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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Jul 30. 2024

차를 팔았다. 생활을 위해서!

나는 차는 레드다. 내가 원하는 색으로 처음 뽑은 내 차와 이별했다.


"엄마 돈 벌었어?"


"응. 벌긴 벌었지."


나는 아들을 쳐다 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돈을 벌긴 벌었다. 1년 넘게 가는, 뻔한 승소로 피고를 혼내 줄 수 있는 재판을 결국 포기했다. 조정으로 끝내면서 자기 것만 챙겨 가면 그만이라는 피고 덕에 주택 담보 대출, 피고가 내 카드로 쓴 현금 서비스와 할부, 피고가 내 명의로 쓴 사업 대표 번호 전화 위약금까지 다 떠 안았다. 더구나 상간녀 소송 했다고 혼인 유지 기간 인데도, 집에 지 핏줄인 어린 아들이 있는대도 일방적으로 생활비를 끊었었다. 요 몇 달 동안 리볼빙된 카드 값도 내 몫이었다.

그런데 취직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자꾸 어긋나고 아이와 생활은 해야 하고, 집은 전세로 내 놨는데 몇 달 째 계약이 안되고 있다. 그래서 내 차를 팔았다. 결혼하고 첫 차였고, 내가 좋아하는 차 색상으로 처음 뽑은 차였다. 정말 아끼고 관리를 깔끔하게 잘 한 차였다.

그 차를 나는 어쩔 수 없이, 과감하게 팔아야 했다.











"오늘 애랑 만나기로 했어. 준비해서 내려 보내줘."


그 인간의 전화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혈압이 올랐다. 

나는 아들을 쳐다 보며 오늘 만나기로 했냐고 물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고 물었다. 아들은 대답이 영 시원치 않았다. 


"알았어. 애한테 물어 볼게. 그리고 전화 하지마. 당신 목소리만 들어도 혈압 오르니까. 문자로 용건만 간단히 보내."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아들에게 만나기로해 데리러 와 있다고 말해 줬다. 준비하고 내려 오라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아들은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히 한 마디 던졌다.


"나 나간다고 한 적 없는데, 그냥 이모티콘 한 개 답으로 보냈을 뿐인데..."


"그럼 안 나갈거야? 깁스한 발 땜 불편해서 그래?"


"그것도 그렇지만, 보기 싫어."


나는 아들에게 그러면 네가 직접 네 의견을 전하라고 했다. 엄마가 말하면 안 믿는다고, 엄마가 조작했다고 이상한 소리 하니까 네가 직접 네 의견을 전달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말해 줬다. 

아들은 알았다며 톡을 보내고 전화를 받더니 뭐라뭐라 하고는 끊었다. 안 나간다고 했단다. 결국 인간은 첫 자유 면접 교섭권을 쓰기 위해 와서는 아들 얼굴도 보고 그냥 돌아 버려야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언제 스스로 아들이랑 놀아 주려 한 적이 있다고 이제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 하는지 어리석어 보였다. 애들도 사람이다. 

아들은 나한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애교를 부리지만 지 아빠한테는 아기 때부터 이상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애다. 애들도 안다. 애들이 더 잘 안다. 

그런데 그 인간은 애가 뭘 안다고 그러냐고 항상 그러던 사람이다. 이제는 뼈져리게 느껴야 한다. 애들이 더 잘 안다는 것을, 있을 때 잘 했어야 한다는 것을!


지 챙길것만 챙기겠다고, 지 살기 위해 사소한 것까지 챙길 수 있는 거 다 챙겨 가겠다고 두루마리 휴지까지 챙겨 나간 사람이다. 조정으로 끝내고 모든 빚과 위약금까지 나와 지 어린 아들에게 다 떠넘기고 끝까지 구질구질하고 사람 같지 않은 모습만 보이고 나간 사람이다. TV며 청소기며 다 챙겨 나가며, 원래는 반반씩 딱 나누어야 하는 거라며 당연하단 듯 뻔뻔하게 말하고 나간 사람이다. 

자신이 아들에게 아빠로서 정을 줬다고 생각하고, 어른인 아빠로서 어른 다운 모습을 단 조금이라도 보여 줬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이제 강해져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아들을 위해서도, 버티고 해결하고 아들과 함께 나아가야 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막말로 아들과 굶어 죽는다 해도 다시는 그 인간이랑 같이 살거나 연관 되고 싶지 않다.

아들도 엄마가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절대 그 인간한테 가고 싶지 않단다. 엄마랑 살 거란다. 


보름째 TV도 없이 지내면서도 아들은 오히려 나에게 애교를 부리고, 이제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어 좋다며 웃어 줬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 일찍 철들어가고 현실을 알아 가는 어린 아들을 위해 나는 어떻게든 살아 내야 한다. 어떻게든 우리를 걱정하고 챙겨 준 지인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살아 내야 한다.





 




"엄마 TV는 안 사."


"사야지."


나는 안 그래도 골절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 산책도 마음대로 못하고 집콕인 아들이 안쓰러웠다. 엄마랑 살겠다고 어떤 불편함도 감수하고 있는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백화점에 가면 비싸겠지 싶어, 쿠팡을 검색하고 한 시간을 고민한 뒤 60만원이 좀 넘는 55인치 삼성 TV를 구매했다. 이제 TV 없는 하루하루가 끝나간다. 


정리하고 그 인간이 마지막까지 기막힌 모습으로 나가는 걸 지켜 보며 스트레스가 심했던 열흘이다. 또 다시 수액을 맞을 정도로 나는 위에 고통을 느껴야 했다. 차도 팔고 살 궁리 하고, 생활을 해 나기 위해 애쓰느라 글도 쓰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를 팔고 나서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 한 시간 30분을 죽은 듯이 깊게 잠들었다가 깨어났다. 이제는 정신 차리고 글도 다시 열심히 쓰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독서지도사 자격증 강의도 다시 열심히 듣고,  현실을 헤쳐 나가 아들과 살아 남을 궁리만 하며 버티려 한다. 


제발, 집 계약이 빨리 돼서 한시름 숨통이 트였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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