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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Feb 29. 2020

내 손으로 생산한 디지털 쓰레기

무의미한 셔터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스마트폰이 뛰어난 속도로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사진 찍는 일은 누구에게나 손쉬운 일이 되었다. 어릴 때만 해도 여행을 가거나, 생일 파티를 하거나 특별한 날에만 장난감처럼 생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필름이 아까우니 사진은 한 컷씩 찍어야 했고 그저 그런 풍경들에게 셔터질은 허용되지 않았다.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는 날이면 가족이 모여 앉아 한 장 한 장 사진을 돌려봤다. 여기까지가 나의 어린 시절 카메라를 대하는 방법이었다.


아빠는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해주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사진을 책임지던 필름 카메라는 장롱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필름 카메라와의 이별이 시작되었고 곧 디지털카메라와의 이별 또한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부터 디지털카메라와도 서서히 멀어졌다. 바로바로 내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고 바로 SNS 업로드할 수 있는 기능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보정 어플도 많았고 그 당시엔 화면 속에서 더 예뻐진 내 얼굴을 남기고 싶었는지 셀카를 몇백 장 찍은 듯하다. 내가 한 살씩 더 먹는 것처럼 나로 인해 탄생된 사진들은 겉잡을 수없이 많아졌다.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앨범 정리는 너무나도 귀찮았고 새 카메라의 사진 정리도 너무나 귀찮은 일이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용량 정리가 필요했다. 사진이 많을수록 시간은 더 많이 걸리고 사진들이 지겨워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찍어댄 사진은 잘 보지도 않는다. 그저 옮기는데만 몇 시간씩 소비할 뿐.


문득 내 손으로 디지털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의미 없는 셔터질을 계속하는 것일까?



나의 직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은 여행지의 사진을 찍고, 그곳을 소개하는 일이었다. 여행 콘텐츠를 제작할 때마다 나의 월급은 두둑이 쌓여갔고 그것에 매료되어 나는 더욱 많은 곳의 사진을 찍었다. 물론 내가 그 일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로 인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잘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을 간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의미 없는 그곳의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그리고 난 다음 다시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한다. 그러다 바다 위 윤슬이 아름답거나 해 지는 모습이 예쁘거나 할 때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고 놓칠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그리고 난 그 사진들을 내 여행기에 사용하고 세상 감성적이고 황홀한 시간을 경험한 것마냥 글을 쓴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과 집착이 함께 생겨났다. 나는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한다. 멋진 장면을 카메라로 담을 때는 두근거리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이 사진들이 그냥 내 카메라 속에만 남아있는 일이 너무 아쉬웠다. 이 사진들을 어딘가에 보여주고 싶었고 기록하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들의 SNS에는 화려하고 예쁜 것들만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린 안다. 그게 진짜 내가 아니란 걸, 진짜 내 생활이 아니란 걸.


이쯤 되니 지나친 기록이 불러온 강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의 하루를 보며 웃음 짓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마음에 담는 게 더욱 마음을 풍족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날들을 위해 기록한다는 핑계로 나는 여러 곳에 흩어진 나의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쓰고, 내 앞에 있는 이들과 눈 맞추고 한번 더 이야기하는 대신 의미 없는 셔터질을 해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카페에 와 무의식적으로 탐스러운 나의 라테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도 곧 지긋지긋한 디지털 쓰레기로 분류되어 삭제되겠지.


내 손으로 생산하고 내 손으로 없애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아이러니한 나의 디지털 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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