑오개혁(또는 갑오경장; 甲午更張)의 일환으로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월 1일로 선언하며 서양의 양력을 공식 도입했다고 한다.


나의 흐릿한 기억에서도 TV에서는 구정, 신정이란 말이 있었고

양력 1월 1~3일은 소위 빨간 날인 공휴일이었지만 음력 설인 구정은 그냥 평일이었다.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쳐 군사정권은 구습이라며 신정에 차례를 지내기를 장려하였지만,

자발적으로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양력 1월 1일을 신정으로 삼아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많았지만,

1980년대 후반 까지도 전통이 짙게 남아있던 지방을 중심으로 더 많은 민중들은 끈질기게

공휴일도 아니었던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불편을 감수했었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군사정권이었던 제5 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고 지정하며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민속의 날이라니...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긴 군사 독재를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끝내고 직선제를 골자로 한 새 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 지으면서 같은 해 10월 29일 제6공화국이 설립이 되었지만,

1988년 2월 25일, 12.12의 또 다른 주역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노태우 정권이 1989년 1월 24일에 '설날'이란 명칭을 비로소 복원하였고

섣달그믐부터 3일간 연휴로 지정하였다.

어찌 보면 "설날"은 민중들의 부단한 투쟁의 산물이지 거저 얻어진 연휴가 아니다.


그렇게 어렵게 되찾은 설날이 한 세대도 못 가서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에도 힘겹게, 겨우 이어오던 설날 풍습이

Covid-19를 거치며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설날은 긴 여행을 떠나는 연휴로,

새해 다짐은 양력 1월 1일에 하는 것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래도 세는 나이인 한국식 나이가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다.

사실 세는 나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던 나이 셈법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한국만 광범위하게 쓰이는 나이로

외국 사람과 처음 만날 때 Icebreaking 하기 좋은 소재였다.


중국에서는 허세(虚岁; 쉬쑤이), 일본에서는 세는 나이(数え年; 카조에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근대화를 거치며 만 나이만 쓰고 특별한 경우에만 세는 나이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은 전통대로 음력 1월 1일에 세는 나이를 먹는다.

한국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음력 설인 설날이 되어야 한 살 더 먹어야 하지만,

신정과 설날(음력설)의 복잡한 역사로 인해

그냥 양력 1월 1일에 한 살을 더 먹는 동서양의 융합적인 독특한 나이 시스템이 되었다.


오늘 아내가 끓여준 만두가 든 떡국을 먹으며

아직 49살이라는 만 나이로 위안받으며, 아직 음력설 전까지는 50살이라는 나만의 세는 나이를 고집하며,

연 나이로 50이 되었다는 무게감에

올해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보기로 다짐하였다.

설날도 아닌데 왜 떡국을 끓여?라는 속마음을 깊숙이 숨기면서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