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로치의 영화들 <케스>, <엔젤스 셰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년의 크리스마스, 친한 사람들과 함께 아트나인에서 영화를 보았다. 선택한 영화는 아무 정보 없이 당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켄 로치 감독은 학교 수업에서 교수님의 과제 때문에 그의 영화들 중 <엔젤스 셰어> 와 <케스>를 본 경험이 있었다. 당시 과제로 본 영화들이었지만 재미를 느껴 그의 영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나와 친구들은 추운 크리스마스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다.
그때까지 한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본 경험이야 당연히 있지만 한 감독의 영화를 짧은 기간에 몰아본적은 없었다. 켄 로치 감독이 첫 경험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행운이었다고 느낀다. <케스>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거의 40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은 놀랍도록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1969년 작인 <케스>는 캐스퍼라는 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의 주위환경을 보면 아버지는 집을 나갔으며 그의 어머니와 형은 매를 기르고 싶은 그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은 일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아동학대에 가까운 핍박과 고통을 주는 가족들이다. 또 캐스퍼는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서 뿐 아니라 선생들에게도 왕따를 당하고 있고 가정형편 때문에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엔젤스 셰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주인공인 로비는 성인인데 그의 아버지와 형은 범죄자이며 로비 또한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삶을 살아왔고 이미 교도소까지 다녀왔다. 부모님 세대부터 원수지간인 클랜시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고 연인인 레오니의 아버지로부터 헤어지라는 협박과 회유에 시달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은 위의 둘보다는 나은 처지이다. 그는 평생을 목수로 일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유한 형편은 아니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정도는 먹여살려왔다 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현재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실업급여를 받으려 했으나 자신의 질병이 의사에게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입증 받았지만 관공서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급여를 받지 못한 채 심장병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이다.
정리해서 보았듯이 켄 로치 감독영화의 주인공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지금 현재 곤란한 상황에 처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케스>의 캐스퍼는 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가지게 될 직업을 골라야 한다. <엔젤스 셰어>의 로비는 보호관찰기간이라 돈을 벌지 못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은 늙은이로서 현대사회에서 소외되어 인터넷도 활용할 줄 모른다. 그러나 세 영화들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케스>의 캐스퍼는 케스라고 이름 지은 매를 키우면서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투명한 미래 등을 그저 묵묵히 참아낸다. 그것들을 대면해 맞서 싸우거나 이겨내려는 어느 시도도 없이 홀로 케스만을 돌본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케스는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면서 캐스퍼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모두 잃게 된다. 1960년대 한창 노동환경이 변화하던 그 시기에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절망적이고 어두운 모두의 꿈을 앗아간 어둠의 도시라 생각한 듯하다. 꿈과 희망을 빼앗긴 채 그의 아버지와 형과 주위 친구들이 그러하듯 하나의 노동자로 살아갈 캐스퍼를 통해 켄 로치 감독은 희망이 없는 도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대략 40여년이 지나고 <엔젤스 셰어>라는 작품에서 다르게 변화한다. 로이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범죄자가 되어 지금도 보호관찰 대상이지만 그에게는 위스키 감별사로서 활동할 수 있을만한 뛰어난 후각이 있다. 우연하게 발견했지만 그에게도 다른 이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재능을 이용해 위스키 제조공장에서 위스키를 훔쳐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한다. 주위에 동료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케스>와는 달리 주위에는 모자라지만 착한 보호관찰 대상 동료들이 있다. 그들은 결국 위스키를 훔치고 로이는 위스키 제조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사회의 도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이는 재능을 발견하고 활용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기회를 얻는다. 캐스퍼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인 형에게 짓밟힌 것과는 전혀 다르다. 켄 로치 감독은 시간의 흐른 뒤의 사회를 여전히 불우하고 도움 되지 않는 사회지만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본 것 같다. 캐스퍼와 로이 같은 몇 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불행한 삶이란 존재하지만 그사이에 행복을 찾으려 했으나 뭉개진 캐스퍼와 달리 로이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을 통해 켄 로치 감독은 사회 보호망의 부족함을 강조한다. 영화는 이야기 내도록 비슷하게 실업급여를 받거나 주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를 돕는 모습을 묘사한다. 다니엘은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케이티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케이티 또한 다니엘에게 은혜를 보답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다니엘의 이웃들을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케스>처럼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엔젤스 셰어>처럼 동료에 가깝다. 그러나 다니엘의 가장 큰 적은 정부이다. 그들의 복지 정책은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며 일처리는 느리고 답답하다. <케스>에서 사회와 불행에 뒤덮인 인간들이 문제였고 <엔젤스 셰어>에서 그나마 희망적이게 변한 사회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문제인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사회 구성원들은 밝고 미래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정책에 따른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 받는다. 결국 다니엘은 소송방법을 찾다가 한 변호사를 찾아 법원에 가던 시점에서 심장병으로 인해 사망이라는 결말을 맞는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회 구성원을 정부는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의 자신을 도와주었던 다니엘을 위해 연설하는 케이티에게서 드러난다. 주위 사람들을 볼 줄 알고 선행을 베풀던 다니엘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해 죽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켄 로치 감독은 조금은 변한 인식을 보여준다. 사회 구성원들과 인식은 변하였다. 그것은 밝은 미래를 내포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부의 정책들은 그 밝은 미래를 답보상태로 만들고 있다.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고도 생각하고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라고도 생각된다.
뒤늦게 언급하지만 켄 로치 감독의 세 영화들은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본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사회이다. 감독은 그 안에서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이 보는 사회를 나타내고 있다. 절망적인 사회에서 희망이 보이는 또 정책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박찬욱, 시간과 시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크리스토프 놀란, 이야기의 재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쿠엔틴 타란티노등 각각의 개성으로 유명한 감독들이 많다. 켄 로치 감독은 독특한 개성으로 유명한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오래도록 영화를 만들었고 그 세월동안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를 영화에 녹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것은 단 3편의 영화만을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로인해 한 개인이 바라보는 사회를 긴 세월에 걸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로 푸는 역사이야기 같은 그의 영화들을 연속해서 보면서 영화가 한 사회의 거울로서 얼마나 훌륭히 기능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와 비교해 긴 세월동안 장인처럼 사회의 이야기를 영화로 녹여낸 켄 로치 감독의 대단함에 감탄했고 그의 생각에 섞여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의 영화를 계승하는 우리나라 영화를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