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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치료 센터 대기실의 풍경과 센터라이딩에 대한 기록

by 오뚝

아이가 소아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아스퍼거(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게 되어 발달 치료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3개의 치료(감각통합, 언어, 사회성)를 주 2회 할 것을 권유받았는데 경제적으로 빠듯해서 추후에

주 1회로 변경하고, 치료 후 치료사님이 주는 피드백을 참고해서 나머지는 엄마표 수업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센터 수업을 다녀보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어린이 집에서 아이를 픽업해서 센터까지 데리고 가고, 아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치료가 끝나면 치료사 선생님과 오늘 수업에 대해 간단히 상담 후, 집까지 다시 데리고 가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아이가 발달 치료를 받을 때 부모는 치료실 안에 들어갈 수가 없고, 밖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데 대기실에 있다 보면 다른 부모들과 마주하게 된다.


모두 아이 치료를 목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수다를 떠는 분위기는 아니다.


센터마다 분위기에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센터는 그렇다.


부모들은 치료실에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며 폰을 들여다보면서 잠깐의 여유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지만 표정들은 무겁고 지쳐 보인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치료를 마치고 치료실 문을 열고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띤 얼굴로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 문제에 심한 스트레스를 느껴서 대기실에서 보이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그저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람, 아이 행동에 두통이 느껴지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사람,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서 아이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는 사람, 조부모님이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초등학생정도된 손자 ㆍ 손녀를 데리고 왔는데 처음 받는 뇌파 검사가 너무 무섭고 아플 거같이 생각되었는지 지금 당장 부모한테 전화를 걸어 달라며 울고, 흥분해서 소리쳐서 진땀을 빼시다가 결국 직장에서 급히 달려온 부모, 병원 자체에 겁을 먹고 있어서 키랑 몸무게를 재는 일에도 자지러지게 울며 거부하는 아이,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정신과에 자신을 데려온 부모가 못마땅해서 계속 투덜거리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청소년, 곧 있으면 성인 범주에 들어가는 장애 청소년을 센터에 데리고 다니며 케어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선생님, 낯선 대기실과 대기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어 엄마, 아빠 손을 끌고 병원 밖으로 자꾸 나가자고 호소하는 어린 자녀들, 그런 자녀를 이리달래고 저리달래는 부모 등 다양한 장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발달에 문제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들 중에는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긴장, 초조, 공황장애,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아이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정신과 약을 먹으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위태로운 부모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달 장애 아동을 둔 부모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치료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경제적인 이유들로 인해 부모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며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나의 경우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얼마 전부터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데 심리 상담도 마음에 어느 정도 힘과 여력이 남아있어야 이 문 턱을 밟을 수가 있는데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사람들은 이 문턱을 걸어 들어올 힘조차 없다는 심리 상담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또 한 번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아픔에 잠식되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것이 무섭고 슬펐다.


아이 발달 치료 대기실에서 만나는 다른 아동들과 부모님들을 보면서 공감대가 많이 느껴지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아이가 보여 남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또 그들을 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 보게 되어서 발달센터 대기실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발달치료 센터의 장점은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에 대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따가운 시선과 눈총을 주기보다는 으레 이해해 주고, 수용해 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센터 밖에서는 이해와 허용받을 수 없는 것들이, 센터 안에서는 서로서로 받아들여주는 분위기고, 치료사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를 반갑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는 것에서 우리 아이가 수용받음에 부모들의 숨통이 잠시잠깐이라도 트이기 때문이다.


치료가 끝나면 10분 정도 상담 타임이 있는데 상담 타임에 느꼈던 점을 써보자면, 아이는 치료가 끝났으니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문 앞에 서서 집에 가자고 계속 조르거나 치료사 선생님과의 대화에 끼어들거나 방해를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치료사 선생님은 오늘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시고, 나는 피드백을 들으면서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


아이가 상담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얌전하게 기다려줄 리 만무하다.


상담할 동안 아이를 잠깐 봐줄 인력이 따로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상담 시간이 정신이 없다.


센터 라이딩에 대해 써보자면, 우리 가정의 경우 아이가 진단을 받은 병원 발달센터(바우처 사용이 불가능)에서 치료를 우선 시작했는데 1시간 수업을 받기 위해 주 2회, 왕복 3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바우처 사용이 가능한 사설 발달센터와 병행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곳의 경우 다행히 집과 가까워서 도보로 다니고 있다.)


아이와 나는 버스로 센터를 왕복했는데(아이가 지하철은 거부), 때 올 때 환승을 각각 2~3회 해야 했고, 어린이 집을 마치고 센터에 가서 치료 수업을 받고 나오면 퇴근 시간대라 버스가 만원일 때가 많았다.


이것이 싫으면 어린이 집을 주 2회 결석하거나 아니면 오전 일찍 치료 수업을 받고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등원시키는 방법이 있었으나 만원 버스를 피하고자 그렇게 하는 것은 내키지가 않았다.


아직 버스에 서서 가기엔 무리인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버스로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리가 어느 정도 비어있는 버스를 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빈자리가 없는 버스는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끔 두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을 때는 아이랑 나란히 앉아 그나마 편하게 갔지만 한 자리가 비어 있을 때는 겨울이라 아이도 나도 두둑한 외투를 입은 채 아이 어린이집 가방은 등에 매고, 보조가방 하나는 손에 들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30분 정도 가다 보면 다리도 저리고, 아이를 두 손으로 앉고 있어야 해서 목이랑 어깨랑 팔도 아팠다.


그와 동시에 우리 아들의 제한된 관심사가 '버스'이다 보니 버스를 타고나서도 난관이 많았다.


