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인구 50만 이상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공천을 중앙당에서 진행한다. 당헌·당규를 개정해 공식 절차를 밟았다고는 하지만, 이 결정이 던지는 정치적 함의는 가볍지 않다.
지방자치의 본령과 당내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현재 진행 중인 중앙당의 포항시장 공천 진행과정은 포항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우려를 품게 한다.
지방자치는 말 그대로 ‘지방이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다. 주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고민하고 해결하는 구조가 바로 지방정부다. 그렇기에 기초단체장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 지역의 맥락과 생활의 결이 중요하다.
누가 후보가 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지역 주민의 판단과 참여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출발점이 중앙당의 판단으로 옮겨간다면, 우리는 이미 지방자치의 태반을 포기한 셈이 되는 게 아닌가.
지역의 언론기관들이 주관하여 진행된 여러 차례의 여론조사에서 1, 2, 3등에 오르며 도합 40% 내외의 지지를 받았던 후보들이 공천 과정에서 배제된 사실은 포항지역 정서에 큰 상처를 안긴다. 컷오프를 통과한 후보 네 사람의 평균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30%에 못 미친다고 한다.
중앙당의 공식적인 공천 기준을 따랐다 해도, 지역 시민들의 표심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결과를 보인 셈이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포항지역 민심이 중앙당에 의해 소외된 결과를 빚은 게 아닌가. 이런 통보를 받은 시민들에게는 중앙당에 대한 신뢰마저 금이 가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지역에서 공천을 받는 순간 당선이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천이 실질적 최종 선택권이 되는 구조에서, 그 권한이 중앙으로 모두 집중된다는 것은 곧 유권자의 선택 이전에 정치적 경쟁이 상당 부분 제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미국 정치의 방식은 의미 있는 비교를 제공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후보를 중앙당이 정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후보는 지역의 예비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당 지도부가 특정 인물을 선호하거나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최종 선택은 언제나 유권자의 몫이다. 지역 주민과 지역 당원이 예비후보들을 직접 경쟁에 붙여 후보를 가려내는 구조다.
중요한 점은, 후보 선택의 권한이 중앙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유권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반면 중앙당이 후보를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정치의 방향이 달라진다. 후보는 지역 유권자보다 중앙당 지도부를 더 의식하게 되고, 선거의 언어 역시 생활의 언어보다 정당의 전략과 구호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중앙당이 지역의 구체적 현실과 정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느냐는 데에도 있다. 지역은 교통과 교육, 주거와 상권 같은 생활의 문제로 움직이지만, 중앙정치는 전국적 이슈와 권력 구도에 민감하다.
이 간극은 결코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공천관리위원회는 맡은 바 소임인 ‘공정한 관리’에 집중할 일이지 ‘공천 결정’에 천착할 일이 아니다.
결국 ‘중앙에서 관리가 가능한 후보’ 또는 ‘당 정책상 전략적으로 유리한 인물’이 우선되고, 지역 주민이 체감하는 지역 적합성이나 공동체 필요성은 뒤로 밀릴 위험이 크다.
지방정치는 점점 중앙에 예속되고, 주민의 삶과 정치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공천과정에서 상당 부분 개입하는 현상도 시민들이 직접 원하는 후보를 가늠해 가는 과정에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천권의 집중이 아니라 분산이다. 미국처럼 완전한 지역 경선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후보 선택의 문턱은 지역 시민들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포항 시민들이 당연히 공유했어야 할 선별권을 중앙당이 집중적으로 행사한 일은 우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큰 오점을 남겼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중앙당 권한의 남용이며 폭거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는 공당으로서 국민의힘이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천은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중앙이 아니라 지역을 향할 때, 비로소 지방자치는 이름뿐인 제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