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되어라 — Part 2. 세계
국가가 대리인에게는 진실을 볼 권한을 주지 않겠다는 거대한 거부 선언 — 나는 그 선언 앞에서 한국의 위임직들이 어떻게 눈 가려진 사냥개가 되는지 매일 목도한다.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렸다. 부동산을 처에게 증여하고, 법인 예금을 현금화하여 대포통장으로 흘려보냈다. 추심인은 이 정황을 안다. 그러나 원계약서를 본 적이 없다. 이자 산정 근거를 모른다. 담보 설정 내역에 접근할 수 없다. 채무자의 과거 상환 이력을 확인할 통로가 없다. 본사가 넘겨준 것은 이름, 전화번호, 원금, 연체 기간이 적힌 엑셀 시트 한 장뿐이다. 추심인은 채권의 DNA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쫓고 있다.
그림자만 보는 자는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 사기꾼은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도주한다.
채권추심이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추심인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정보가 격리되고, 정보가 격리되기에 진실을 볼 수 없으며, 진실을 볼 수 없는 자는 결코 사기꾼을 잡지 못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신용 시스템의 동맥경화다. 혈전을 제거하는 방법은 당사자에게 진실을 볼 렌즈를 쥐여주는 것이다.
영국과 호주는 이 렌즈를 쥐여주었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채권추심을 규율하는 방식은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채권추심을 '허가받은 대형 법인만이 수행할 수 있는 금융 업무'로 규정한다. 자본금 50억 원이라는 장벽이 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소수의 거대 신용정보회사가 시장을 독과점한다. 영국은 채권추심을 '적격한 개인이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서비스업'으로 접근한다.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의 자질로 자격을 판단한다.
FCA 인가 절차의 핵심은 적격성 테스트(Fit and Proper Test)다. 인가를 신청하는 개인이든 법인이든, 주요 인력은 반드시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평가 항목은 기술(skills), 경험(experience), 무결성(integrity). 금융 비즈니스를 정직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통과한 자는 '승인된 개인(Approved Persons)'의 지위를 획득하고, 이를 위반하면 개인적으로 법적 제재를 받는다. 기업 내 주요 경영진은 고위 경영진 기능(Senior Management Function)으로 분류되어 FCA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책임 소재가 투명하게 규명되는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
자본금 요건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고객 자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채권관리업체의 최소 자본금은 5,000파운드, 약 850만 원이다. 한국의 50억 원과 비교하면 0.17퍼센트에 불과하다. 영국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한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정적 차이는 정보 접근권이다. FCA가 CONC 규정을 통해 추심인에게 채권의 모든 생애주기를 들여다볼 렌즈를 강제로 쥐여주었을 때, 정보의 격리라는 장벽이 무너졌다. 영국 모델에서 채권관리회사는 원채권자로부터 채무자의 원본 데이터 — 상담 이력, 지불 능력 증거, 원계약서, 과거 상환 기록 — 를 의무적으로 이관받는다. FCA의 공정 대우(Treating Customers Fairly, TCF) 원칙을 지키려면, 채무자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DNA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격리를 법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한국의 위임직이 엑셀 시트 한 장을 들고 전화를 거는 동안, 영국의 인가 추심인은 채무자의 금융 DNA를 손에 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채무자가 "그 돈은 이미 갚았다"고 주장하면, 영국의 추심인은 원계약서와 상환 이력을 대조하여 즉석에서 사실을 확인한다. 한국의 추심인은 "본사에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순간 협상의 권위는 붕괴한다. 채무자는 안다 — 이 사람은 결정권자가 아니라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의사결정 마비. 즉각적 결정권(Discretionary Power)이 없는 전달자의 비애다. 영국의 인가 추심인은 자기 라이선스, 자기 책임, 자기 판단으로 협상 테이블에 선다. "나는 이 채권의 관리자이자 결정권자다." 이 한 문장이 교섭력의 전부다.
호주의 모델은 이 구조를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호주에서 금융권 부실채권을 다루는 추심업자는 연방법인 NCCP 2009(National Consumer Credit Protection Act)에 따라 ASIC(호주증권투자위원회)으로부터 호주신용라이선스(Australian Credit Licence, ACL)를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 2021년 7월 법률 개정으로 기존의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채무 협상(Debt negotiation)과 신용 수리(Credit repair) 서비스 제공자도 ACL 취득이 의무화되었다.
핵심은 이 라이선스가 개인 사업자(Sole Trader)에게도 차별 없이 발급된다는 점이다.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고, 책임 관리자(Responsible Manager)를 지정하며, 호주금융민원기구(AFCA)에 의무 가입하면 1인 추심 사업자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경우 보증보험 요건은 개인 6,000호주달러(약 530만 원), 법인 10,000호주달러(약 890만 원)에 불과하다.
라이선스는 '뺏길 수 있는 자산'이다. 이 한 문장이 보신주의를 사명감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의 전부를 설명한다.
한국의 위임직은 사고가 나면 위임계약이 해지된다. 꼬리 자르기. 다른 신용정보회사와 새 계약을 맺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잃을 것이 없으므로 지킬 것도 없다. '사고만 나지 말자'는 보신주의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호주의 ACL 보유자는 다르다. 라이선스 자체가 자산이다. 이 자산을 유지하려면 전문성을 증명해야 하고, 규제를 준수해야 하며, 소비자 불만이 누적되면 자산이 소멸한다. ASIC은 2024/25년에 기만적 행위로 소비자를 유린한 채무관리업체 'Bakken Holdings'의 ACL 발급 신청 자체를 거부하여 시장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시장 진입은 저렴하고 용이하게 열어두되, 적격성을 상실한 주체에 대해서는 존립 기반을 붕괴시키는 구조다.
