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가 씌어서) 자신의 반려동물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특별해 보인다고 한다는데.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쥬도와 보내는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그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싶어졌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익숙해지면서 함께 만들어 놓은 루틴 같은 게 생기고 자연스레 신뢰가 쌓였다.
어쨌든 나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파악을 했다. 그리고 최대한 불편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편안해하는 것을 가능할 때마다 해 주려고 한다.
한마디로 서로에 대한 학습이 완료되었다.
쥬도는 아침마다 내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항상 문 앞에 마중을 온다. 늦게라기 보다, 내가 정말 이른 새벽기상을 하지 않는 이상 일정한 시간대가 되면 먼저 찾아온다.
그런 다음 문 앞에서 정말 콩알만 한 소리로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미 그가 온 것을 알고 잠에서 깨서 속으로 피식하고 웃고 있다.
그렇게 숨죽이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칭얼거림은 설렘과 흥분으로 변한다.
쥬도가 기분 좋을 때 자주 하는 특유의 '호로롱~' 소리로 퍼링(purring), 일명 골골송을 하면서 동그랗게 한 바퀴 돈다. 나는 문안 쪽에서 그 소리만으로 쥬도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전부 그려낸다.
왜냐면 쥬도를 '학습'했기 때문에.
문 밖에서 일어나는 행동이 내 눈에는 뻔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고도 내가 나오지 않으면 그의 설렘은 약간의 조급함으로 변하는 듯하다. 문을 벅벅 긁으면서 처량한 울음소리를 낸다.
쥬도는 그 패턴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바로 나를 '학습' 했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는 쥬도가 그럴 때마다 벌떡 일어나서 문을열었다. 그는 문을 긁으면 내가 문을 열고 나온다는 것을 학습했다. 자주 그렇게 깨서 나가다 보니 문제는 수면의 양에 조금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고 지속되면 힘들어질 것 같아서 대책을 마련했다.
바로 쥬도가 문을 긁기 시작하면 '쓰읍~' 하고 입으로 센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냈더니 영리한 쥬도는 어느 순간부터 그 행동을 멈추라는 말로 아주 잘 알아듣고 문긁기를 멈추었다.
주말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수면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해 그것을 이어나갔고 아침잠을 잘 자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고양이는 학습을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쥬도는 곧 학습에 대해 진화의 단계에 이르렀다. 바로 나의 '쓰읍'이 잘 통하던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쓰읍'을 하면 잠시 그만하고 문 앞 앉아서 조용히 기다리다가 몇 분 후에 다시 문을 긁었다.
나는 진화된 이 영리한 고양이에게 패배하고 이젠 웬만하면 기분 좋게 모냥콜(?)로 단숨에 일어나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침마다 먼저 찾아와 주는 고양이에 감사하며 방문을 열고 나가면
마치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는데 왜 이제야 나오냐는 듯 원망이 섞인 것처럼 고개를 들고 눈을 고정하여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야옹야옹 거린다. 그리고 머리로 박치기(헤드번팅)를 하며 내 가랑이 사이를 나왔다가 들어갔다 난리가 난다. 그리고 내 손에 머리를 비비고 쓰다듬어 달라는 신호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데 마치 한바탕의 아침 축제가 열린 듯하다.
덕분에 매일 아침 기상 시간은 마치 환영 축제 같다.
하루에서 가장 두렵고 힘들던 아침이 가장 기분 좋고 설레는 시간으로 변했다.
나는 그렇게 격한 환영을 하며 마중 오는 고양이가 예뻐서 엉덩이를 토닥이고 만져주기 시작했고, 하루 중 유일하게 가장 세게 엉덩이를 팡팡 때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아침에 새로운 하루 시작에 만났을 때 이다. 왜냐면 다른 때는 엉덩이를 너무 세게 토닥이면 살짝 냥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그 사실을 파악하고 나서부터는 아침에 최대한 세고 찰지게 즐기고(?) 오후에는 살짝만 가볍게 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내가 어떤 강도로 엉덩 팡팡을 하여도 감사하게 날 봐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학습이 잘 되어서 이제는 일명 '낄낄 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절묘한 배려까지 갖추게 되었다.
쥬도는 전 보호자들과 지낼 때 쓰던 잠을 자는 쿠션 위에는 쥬도의 애착인형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전 집에서 그가 페럿들과 난리법석으로 너무 힘들게 지냈는데 소니야가 함께 사이좋게 친구 하라고 일부러 그랬는지 가장 잘 못 어울리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존재를 모델로 만든 페럿 인형이 아이러니 하게 쥬도의 애착인형이라는 사실이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난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오고 나서 점점 자신이 쓰던 쿠션 위를 더 이상 가지 않더니, 거실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고정 잠자리 없이 부랑자 처럼 매일매일 바꿔가면서 잠을 잤다. 초반에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고 걱정이 되어서 아침에 최대한 소리 없이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재빠르게 나왔다.
