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속도와 우리의 제한된 시간
AI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어제 익힌 도구가 오늘은 금세 낡아 보이는 시대예요. 누군가는 이미 ‘AI로 10배 빠른 생산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모든 자동화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립니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 글에서는 ‘기술의 속도’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균형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따라갈 것인가, 어디서 멈출 것인가”라는 기준을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지난 대화 : 나의 취향은 정말 '나의 것'일까?
https://brunch.co.kr/@zagmaster/112
- 왜 우리는 새 도구가 나올 때마다 ‘배워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까요?
- “모르면 도태된다”는 감정은 어디서 올까요?
- AI 덕분에 시간이 절약되지만, 그 여유 시간을 우리는 잘 쓰고 있을까요?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이 오히려 시간을 ‘빼앗고’ 있진 않을까요?)
-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기준을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의 ‘학습 속도’를 존중하며 꾸준히 나아가는 루틴 설계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밤열두시)
요즘은 새로운 도구를 얼마나 빨리 익히느냐가 곧 역량처럼 여겨지는 시대예요. 특히 AI가 등장한 뒤로는 누군가는 이미 프롬프트를 능숙하게 다루고, 누군가는 몇 초 만에 결과물을 뽑아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급함이 생기죠. 그런데 이 압박의 근원은 도구 그 자체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기술보다 불안이 더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니까요.
열심히 배워도 따라잡았다는 감각이 들지 않는 이유도 이미 다음 버전과 새로운 방식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가끔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 배우는 건 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견디는 연습 아닐까?”
결국 우리가 느끼는 압박은 배움 자체보다 ‘멈추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새 도구를 접할 때마다 이렇게 다짐해요. “빨리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쓰는 사람이 되자.” 그래야 기술이 바뀌어도 나만의 속도를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감자윤)
곰곰이 떠올려보니 저는 개인적으로 외부의 시선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요즘 AI 도구가 계속 쏟아지다 보니 “많이 쓰기보다 몇 가지를 제대로 쓰는 게 낫다”는 말이 들리면서도, 막상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새로운 기술을 모른다고 하면 묘한 공기가 흐를 때가 있어요. 그 순간 ‘경쟁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치죠. 이런 분위기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구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결국 도구 자체보다 ‘뒤처져 보이면 안 된다’는 시선이 우리를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밤열두시)
맞아요. 누가 직접 강요하지 않아도 주변의 말투나 분위기만으로도 압박이 생기죠. “이건 써보셨어요?” 같은 질문조차 어느 순간 ‘뒤처짐의 신호’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불안이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해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는 건 여전히 성장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중요한 건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는 배움이 아니라, 나에게 실제로 필요한 배움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이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될까?” “지금 당장 필요한가?”라는 기준을 세우며 조급함을 줄이려 하고 있어요. 어쩌면 기술의 시대일수록 무엇을 배울지가 아니라, 무엇을 배우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용기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감자윤)
그리고 불안이 때로는 도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도 동의해요.
다만 요즘은 배워야 할 범위가 넓어지면서 ‘무엇을 배우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깊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정말 많은 기능이 있지만 실제로 쓰는 건 일부이죠. 가끔 숨겨진 기능을 알게 되면 “이걸 이제야 알았네” 싶을 때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이미 배우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더 깊이 탐구하고,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해보는 것도 큰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배움이 ‘깊이’보다 ‘새로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오히려 압박을 더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밤열두시)
그 말 들으니까 요즘 ‘배운다’는 행위가 점점 효율의 언어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빠르게 익히는지가 능력처럼 여겨지면서 배움의 깊이나 방향보다 속도가 우선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속도 경쟁의 바탕에는 첫 대화에서 말한 것처럼 “모르면 도태된다”는 감정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까 봐’ 생기는 불안이죠. 배우지 않으면 불안하고, 배워도 금세 낡아버리는 느낌이 드는 시대니까요.