우리 아들은 버스를 타면 내릴 때 하차벨을 본인이 꼭 눌러야 하는 루틴이자 강박이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할 경우 그전 정거장에서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벨을 재빨리 누르고 자신이 버스 벨을 누른 것에 대해 의기양양해하고 기뻐한다.


역으로 타인이 먼저 하차벨을 누르거나 벨을 누르지 못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이 전에는 이를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벨을 누르기 좋은 자리로 이동을 계속 요구하거나, 벨을 누를 수 있는 자리가 날 때까지 버스에서 안 내리고 계속해서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원래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서 다른 사람이 벨을 눌렀으니 다음 정거장까지 가서 벨을 누르고 집까지 더 오랜 시간을 걸어가거나, 억지로 안고 내리면 정류장에서 요지부동이 되어 버스를 다시 타서 벨을 누르겠다고 울고불고 떼를 썼던 날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마다 너무 힘들었는데 반복된 교육으로 이제는 타인이 먼저 벨을 누르면 혼자 궁시렁 궁시렁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정도에서 그치거나 벨을 누르지 못하는 좌석에 앉게 되면 다음 환승 시나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서 데리고 내린다.


환승을 할 때마다 버스벨 하나에 울었다 웃었다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고, 다독이고, 반복해서 교육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꽤 많이 소진되었다.


또 아이가 조용함이 요구되는 장소에서 목소리 톤을 낮춰서 얘기하거나(사회성), 말하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있어야하는 상황에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담아두지못하고 쉴새없이 말하다보니(충동 조절의 어려움) 버스에 타서 큰 목소리로 계속해서 얘기를 해서 "소. 곤. 소. 곤 "이라는 손신호나 말을 여러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일 또한 피곤을 가중시켰다.


예전에는 목소리 자체를 낮게 낮추지를 못했는데 요즘은

낮추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내가 "소"라고 운을 띄우면

"곤"이라고 대답하면서 잠시 잠깐은 말없이 조용히 앉아서

간다.


그리고 퇴근 시간대는 빈좌석이 있는 버스를 만나기가 힘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빈자리가 없는 버스에 올라타는 경우도 있었는데 나와 아이를 보고 임산부석이나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가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승객분들도 계셨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분들께서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경우도 꽤 많아서 난감함과 감사함 그리고 죄송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급정거와 급정차로 인해

아이가 서서 가기에는 위험해서 아이도 서서 가는 것에 불안을 느꼈기에 자리를 양보받으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간혹 잊으면 상기시켜 주어서 '양보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표현하게 하였고, 빈자리가 많은 버스를 타게 되거나 한자리에 같이 앉아서 비좁게 가다가 옆에 타고 있던 승객이 내려서 두 자리에 나란히 앉아 여유롭게 갈 때는 "우리 운이 좋았어! 하이파이브!"를 유도하니 나중에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운이 좋았네."라며 미소 지어 보였다.


최근 들어서는 바로 옆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안녕하세요? 혹시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셔요?"를 물어본다.


아이가 버스 노선을 꿰고 있기 때문에 옆에 앉은 승객이 어디쯤 가면 내릴 테고 그러면 나와 두 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편하게 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본인이 하차벨을 누를 수 있는 자리로 옮겨 앉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으로 바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버스"와 "버스 하차벨"이 우리 아이의 절대적인 관심사이자 기쁨이자 슬픔이다.


그리고 아이가 하차벨을 누를 때 아직은 키가 작아서 무언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데 버스 좌석을 밟고 일어서게 해서는 안 됨으로 내 허벅지를 딛고 하차벨을 누른다.


그러면 허벅지 부분이 아이 신발 발자국으로 오염이 되기 때문에 주로 어두운 색의 바지를 입고 다니는 편이다.


이 부분에서 '배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한 번씩 하얀색 바지를 입고 "엄마는 하얀색을 좋아해. 오늘은 하얀색 바지를 입었으니 배려해 줘."라고 말하면 드물게 하차벨 누르는 것을 참아줄 때도 있지만 아직은 그것을 절제하는 것이 많이 힘든 거 같다.


그래도 하얀색 바지에 자기 발자국이 찍히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센터 가는 날에는 내가 무슨 색 바지를 입고 왔는지부터 살핀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타인과 주변을 인식해서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나가길 바래본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하차벨을 누르고 앉으면 적어도 아이 손으로 내 바지를 털게끔 시키고 있다.


나처럼 센터 라이딩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자차로 센터를 다니는 부모들은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날은 아이가 버스 안에서 잠이 들어서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안고 내려야 할 때도 있었는데

짐도 있고, 카드 환승도 찍어야 하고, 아이 몸무게도 있어서 난감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저녁이 다돼서 집에 도착하면 배도 너무 고프고, 녹초가 되었다.


센터 수업을 받아보니 수업받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매 수업마다 오늘은 이런 걸 했고, 이런 부분은 잘되고,

이러한 부분은 안된다는 피드백을 듣게 되는데

안 되는 부분은 집에서 보충이 이루어져야 해서 수업이 끝날 때마다 부모인 나에게도 숙제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숙제 말고도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 대해 칭찬을 듣는 일이 아닌 안 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듣는 일이 생각보다 괴로운 일임을 느꼈다.


어린이 집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과 센터에서 듣는 아이의 부족함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 들을수록 힘이 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아이 케어에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별개로 그런 피드백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의욕과 동기유발이 자꾸만 상실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이 또한 적응이 되겠지만 매주 그런 피드백을 계속 듣고 있자니 정신적으로도 에너지가 팍팍 고갈됨을 느껴졌다.


지금 나의 상황은 에너지가 비축되지는 않고, 계속해서 끌어다 쓰기만 하는 기분이라 나에게 계속해서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최근에 나를 위해 시작한 심리 상담을 통해 그 빚을 조금이나마 탕감해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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