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요조와 임경선 작가가 쓴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으며 교환일기를 쓰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어. 요즘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재미있는 것 하나 없었거든.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는데다가 회사에서는 무급휴직으로 월급이 많이 줄었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많이 없다고 생각했어. 주위를 둘러보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주변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더라.
그러던 중 언니의 제안은 뜻밖에 찾아온 신선한 자극이었어. 과거를 반추하며 우울해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던 내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신선한 자극.
덕분에 일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 것 같아. 가뭄이 든 내 마음에 내리는 단비 같았어. 제안 해줘서 고마워. 이제는 기다릴 것이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한 주 한 주를 기대에 부풀어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아.
혼자서 글을 쓰려고 하면 뭔가 대단한 글을 써야 되고,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조금 발전시켜 나가다가도 항상 끝을 맺지 못했어. 완벽하지 못할 글을 완성하기 무서웠던 것 같아.
설령 혼신의 힘을 다해서 완성을 했더라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꺼려했어. 남이 나를, 그리고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할 지 걱정 하느라 자가검열도 심했고. 남이 쓴 좋은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좋은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해지니 눈은 자꾸 높아져 글을 쓰는 데는 역효과가 났다고나 할까? 내 글이 잘 쓴 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게 보여서 자꾸 쓴 글을 등 뒤로 숨기게 되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글을 오랫동안 써왔던 작가들과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나를 왜 비교했나 하는 생각도 드네. 바보 같은 고민이었어.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겁은 나지만 애초부터 서로 일기를 교환을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쓰려고 하니 편지를 쓰는 것처럼 내 속마음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는 적어도 한 명의 독자가 있을 거라는 거.
이렇게 교환 일기를 쓰다 보니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돌려 쓰던 자물쇠가 있는 교환일기장이 떠올라. 지금 쓰는 교환 일기에는 그 때의 일기장과는 다르게 자물쇠가 없고, 종이였던 일기장은 워드로 바뀌었어. 가장 달라진 것은 내가 더 이상 초등학생이 아닌 20대 후반이 되었다는 것. 그 때 썼던 일기의 내용은 언제 놀러 가자. XXX 바보. 내가 누구게? 등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 그저 친구들과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에 즐거워했던 것 같아 그 때는.
그 당시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 하지만 그 때도 지금과 같이 남들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고 글을 완성하는 데는 서툴렀어.
그런데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남들과 같이’ 공부하고 대학가고 취직해서 먹고 살기 바빠서 어느 샌가 그 꿈과는 점점 멀어져만 갔던 것 같아. 어느 해에는 책을 거의 한 권도 읽지 않기도 했고, 점점 더 글을 읽고 쓰는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더라.
그렇게 꿈을 잊고 지내던 차에 우연히 언니를 만나게 되었어.
언니는 항상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바쁘게 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 매 번 물어볼 때 마다 다른 책을 읽고 있더라. 그리고 거의 매 달 한 편의 단편을 썼지. 알면 알수록 놀라웠어. 매일 퇴근 후 집에서 한 시간씩 글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 성실한 사람도 있구나. ‘우리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꿈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멋있구나. 그에 반해 나는 책을 이렇게 놓고 살았는데. 도대체 내 꿈이 뭐지? 나는 뭘 하고 싶지? 나도 한 때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한 번 써볼까?’ 라고 생각을 했어.
생각을 실천에 옮겼지. 차차 책을 다시 읽게 되었고, 글을 쓰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어. 그 결과로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는 것 같아.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써내려 나가는 것이 즐거워. 그 과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더더욱 감사해.더군다나 언니를 회사의 거래처에서 만났다는 게 정말 정말 신기해. 언니를 만난 건 회사에 들어와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행운이었어.
일기의 첫 머리를 열게 되어서 좋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즐거운 고민을 했어. 이 이후에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될 지 궁금하다.
너무 신나서 일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하루 만에 만에 줄줄 써버렸어. 그만큼 언니의 글을 더 빨리 볼 수 있을 테니 좋다. 언니의 글은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이번 글은 여기서 줄일게.
<< 그 책을 읽으면서 계속 니 생각이 났어 >>
- 오츠
주떼에게.
