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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5. 2020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기감정에 책임질 줄 안다는 것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난데, 뭐해?’라는 첫마디에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애써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 척 평소처럼 굴었다. 밥은 먹었냐, 별일은 없냐는 등의 안부를 묻는데 대답이 시큰둥하다. 마치 지금 그런 게 대수냐는 듯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대뜸, “내가 가만 생각해보니까 너도 그렇고 OO이도 그렇고 다 나한테 불만이 많은 거 같은데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냐?”라고 물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일단 더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보니 가까운 지인 OO이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고 특히 그날 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불똥이 내게 튄 거였다. 어이도 없고 당황스러웠다. 난 불만 같은 거 없다, 섭섭한 것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돌아오는 답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너는 그렇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느껴” 그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본인의 감정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답하려 애썼다.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냐, 그러면 본인만 힘들어지지 않냐, OO이와의 관계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안 맞으면 거리를 둬라. 근데 이 말은 지인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나 보다. 답답하고 화도 나고 해서 전화한 건데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냐며 오히려 더 화를 냈다. 그냥 그러냐, 속상하겠다고 해주면 좋을 걸 왜 훈계를 하냐며 ‘됐다 끊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잠시, 내가 좀 그랬나? 그냥 좀 들어줄 걸 그랬나, 당혹스럽더라도 좀 참고 속상했겠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공감이라는 것도 상대방이 예의를 갖췄을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감정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만만하고 애먼 주변 사람에게 화풀이하며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하는 건 참 이기적이고도 미성숙한 행동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누군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해 버린 후에 하는 ‘미안하다. 그땐 내가 기분이 좀 그랬어.’, ‘미안, 내가 순간 욱했어.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와 같은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반복된다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경우 대체로 말로는 미안하다 하면서도 내심 상대방이 ‘아니야, 괜찮아. 힘든 일이 있었나 보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해줄 거라 기대한다. 기대를 넘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아는 사람도 있다. 쿨하게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미안하다고까지 하는데 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때론 다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섭섭하다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나라면 기분이 어떨지. 나는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힘들겠다며 공감 먼저 해주는지, 미안하단 말에 쉽게 ‘괜찮아’라며 용서하고 넘어가는지. 내가 하지 못하는 건 남에게도 바라면 안 된다.      


“행복과 슬픔 모두 온전히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성숙하게 스스로 감내하는 것이 좋다. 아끼는 사람과의 사이에 두어야 할 거리감각은 더 중요하다.” 이노우에 가즈코의 <50부터는 물건은 뺄셈 마음은 덧셈>에 나오는 말이다. 좀 쓸쓸하단 생각도 들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감정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감정으로 인해 다른 사람까지 아프고 힘들게 하면 안 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 나에게는 기쁜 일이 누군가에게는 헛헛함과 상실감을 안겨 줄 수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가 된다. 슬프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같이 슬프게 만든다. 화 역시 마찬가지다. 나누면 평화롭게 지내던 사람까지 기분을 언짢게 만든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자기감정은 스스로 감당해 가는 것이 아닐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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