문제는 열심히 배워도 시간이 여유롭게 늘지 않는다는 거예요.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를 익히느라 또 시간을 쓰고, 익숙해질 무렵엔 이미 다음 버전이 나와버리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을 자주 떠올려요. “효율을 위해 배우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내 시간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기술이 시간을 줄여주는데 우리는 왜 더 바빠질까요? 감자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자윤)
“모르면 도태된다”는 감정이 생기는 지점은 요즘엔 정보 그 자체보다 “속도”의 문제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예전엔 새로운 기술을 몰라도 ‘나중에 배우면 되지’라는 여유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나중’이 거의 사라져 버렸잖아요. 내가 배우는 동안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결과물을 만들고 있고,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감각이 쌓일수록 그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특히 더 무서운 건, 그 격차가 물리적인 실력 차이보다 “보여지는 이미지 차이”로 먼저 드러난다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툴을 쓰는 사람들은 더 부지런하고, 더 똑똑하고, 더 미래에 가까워 보이는 것처럼 보이죠. ‘실제 능력’보다 ‘지각된 능력’의 차이가 더 빠르게 커지는 시대. 그게 요즘 사람들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밤열두시)
그 말 들으니까 저는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우리가 느끼는 조급함은 ‘모르는 상태’ 자체가 위험해서라기보다, ‘모르는 상태로 머무르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천히 익히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그 과정마저 생략해야 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압박이 커질수록 배움이 빨라지는 게 아니라 더 얇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익혔다”고는 하지만 내 것이 되기 전에 바로 다음 기능으로 넘어가버리는 식이죠. 그래서 요즘은 ‘배움의 양’보다 ‘배움을 흡수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계속 배우고 있는데 정작 그 배움을 통해 확보한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AI 덕분에 시간이 절약되지만, 그 여유 시간을 우리는 잘 쓰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감자윤)
저도 그 생각, 요즘 자주 해요. 예를 들어, 새로운 생산성 툴을 배우면 하루가 더 정리될 줄 알았는데, 설정을 맞추고 기능을 익히느라 오히려 더 바빠지는 날이 많아요. 운동이나 명상처럼 ‘나를 위한 시간’도 앱의 알림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의 리듬이 아니라, 효율의 리듬에 맞춰 살고 있다고 느껴요.
기술은 분명 우리 시간을 절약해주지만, 그만큼 더 많은 걸 하게 만드는 유혹도 함께 줘요. 그래서 ‘더 잘하는 법’보다 ‘덜 하더라도 나답게 하는 법’을 배우는게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배우는 이유가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라면, 때로는 멈추는 것도 배움의 한 형태 아닐까 싶어요.
(밤열두시)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요. 사실 예전보다 분명 시간이 더 빨리 단축되긴 했거든요. AI로 문서 초안을 미리 뽑아두거나, 리서치를 줄여본 적도 있고요. 근데 그 ‘절약된 시간’이 그냥 비워진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할 일들로 바로 채워져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마치 빈 칸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요.
요즘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비어있게 둘 수 있는가가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굳이 지금 안 해도 되는 것’을 미뤄두는 감각이 더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내 일정 속 빈 공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려는 연습을 해보고 있어요.
(감자윤)
결국 우리는 지금 시대에 ‘배움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걸 함께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여유의 필요성을 안다고 해서, 실제 삶에 적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다들 빠르게 배우고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 느리게 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래서 밤열두시님이 말한 것처럼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국 지금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쓰는가’가 아니라 이 여유를 진짜 내 것으로 돌려놓을 수 있느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밤열두시)
저는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기준’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어요. 속도를 조절한다는 건 결국 외부의 흐름이 아니라 나의 리듬을 기준으로 삼는다가 보다 가까운 말이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참 어려워요.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는 ‘의미 있는 속도’보다 ‘빠르게 산출되는 결과’를 더 높게 평가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멈추거나 늦추는 순간이 생기면, 그게 곧 뒤처지는 행동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저는 요즘 속도를 조절할 때, ‘내가 지금 뭘 놓치고 있는가’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에 집중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이 배움이 지금의 나와 정말 연결되어 있는가?
이 기능을 익혔을 때, 나는 어떤 시간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오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들을 마음속에 두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건 그냥 속도 선택이 아니라 관계 설정이라는 걸 느끼게 돼요. 세상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내 시간과 다시 관계를 맺는 일인거죠.
(감자윤)
밤열두시님 글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기준을 세우려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먼저 아는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속도를 조절한다는 건 단순히 멈추거나 늦추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아는 일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배움’을 이야기할 때 자주 놓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인 것 같아요.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상이 권하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휩쓸리죠. 결국 로드맵이 없는 채로 끝없이 배우기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즘 ‘무엇을 배울까’보다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구체적으로 써보려 해요. 그 그림이 선명해질수록, 덜 배워도 되는 용기, 그리고 깊게 배워야 할 방향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밤열두시)
맞아요.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기준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부터 분명히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제 북극성 문장을 이렇게 쓰고 있어요. “빨리 아는 사람”보다 “오래 쓰는 사람”이 되기. 그러고 나니 선택이 조금 쉬워졌어요. 새로 나온 것들을 ‘다’ 배우는 대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붙는 것만 일단 배우고, 나머지는 의도적으로 미루자고요.
그 기준을 일에 붙이면서 작은 루프를 만들어보고 있는데요.
1. 이번 주에 왜 이걸 배우는지 한 줄로 쓰기
2. 배우자마자 내 업무에 15분이라도 바로 써보기
3. 남에게 설명하듯 5줄 요약 남기기
4. 이틀 뒤 10분 복습 + 쓸모가 없었다면 미련 없이 중단
5. 추가로, 운영하는 블로그나 뉴스레터를 통해 학습한 내용들을 조금 긴 호흡의 글로도 써보고 있어요.
