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 — 채무자의 심리를 설계하는 기술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
경제학은 이 믿음 위에 세워졌고, 법률은 이 전제를 기초로 설계되었으며, 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계약과 약속과 거래는 모두 이 가정에 기대고 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든 가용한 정보를 수집하고, 확률을 완벽하게 계산하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합리적 존재. 이 이름은 오래도록 인류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장 자랑스러운 칭호였다.
그러나 1974년, 두 심리학자가 룰렛 한 바퀴로 이 거대한 환상을 산산조각 냈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 이스라엘 태생의 이 두 사람이 세계적 학술지 《Science》에 발표한 논문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가장 정면적인 반박이자 행동경제학의 기원이 되었다.
실험은 모욕적일 만큼 단순했다. 피험자들 앞에서 0부터 100까지 숫자가 적힌 원판을 돌렸다. 바퀴가 멈추면 숫자 하나가 나온다. 질문은 이것이었다. "유엔에 가입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합니까?"
룰렛의 숫자와 아프리카 국가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피험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퀴는 조작되어 있었다. 한 집단에는 10이, 다른 집단에는 65가 나오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결과는 인류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가했다.
10을 본 집단의 추정치 중간값은 25퍼센트였다. 65를 본 집단은 45퍼센트였다. 완전히 무작위로 돌아간 원판의 숫자가, 지적인 성인들의 판단을 20퍼센트포인트나 벌려놓은 것이다. 연구진은 추정의 정확도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제공해보았다. 돈을 걸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의미 없는 숫자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면서도, 일단 입력된 수치를 판단의 기준점으로 삼아버리는 맹목적인 자력(磁力)에 지배받고 있었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앵커링. 닻 내림.
인간은 불확실한 수치를 추정할 때, 최초로 접한 숫자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로부터 조정을 시도하되, 그 조정은 항상 불충분하게 끝난다. 닻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카너먼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겼고,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수백 년 된 대전제를 학술적으로 폐기시켰다.
같은 논문에 실린 수열 실험이 이를 한 번 더 확인했다. 1×2×3×4×5×6×7×8을 5초 안에 추정한 집단의 중간값은 512였다. 8×7×6×5×4×3×2×1을 추정한 집단은 2,250이었다. 정답은 40,320이다. 동일한 수열이다. 순서만 뒤집었을 뿐인데, 앞의 몇 단계에서 생성된 초기 계산값이 닻이 되어 추정치를 수십 배나 왜곡시켰다.
현상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왜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닻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 닻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뇌에 박히는지를 완전히 해부하지는 못했다. 이후 반세기에 걸쳐 세 갈래의 연구가 이 빈자리를 채웠다.
프리츠 스트락과 토마스 무스바일러가 1997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서 내놓은 선택적 접근성 모델은 앵커링을 기억의 문제로 재정의했다. 앵커가 제시되는 순간, 뇌는 그 값이 정답일 수 있다는 가설을 즉각적으로 세운다. 그리고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앵커와 부합하는 정보를 기억 속에서 우선적으로 탐색한다. 조정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기억 검색 자체가 오염된다.
티모시 윌슨 연구팀은 1996년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서 더 극단적인 결과를 보고했다. 비교 질문이 없어도, 앵커와 판단 대상 사이에 의미적 연결이 전혀 없어도 앵커링은 작동한다. 피험자들에게 4,421에서 4,579 사이의 무작위 숫자를 단순히 베껴 쓰게 했다. 그 뒤에 "향후 40년 내 암에 걸릴 학생 수"를 물었다. 큰 숫자를 베낀 집단이 유의미하게 높은 추정치를 내놓았다. 실험 후 피험자의 86퍼센트가 "숫자 베끼기가 내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닉 에플리와 토마스 길로비치가 2006년 《Psychological Science》에서 완성한 통합 모델은 왜 조정이 항상 부족한지를 해명했다. "보드카의 어는점은 몇 도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인간의 뇌는 물의 어는점 0도를 자발적 출발점으로 삼고 거기서 답을 향해 이동한다. 이 이동은 작업 기억의 에너지를 극심하게 소모하는 의식적 작업이다. "대략 맞는 것 같은" 범위에 도달하는 순간,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이동을 조기 종료한다. 에플리와 길로비치는 이것을 인지 부하 실험으로 증명했다. 알파벳 8자리를 동시에 암기시켜 작업 기억을 고갈시키자, 조정량이 101.4퍼센트에서 72.2퍼센트로 급감했다. 뇌의 연료가 바닥나면, 닻에서 충분히 멀어지기 전에 포기해버린다.