왜냐하면 이 고양이가 도대체 어느 방향에서 어디에서 잠을 자다가 나오는 건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각이 매우 발달한 이 고양이는 역시나 내가 문을 여는 순간 항상 이미 어딘가에서 방 쪽으로 걸어오는 중이다.
반려동물 홈카메라를 설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으로 어디서 잠을 자는지 궁금했다.
동선 분석 결과 거실 앉은뱅이 탁자 아래에서 잠을 청하는 것을 알게 되고, 러그만 덩그러니 깔려있는 그곳에다가 쥬도가 자주 앉아있던 식탁 의자의 방석을 희생하여 그곳에 놓아주고서 한쪽에 방치된 옛 애착인형도 함께 올려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애착 인형이 있는 곳에는 몸을 가까이 대지도 않고 오히려 더 불편하게 피해서 어정쩡하게 앉아 있길래 괜스레 걱정이 되어서 고민하던 찰나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나는 그 인형을 집어 들고서 평소 쥬도에게 하는 행동을 했다.
인형을 쓰다듬으면서 '예뻐요~ 어이고 예뻐요~ '하면서 소리로 뽀뽀하는 척을 했더니 쥬도는 고개를 돌려서 내가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예상외로 별 반응이 없길래 인형을 내려놓고 앉았는데 쥬도가 나에게 다가와서 냄새를 킁킁 맡는 듯하더니 갑작스레 내 발을 깡 물었다.
사냥놀이를 해주다 보면 흥분해서 또는 내가 안아주다가 금세 내려놓으면 더 해주라고 떼쓰는 정도로 내 발을 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발을 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어찌 콩깍지가 씐 보호자로서는 나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질투가 나서 발을 물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쥬도는 정말 사회성이 높고 상황파악을 아주 잘하는 고양이라고 늘 생각했고 여러 가지 정황들로 인해 나는 그를 단순 반려동물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로 보게 되었으며, 그렇게 생각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다녔다.
나에게 있어서 그를 설명할 단어는 ‘반려동물’ 보다는 감정이 있는, 지능이 있는, 인격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였다.
집을 한 달 정도 비우고 돌아왔다.
과연 나를 알아볼까, 낯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뒤로하고 냄새를 몇 번 맡더니 만족스러울 때 하는 행동인 쩝쩝 거리며 고개를 내 손에 파묻어 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완전한 껌딱지 모드로 내 무릎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 박고 잠자기를 시전 했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한시도 안 헤어지려고 졸졸졸 따라다니는 것 보면 분명히 고지능인 것은 확실하고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따라올 정도가 되어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야 하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되었다. 내 근처나 내 무릎 위에서 너무 곤히 코를 골고 잠이 들어 있을 때면 화장실을 참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터지기 일보 직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나는 자리를 일어나면 역시나 단잠 자던 쥬도는 꿈에서 깨어나 나를 따라온다.
원래도 분리불안이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을 할 정도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긴 하지만 긴 이별 후 재회하자 , 마치 내게 '네가 너무 보고 싶었고 다시 헤어질 까봐 무서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더욱더 밀착이 되어 내 뒤를 밟는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 걸으면서 자꾸 눈을 맞추려 하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하고 자꾸 시야에 두려고 하는데, 어찌 쥬도가 단순히 동물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쥬도를 동물로 보는 것을 멈춘 지 오래다.
내가 이마와 미간에 뽀뽀를 하기 시작하고 쪽쪽 소리를 할 때마다,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저항할 수 없는 듯 무겁게 꿈뻑이고, 쩝쩝거리면서 만족스러워하는 그 모습을 보면 분명히 쥬도도 감정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다.
쓰다듬어 달라고 표현할 때는 다가와서 한 발로 내 무릎을 툭툭 건드리고
안아달라고 표현할 때는 두 발로 내 무릎을 쓸어내리는 행동을 하며
번쩍 들어서 안아주면 온몸에 힘을 빼고 골골송을 부르고 숨을 거칠게 쉬면서 콧소리를 내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이제 그만 내려가고 싶을 때는 몸을 슬쩍 비틀어 의사표현을 하는
내 고양이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거.
맞는 것 같은데?
(제대로 콩깍지)
쥬도가 단순히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