결국 속도를 낮춘다기보다, 방향과 회복 시간을 포함한 속도를 설계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이렇듯 ‘학습 속도’를 존중하며 꾸준히 나아가는 루틴 설계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위의 4단 루프를 더 다듬어보려 하는데, 감자윤님은 어떤 요소가 루틴의 핵심이라고 보세요?
(감자윤)
굉장히 체계적으로 루틴을 만드셨네요!
저는 조금 더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우선 제가 어떤 목표를 갖고 있고,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다이어리 맨 앞장에 크게 써두었어요. 그 문장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배움의 방향이 조금 덜 흔들리더라고요. 그리고 실천은 작게, 단 두 가지 정도만요.
1. 매주 금요일, 한 주간 새롭게 배운 것을 짧은 글로 정리하기
2. 그 배움이 내 단기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숫자로 표현해보기
2번은 완전히 주관적인 지표지만, 그게 오히려 좋아요. ‘나만의 속도’가 단순히 느림의 미학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자기 리듬으로 바뀌는 느낌이거든요.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나는 지금 잘 배우고 있나?’, ‘너무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나?’를 점검할 수 있게 돼요.
(밤열두시)
그 말이 참 인상 깊어요. 속도를 ‘느림’이 아니라 ‘리듬’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요.
저는 여기에 ‘지속 가능한 리듬’이라는 개념을 더 붙여보고 싶어요. 꾸준함은 의지로만 유지되지 않더라고요. 배움은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컨디션이 흔들리면 리듬도 쉽게 깨지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루틴을 만들 때 ‘너무 빡빡하지 않게, 배움을 놓아도 되는 날’을 함께 설계하려고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하루를 꽉 채우기보다 “이틀에 한 번은 회복일”로 두고, 그날은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여백을 만들어두면 루틴이 더 오래가고, 기존에 익힌 내용을 되돌아볼 시간도 생기더라고요.
결국 중요한 건 ‘끊김 없는 루틴’이 아니라 ‘다시 이어갈 수 있는 루틴’이라고 생각해요. 학습 속도를 존중한다는 건 쉬는 순간까지도 배움의 일부로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감자윤)
말씀하신 부분에 정말 공감돼요. ‘형식을 위한 형식’이라는 말처럼, 좋은 의도로 만든 습관이나 루틴도 어느 순간 그 형식 자체에 매몰되면 남는 건 형식뿐이 되는 경우가 있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도 한때는 독서가 꽤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재미가 없어도 ‘시작했으니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계속 저를 누르고 있었더라고요. 그 부담 때문에 책을 펼치기조차 어렵고, 읽어도 즐길 수가 없었어요.
그걸 깨닫고 기준을 바꿨어요. 재미없고 잘 읽히지 않으면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독서가 다시 즐거워졌고, 신기하게도 오히려 끝까지 읽는 책이 더 많아졌어요.
생각해보면 배움도 비슷한 것 같아요. 배움이 목적이 되면 어느 순간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성취처럼 느껴지지만, 진짜 배움은 과정이고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배우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는 감각을 느끼며 즐기는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배움이 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일이 되길 바라면서요.
(밤열두시)
결국 우리가 이야기해온 건 ‘배움의 기술’이 아니라 ‘배움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속도를 조절한다는 건 단순히 계획을 줄이거나 일정을 비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 더 가깝고요.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느림 속에서도 나를 믿을 수 있을 때인 것 같아요. 그 믿음이 쌓이면 루틴은 의무가 아니라 리듬이 되고, 그 리듬은 결국 삶의 방향으로 이어지죠.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해요. 배움이 나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봐주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우리가 말한 ‘나의 학습 속도를 존중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 아닐까요?
이 긴 대화를 통해 우리는 기술을 따라잡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드러났어요.불안을 기준으로 배우는 시대 속에서도,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남들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리듬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
빠르게 익히는 능력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식, 배움의 양보다 배움을 흡수하고 회복하는 시간, 뒤처지지 않기 위한 조급함보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맞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요.
기술은 계속 변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속도로 살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가 정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이야말로, 앞으로의 배움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새로운 AI 도구가 나올 때마다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나요?
그렇다면 그 압박의 근원은 궁금함인가요, 불안인가요?
AI가 시간을 절약해줬을 때, 나는 그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나요?
앞으로 배울 것들을 선택할 때, 꼭 기억하고 싶은 나만의 기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실수가 더 이상 배움이 될 수 없는 상황 - AI의 완벽함이 주는 역설
AI가 점점 더 완벽해질수록, 우리의 실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요. 과거엔 실수 자체가 배움이었는데, 이제는 ‘틀리지 않는 방식’이 정답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함이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지점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실수가 더 이상 배움이 되기 어려운 시대, AI의 정교함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역설을 함께 들여다보려 해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다시 되찾아야 할 감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