무작위 숫자가 기억 검색을 오염시키고, 의식적 조정은 인지적 피로 앞에서 조기에 좌초한다. 합리성이라는 배는, 닻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다.
전문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수년간 훈련받고, 매일 데이터를 다루며, 객관적 분석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무작위 숫자에 휘둘리는 일반인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1987년, 그레고리 노스크래프트와 마거릿 닐은 이 기대를 분쇄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했다. 애리조나주 투손. 실제 매물로 나온 주택이 무대였다. 경영대학원 학생 집단과 현직 부동산 중개업자 집단을 현장에 데려갔다. 두 집단 모두 10페이지 분량의 상세한 팸플릿을 받았다. 주변 시세, 건물 상태, 금융 조건이 담긴 정보였다. 유일하게 조작된 변수는 팸플릿에 적힌 희망 매도 가격이었다. 실제 감정 평가액이 약 74,900달러인 집에 대해, 한 집단에는 65,900달러를, 다른 집단에는 83,900달러를 앵커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직접 집을 걸어 다니며 살펴보았다. 벽을 두드리고, 지붕을 올려다보고, 주차장의 크기를 가늠했다. 수년간의 경험이 축적된 눈으로.
그리고 앵커에 끌려갔다.
낮은 앵커를 본 중개업자들은 약 67,800달러로 평가했다. 높은 앵커를 본 중개업자들은 약 75,500달러로 평가했다. 동일한 집이다. 동일한 벽, 동일한 지붕, 동일한 주차장이다. 수천 달러의 차이가 팸플릿에 적힌 숫자 하나에서 발생했다.
참혹한 것은 사후 설문이었다. "최종 가치를 산정할 때 어떤 정보를 주로 고려했는가?"라는 질문에, 전문가의 단 8퍼센트만이 희망 매도 가격을 고려했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92퍼센트는 자신이 객관적이었다고 확신했다. 그 확신이야말로, 앵커링이 남긴 가장 깊은 상처였다. 전문 지식은 편향을 막는 방패가 아니었다. 편향된 판단을 사후에 정당화하는 더 정교한 논리를 제공했을 뿐이다.
같은 구조의 실험이 법정에서도 반복되었다. 비르테 앵글리히와 토마스 무스바일러가 수행한 연구에서, 평균 경력 15년의 베테랑 판사들에게 동일한 범죄 사실을 제시하고 검사의 구형량만 다르게 조작했다. 판사들의 최종 선고 형량은 구형량 앵커에 강하게 동화되었다. 법적 지식이 전무한 컴퓨터 공학 전공 학생이 검사 역할을 맡아 터무니없는 형량을 제안해도, 판사들이 스스로 주사위를 굴려 나온 무작위 숫자를 기준으로 형량을 물어도, 선고는 그 숫자에 끌려갔다. 부동산 중개인의 자신감도, 판사의 법복도, 닻의 중력 앞에서는 종이였다.
2003년, 한 편의 논문이 이 모든 발견에 마지막 못을 박았다.
조지 로웬스타인, 댄 애리얼리, 드라젠 프렐렉. 이들이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한 실험의 제목은 "일관된 임의성(Coherent Arbitrariness)"이었다. 인간의 선호는 안정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출발점은 전적으로 자의적이라는 뜻이다.