라이선스가 자산인 사람은 그 자산을 지키기 위해 전문성에 투자한다. 위임계약이 전부인 사람은 전문성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자본의 부재가 아니라 동기의 부재가 산업을 원시적 노동집약 상태에 고착시킨다.
그리고 이 라이선스는 성장의 씨앗이 된다. 호주에서 개인 사업자(Sole Trader)로 ACL을 취득한 추심인이 사업을 확장하면, ASIC을 통해 새로운 법인(ACN)을 설립하고 라이선스를 법인으로 이전한다. 개인 사업체 시절의 모든 고객 계약과 권리 의무를 양도 및 갱신(Novation) 절차로 승계한다. 1인 사무소에서 합동사무소로, 합동사무소에서 법인으로 — 영국도 동일하다. 개인 사업자가 유한회사(Limited Company)로 전환할 때, FCA에 '단독 증서(Deed Poll)'를 제출하여 과거 비즈니스의 모든 책임을 신규 법인이 승계함을 서약한다. 이 성장 경로가 한국의 금전채권신탁업자 모델 — 1인 사무소에서 합동사무소, 합동사무소에서 신탁 법인으로의 진화 — 의 완벽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기술적 불협화음이 이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
21세기의 핀테크와 AI는 라이선스 기반의 '당사자'들에게는 축복이다. 영국의 ABI(영국탐정협회)는 ICO(정보위원회)로부터 승인받은 GDPR 행동 강령을 통해, '합법적 이익(Legitimate Interest)'에 근거한 채무자 추적과 데이터 처리의 적법성을 획득했다. 이 법적 기반 위에서 디지털 추적 도구, 자산 분석 알고리즘, 실시간 신용 모니터링이 작동한다. 기술과 법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국의 위임직에게 같은 기술은 족쇄가 된다. AI가 채무자의 자산 패턴을 분석할 수 있어도, 위임직에게는 분석할 데이터 자체가 없다. 디지털 추적 도구가 존재해도, 변호사법 제72조가 자산추적을 '법률사무'로 간주할 위험이 있어 활용할 수 없다. 전자소송 시스템이 있어도, 당사자가 아니기에 로그인할 수 없다. 법은 19세기 민법의 위임 계약에 멈춰 있고, 기술은 21세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법적 불협화음. 이 불협화음이 산업의 진화를 질식시킨다.
영국 FCA는 2024/25 회계연도에 130건의 집행 작전을 수행하고, 37건의 최종 통지서를 발부하며, 1억 8,600만 파운드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고, 1,456개 업체의 인가를 취소했다. 이 수준의 감독이 가능한 이유는 감독 대상이 '인가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주고,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구조. 한국의 금감원이 위임직 개인에게 이 수준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가. 가할 수 없다. 위임직은 계약을 해지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책임의 외주화.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는 구조에서, 감독은 허공을 향한 주먹질이 된다.
영국과 호주가 증명한 것은 단순한 제도의 우월성이 아니다.
추심인에게 국가의 인장을 찍어주었을 때 —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자에게 정보 접근권을 부여하고, 자기 이름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라이선스를 발급했을 때 — 산업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증명했다.
정보의 격리가 해제된다. 그림자가 아닌 DNA를 본다. 의사결정 마비가 해제된다. 전달자가 아닌 결정권자가 된다. 자본의 부재가 해제된다. 라이선스라는 자산을 지키기 위해 전문성에 투자한다. 책임의 외주화가 해제된다. 꼬리 자르기가 불가능해진다. 라이선스가 개인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하나다. 당사자성의 부여.
이 구조가 해결하는 것은 산업의 효율성만이 아니다. 사법 접근성(Access to Justice)의 사각지대를 채운다. 영국에서 대형 로펌이 수임 단가가 맞지 않아 돌려보내는 소액 채권을, FCA 인가 개별 사업자가 맡는다. 호주에서 ACL 보유 1인 추심인이 지역 사회에 밀착하여 중소 상거래 채권을 관리한다. 변호사도, 대형 신용정보회사도 외면하는 서민의 소액 채권 — 납품 대금 500만 원, 개인 간 대여금 300만 원 — 을 '내 재산처럼' 관리하는 민간 해결사. 이 역할을 한국에서는 아무도 수행하지 않는다. 변호사의 착수금이 채권 원금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인 사업자가 850만 원의 자본금으로 채권관리업을 시작하는 영국의 구조를 "위험하다"고 말할 것이다. 530만 원의 보증보험으로 추심 사업을 허가하는 호주의 구조를 "허술하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FCA는 1,456개 업체의 인가를 한 해에 취소할 수 있는 사후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호주의 ASIC은 부적격 업체의 시장 접근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거부권을 행사한다. 진입은 열고, 퇴출은 단호하게. 이것이 자본금 50억 원의 사전 규제보다 효과적인 모델이다.
동맥경화를 고치는 법은 명확하다. 혈전을 제거하고 당사자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되어 정보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기꾼의 도주로를 차단하려면, 그림자 너머의 실체를 추적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다음 장에서 미국과 영국의 탐정업(PI)이 채권추심과 어떻게 융합하여 '그림자가 아닌 DNA를 보는 기술'을 구현하는지 해부한다.
권한 없는 자부심은 기만이다. 당사자가 되어야 진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