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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Nov 10. 2024

12화. 개뿔! 사랑은 무슨

마지막 회.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났다.


많이 슬플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조금 슬펐고 조금 힘들었다.


"선아야, 조금만 슬퍼하그레이. 아빠는 이제 엄마 곁으로 가는 기다. 시간이 약인기라. 외롭다고 끝까지 결혼 붙들고 있지 말그라. 정서방보다 조금 외모 못난 놈 만나면 어떻노. 정서방보다 조금 더 밥 많이 먹으면 어떻노. 딴 놈 만나더라도 세상 외롭다고 매달리지 말그레이. 니는 언제까지나 귀한 내 딸이다. 알겠제?"


아버지는 마지막인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짧게 내쉬었다.  


"우리 가족이 어떤 모양이든, 나는 선아 아빠로 살았던 인생이 가장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선아야."


아버지는 발끝부터 회색으로 변했다. 모두가 컬러인 세상에, 혼자 흑백이 되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슬픔보다는 억울했다. 크게 울고 싶었는데, 목이 닫혔다. 돌섬 절벽에서 부는 바람이 내 몸 한가득 들어왔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병에 담기고, 그 병을 안고 가는 중에도 믿기지 않았다. 죽음이 끝이 아닐 거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죽음은 사랑이 끝난 이별보다 더 끝이 먼 것만 같았다.


가족의 납골당이 생겼다. 가족사진 한 장 제대로 없이 이름만 있는 유리를 쓸었다.


"아버지... 이제 그곳에서는 헤어지지 마세요. 고마웠어요. 아빠."


그제야 믿긴다. 눈물이 목에서부터 끌어 올라왔다.


"선아야..."


원재는 소리 내어 울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나를 끌어안았다. 웅이도 낮은 포옹을 했다. '행복은 기브 앤 테이크' 그렇게만 믿고 싶다.





-10년 후,



웅이는 스무 살, 이제 대학생이다. 웅이는 우리 부부에게 과분한 아이다. 비싼 과외한 번 해준 적 없고 학원으로 데리러 가본 적도 없는데, 불평불만 없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엄마 아빠 감사하다.' 아이가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우리 때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스무 살이면 부모의 역할이 끝난다. 이제는 국가에서 대학등록금까지 모두 내주고, 기숙사에 용돈까지 준다. 조금만 열심히 하면 교환학생으로 외국도 갈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오십 대가 되었고, 일주일에 4일만 장사하며 산다. 곧 집도 작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남편의 가출, 아버지의 귀천, 이후로 우리 집 가훈은 '행복이라는 단어 대신 평온'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혼하지 않은 게 최선이었을까? 아이에게는 부모의 불안한 결혼과 온전한 이혼 중 어떤 게 나았을까?' 다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서로 존중한다. 한 집에 살지만 각자의 방이 있고, 쉬는 날에는 각자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얼마 전에 호계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갔었고, 언니들과 셋이 제주도로 여행도 갔다 왔다.


삶이란 계속된다. 그러므로 질문도 계속된다.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에 집착하지 않았나, '행복'이라는 환상에 취하지 않았나, '영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맹신하지 않았나, '자아'를 도려내어 생각하지 않았나.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을까?'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안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말하면 조금 덜 힘들까 싶어서.


쉬운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영원한 사랑을 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 한다.


원재는 지금도 말한다.

'개뿔! 사랑은 무슨! 같이 사는 게 사랑이다!'


내가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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