실험은 이랬다. 피험자들에게 자신의 사회보장번호 끝 두 자리를 적게 했다. 그 뒤에 와인, 초콜릿, 컴퓨터 부품의 가격을 매기게 했다. 사회보장번호가 높은 집단은 낮은 집단보다 동일한 상품에 최대 세 배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여기까지는 룰렛 실험의 변주다. 진짜 충격은 통제 조건에 있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사회보장번호가 완전히 무작위 숫자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알려주었다. 앵커링 효과의 존재를 경고했다. 편향을 피하는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까지 약속했다.
달라지지 않았다.
알아도 막지 못한다. 돈을 걸어도 막지 못한다. 편향의 이름을 알고,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피하겠다고 결심해도, 뇌의 시스템 1이 주도하는 자동적 점화를 시스템 2의 의식적 노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다. Li 연구팀이 2017년에 경두개 직류자극으로 우측 배외측 전두엽의 활성화 수준을 조작한 결과가 이를 뇌의 물리적 회로 수준에서 확인했다. 이 부위를 억제하면 앵커링이 증폭되고, 활성화하면 앵커링이 감소한다. 우측 배외측 전두엽은 편향된 정보가 작업 기억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관문이다. 그 관문이 열리면, 닻은 뇌의 가장 깊은 곳에 박힌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방어 수단은 있는가.
1984년, 찰스 로드와 마크 레퍼, 엘리자베스 프레스턴이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서 발견한 것은, 반세기에 걸친 앵커링 연구가 찾아낸 유일한 균열이다.
스탠퍼드 학부생 120명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통제군에게는 추가 지시 없이 자료를 평가하게 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판사처럼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세 번째 집단에게는 "만약 이 연구가 정반대의 결과를 냈다면, 당신은 어떻게 평가했을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공정하라는 다짐은 효과가 없었다. 두 번째 집단은 통제군과 동일한 수준의 확증 편향을 보였다. 아무리 진심 어린 다짐이라도, 다짐만으로는 뇌의 자동화된 정보 탐색 경로를 뒤집을 수 없다.
유일하게 편향이 감소한 것은 세 번째 집단이었다.
"반대를 생각하라."
이 구조적 명령만이 효과를 냈다. 앵커가 형성한 신경망의 점화를 끊어내고, 반대 증거를 의식적으로 탐색하도록 시스템 2를 강제 기동시키는 것. 뇌의 탐색 경로를 역방향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닻의 사슬을 끊어낸 유일한 도구였다.
크리스 보스가 2004년 아이티 인질 협상에서 사용한 것이 정확히 이 원리다. 납치범이 150,000달러를 요구했을 때, 보스는 카운터 앵커를 던지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조정된 질문으로 납치범의 사고 경로를 뒤집었다. 상대가 스스로 자신의 앵커를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최종 타결 금액은 4,751달러였다. 150,000의 3.2퍼센트. 흥정의 승리가 아니다. 닻의 해체다.
숫자에는 중력이 있다.
최초로 제시된 숫자는 이후의 모든 판단을 자신의 궤도 안에 가둔다. 무작위 숫자가 기억 검색을 오염시키고, 의식적 조정은 인지적 피로 앞에서 좌초하며, 전문 지식은 편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자각으로도 인센티브로도 이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는 유일한 경로는 "이 숫자가 틀렸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를 강제로 묻는 것뿐이다.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숫자 앞에서 왜 합리성을 상실하는가. 채무자가 왜 스스로의 파멸을 직시하지 못하는가. 협상 테이블에서 왜 최초의 제안이 최종의 결과를 결정하는가. 왜 거짓말은 유지되고, 왜 닻은 풀리지 않는가.
외통수. 이 단어가 이 책의 이름이다. 바둑에서, 상대에게 하나의 수밖에 남기지 않는 수. 선택의 여지를 소거하는 수. 인간의 판단을 지배하는 첫 번째 숫자가, 바로 그 외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