첫 번째 일기 잘 읽었어. 내가 교환일기를 쓰자고 했을 때 그런 기분이었구나? 낯간지러운데 기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감정이 느껴졌어. 원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 네 일기가 나한테는 내 칭찬, 그 자체로 읽혔거든.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인 것 같아. 너도 알지? 괜히 몸을 꼬게 되거나 무뚝뚝하게 답하게 되거나 아니라고, 아니라고 여러 번 부정을 하게 되잖아. 있는 그대로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되더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칭찬에 인색한 것 같아. 칭찬을 바라면 어리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봤고. 칭찬은 어린애만 좋아하는 게 아닌데. 어른들도 칭찬과 관심이 필요하잖아? 애정은 못 줘도 지나가는 칭찬 한 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힘나게 만드는데. 안 그래? 잘했단 칭찬까진 아니더라도 고생했단 노고를 위로하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아, 이야기하다 보니 또 괜히 열을 내고 있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칭찬을 자주 받고 나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면 칭찬 받는 걸 쿨하게 받아들일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
일단 지금은 아닌가 봐. 조금 민망하네. 사실 나라는 사람 자체도 칭찬을 잘하는 편은 아니더라고. 누군가를 칭찬해야겠다 생각하면 잘했다, 이 정도의 말 밖에 안 나와. 소설 쓸 땐 그렇게 온갖 어휘를 다 고민하면서 칭찬에 대해선 어째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말을 할 때 내 진심은 순도 백퍼센트야. 그런데도 기가 막힌 칭찬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평소에 많이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거겠지. 그래. 여하간 칭찬은 기쁘네. 니 글을 읽는 내내 실실 웃는 내 입가를 보니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내가 표정을 숨길 줄을 모르잖아.
그 책을 읽으면서 계속 니 생각이 났어. 이렇게 말하니까 꽤 로맨틱해 보이네? 근데 그 책을 읽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볼 것 같아. 만약 내가 교환일기를 쓴다면 누구랑 쓰면 좋을까? 이런 생각. 나도 그랬어. 그리고는 생각했지. 만약에 교환일기를 쓴다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랑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건 내게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뜻하는 말이었어.
이렇게 정의하고 나니까 또 고민이 생기더라고. 좋은 대화가 뭘까? 어떤 대화를 해야 좋은 대화라고 할 수 있지? 한 주제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를 해야 좋은 대화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해야 좋은 대화인 걸까?
그런 게 좋은 대화라면 우리 둘은 좋은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깊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설득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잖아. 주제 하나가 나오면 너는 니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내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해. 의견이 같으면 서로 격하게 공감을 하고, 의견이 다르면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신기하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그게 끝이야. 우린 서로에게 영향은 받되 설득하려 하진 않지.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였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런 대화를 좋은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어쩌면 좋은 대화를 생각하는 것보다 안 좋은 대화를 제외해버리는 게 더 빠른 일 같다고도 생각했어. 니 생각은 어떠니?
두 번째로 나랑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민망하게도, 우리 둘의 관심사는 완전히 다르더라.
간단하게 생각해도 너는 쇼핑을 좋아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운동 삼아 혼자 공원을 걷지. 맥시멀리스트이고, 그러다 보니 물질 위주의 관심사가 많아. 하지만 나는 쇼핑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고, 취미로 하는 건 돈 안 쓰는 덕질, 운동은 살기 위해 다니는 그룹 필라테스. 것 외에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돈을 쓰지 물건에 돈을 쓰진 않아. 이렇게 써두니 우리 둘, 정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너를 떠올린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우리 둘에게는 가장 중요한 공통 관심사가 있더라고. 책과 글. 우리 둘 다 그것을 너무 사랑하잖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나누고. 좋았던 책에 대한 이야기. 잘 쓴 글에 대한 이야기.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욕망들. 그런 것들에 대해 같이 나눌 수가 있잖아. 어쩌면 우리 둘은 자아라는 것이 글자를 통해 표출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해. 그것이 둘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거고, 게다가 우리는 그게 통하는 관계인 거고.
그러니 관심사가 많이 겹칠 필요가 없는 거지.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슷하니까. 이건 니 생각을 물어보지 않겠어. 나는 이미 결론을 내렸거든. 말하고 싶으면 말해도 좋아. 후후.
내가 처음에 교환일기를 쓰자고 했을 때 니가 그랬지. 혼자는 너무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용기가 나질 않았는데, 언니랑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말에 가볍게 생각하라고 조언 했던가? 그랬던 주제에 첫 일기를 주절주절 쓰고 나니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슬쩍 드네. 역시 사람은 참 얄팍하고 알 수 없고, 함께가 아니면 안 되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오늘은 공감이야. 어쨌든 우리… 둘이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보다야 났지? 그래….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