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이 쉽지 않네요.
결혼 10년 차, 그리고 곧 마흔이다. 가끔은 이십 대 연애처럼 설레고 싶다. 현실적으로 매일 설렐 수는 없어서 결혼했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이라는 법적 안전장치를 가지게 되었다. 완벽할 수 없지만, 부서지지 않는 철근이다. 철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사는 싱글들을 보면 부럽다. 특히, 자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 한참 동안 사진을 보며 입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한다. '자연'과 '자유'는 완벽하게 다른 뜻이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완벽하게 똑같다.
혼자로 사는 게 쉬울까, 결혼해서 사는 게 쉬울까?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주말부부가 제일 부럽다. 30대 후반 여자들 중에 결혼이 체질이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혼이 쉬울까, 이혼이 쉬울까, 고민해 보지만 정답은 없다. 시대적인 선택만 있을 뿐이다. 먼저 이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상식적으로 이혼할 치명적인 이유가 없다면 이혼하지 않는 게 맞다.'라고 한다. 상처받을 사람이 많으므로. 결혼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우습게도, 매일 이혼을 생각하면서, '짝이 있다'라는 우월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매주 일요일, 사주로 소개팅을 해주는 라이브 방송을 본다. 젊은 친구들의 만남을 보며 웃음 짓는 모습이 영락없이 이찬원을 좋아하는 친정엄마의 마음이다. 방송을 보다가 의문이 하나 생겼다. 소개팅 주선자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말한다. '재밌는 남자', '착한 남자'와 같은 누구나 좋아할 만한 사람을 말했다. '누구나'라는 열린 결말도 가능하겠지만, '커스터마이징'된 짝을 만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이면 더 쉬울 텐데, 잔소리하고 싶어서 손이 간지럽다. 여동생이라면 최소한 경험에서 찾으라고 말해줄 것이다. 만났던 남자가 바람을 많이 폈다면, '한 눈 팔지 않고 연애를 성실하게 해 나갈 남자', 예의가 없는 남자를 만났다면, '예의 바른 남자',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생각 중이라면 아주 솔직하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 단순하게 외모가 잘생긴 남자와 같은 쉬운 조건 말이다.
바야흐로 10년 전, 내게도 연애를 했던 시절이 있다. 지금의 남편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변치 않는 남자'이지만, 그때도 지금이랑 똑같다는 게 맹점이다. 역시 모든 면에는 단점만 있지 않듯, 장점만 있지는 않다.
남편을 20대 후반에 만났는데, 만날 당시에 몇 번의 연애 끝에 만든 이상형 리스트가 있었다. 사회적인 '좋다, 나쁘다'는 당연하기 때문에 빼고, 개인적인 취향만 담았다.
1. 키 175cm 이상 (내가 167이므로)
2. 쌍꺼풀 없는 눈
3. 팔에 털이 많지 않을 것 (팔짱을 좋아하므로, 다리털 무관)
4. 제사 없는 집의 막내아들 선호, 남자 형제 선호, 외동아들 아닐 것
5. 명품에 큰 관심이 없는 남자
6. 피시방, 화투, 카드에 관심 없는 남자 (웹툰, 애니메이션 환영)
7. 조기 축구, 직장인 야구, 등산 와인 테니스 골프 동호회 관심 없는 남자 (낚시는 환영)
8. 스포츠 웨어 잘 어울리는 남자
9. 음식 안 가리고 잘 먹는 남자 (맛집 탐방 가능)
10. 왼손잡이 선호, 양손잡이도 극호 (글 쓸 때 예쁨, 대체로 고기 잘 구움)
술자리에서 가끔 남편을 칭찬한다. 남들에게 남편은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다들 표정이 토할 기세다. "남편은 완벽한 제 이상형입니다만, 결혼 생활이 쉽지 않네요."라고 말하면 다들 웃는다. 그리고 결혼 이상형의 조건들을 내어 놓으면, 다들 수긍한다. 다행히 남편은 이런 농담도 받아주는 사람이다.
"하늘에서 만들어 준 것 같은 이상형입니다."
지인들은 '에라이, 영원히 행복해라.' 비웃는다. 기도하는 것 같다느니,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느니, 농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성격이 비슷한 만큼 많이 싸운다. 결혼 생활이 잠시 흔들려도 감정이 가라앉으면 매우 이성적으로 결혼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날부터 떠올린다. 사랑이라는 정확하지 않은 감정보다는 '좋은 호감'이면 충분했다. 알아가면서 만족했다. 성격적인 부분에서 욕심내지 않으려 애썼다. 착한 사람은 못된 내게 욕심이다. 배려심이 많은 남자는 이기적인 내가 미안하기 때문에 안된다. 나만큼 못되고 나만큼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남편이 적합했다.
지금도 서로 마주 보고 가끔 말한다.
"내가 착한 여자 하나 살렸다!"
"내가 이 한 몸 던져서 대한민국 남자 하나 구했다!"
"우린 대한민국 남녀 하나씩 구한 의인이야!"
매번 농담으로 끝나지만, 마음이 쓰라릴 때가 많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만 상처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할퀴며, 버티고 있다. 언제까지 가능할는지 궁금해진다.
일상을 버티는 방법 중 하나는 독서다. 특히 소설책을 사랑한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들이 내려놓은 무거운 마음들이 느껴진다. 질문은 집요해진다. 완벽한 픽션일까? 픽션이어야만 할까? 소설의 목적이 꼭 '속이는 이야기'여야만 할까? 생각했다. '나는'이 남발했던 '새의 선물'이 나를 건드렸고, '모순'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어두운 밤마다 찾아온다. 나 홀로 앉아 글감을 떠올릴 때마다 '왜 쓰는가? 무엇을 위하여 쓰는가? 내 글은 읽기 위해 쓰는가?' 외딴방으로 순간이동 한다.
소설이어야만 했다. 이미 내 안에 그런 것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세상에 솔직하게 나오지 않고, 변질되어 나와야만 했다. 남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것을 남편에게 허락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설득력 있었다. 잘되면 장항준이나 도경완처럼 살게 해 주겠다, 못돼도 지금이랑 다를 바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언제 쓸 건지 어디에 쓸 건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완성되면 주인공 값으로 담배 한 보루를 지불하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일요일 오전이 나만의 마감일이다. 현재 계획은 12화까지이나, 최대한 길게 쓰고 싶다. 실시간으로 쓰는 것이라서 연재약속을 스스로 어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억지로 쓰지 않을 예정이다. 써지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위해 기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꼭 완성할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기다려주고 읽어준다면 절대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라 믿지고 말고, 가짜라고 쉽게 읽지 말아 주길...
p.s 남동생이 그러는데, 제가 그린 초상화는 공격적이래요. 상처주는 그림이래요. 정성껏 그린건데 말이죠.
남편의 초상화를 순화시켜주실 웹툰 작가님을 찾습니다... 메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