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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hhhye Aug 28. 2023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2022.11.05




1) 우스꽝스러운 춤

 > 작년 4월 할머니가 크게 아프셨을 때 나는 할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니고 있던 학생으로 나는 할머니를 간병할 보호자, 할머니의 병원비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난히 가슴이 시렸다. 감사하게도 할머니가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오셨고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한 내 다짐은 바로 ‘한 번이라도 더 웃기자’였다. 그 다짐의 첫 번째 방법이 우스꽝스러운 춤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식구들은 나를 몸치라고 매번 놀린다. 나는 진지하게 추는데 식구들과 할머니는 우스꽝스럽다며 내 춤을 보며 웃는다. 나는 뭐가 웃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웃으니 일단 추고 봤다. 그 후로 할머니와 TV를 보다 아무 음악이 나오면 그 자리에 일어나서 무작정 춤을 춘다. 그럼 할머니가 저거 미쳤나 봐 하면서 막 웃으신다. 가끔은 내가 왜 이러나 현타 아닌 현타가 오곤 하지만 할머니가 웃었으면 그걸로 됐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춤 연습하러 가야겠다.







2) 꽃 같은 하루


> 나에게 꽃집은 누군가를 축하할 때가 생기면 가는 곳이었지 매주, 매달 갈 곳은 아니었다.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그 생기를 전달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거기에 할머니가 식물을 좋아하시니 꽃은 할머니를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사갈 때마다 이런 거 뭐 사 왔냐고 하시지만, 할머니 친구분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집에 꽃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 매주 주말 본가로 향하는 길엔 무조건 꽃을 사서 들어갔다. 할머니의 꽃은 색이 진하고 큼직하고 향이 진할수록 좋다. 그런 꽃만 찾아다니니 어느 꽃집 주인분이 할머니에게 선물하는지 금방 알아차리시곤 “할머니 생신이세요?”라고 물어보셨다. 생신은 아니지만 좋은 날이라고 얼버무렸다. 내 입에서 갑자기 나온 단어였지만 맞는 말이었다. 내가 사는 이 꽃들로 할머니의 하루가 누구보다 기분 ‘좋은 날’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으로 매주 꽃을 사갔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의 꽃 같은 하루를 위해







3) 학생으로서 마지막 작품

> 우리 학교 디자인학과는 졸업전시를 꼭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3-4월은 다들 주제를 정하기에 바쁜 달이였고 나 역시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학생으로서 마지막 작품이기에 실력보단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중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의 남편이자, 우리 엄마의 아빠인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영상을 전공하던 학생이었기에 지금 살고 있는 ‘집과 할아버지’에 대한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다. 집은 할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을 이어주는 가장 큰 다리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집을 지으셨고, 40년 가까이 사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론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향기가 아직도 곳곳에 묻어있다. 가끔은 그 향에 취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하게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날도 더러 있다.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식구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건 추억보단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으니. 누구 하나 먼저 그 상처를 들어낼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일 어린 내가 들어내고 싶었다. 집안 가장 어린 내가 이야기를 먼저 꺼낼 테니 다들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더 이상 아픈 상처로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졸업작품은 정해졌고 여름, 가을에 거쳐 완성을 하였다. 식구들에겐 이런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걸 졸업전시 당일날까지 숨겼다. 그리고 졸업전시 당일날, 식구들이 모두 내 작품을 나란히 앉아 보았다. 사촌언니가 눈물이 많은 편이라 눈물이 눈에 가득해지는 게 보였다. 식구들의 눈에서도 많은 감정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작품실 밖으로 나와있었다. 그날 나는 나의 학생으로서 마지막 작품의 의미를 찾았다. 가족이었다. 나의 모든 시작과 끝엔 가족이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끼리 지금처럼 그렇게 품어주며 살자고. 그거면 됐다고.


작품 링크 :  https://youtu.be/f_vGynmoQ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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