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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a Sep 28. 2015

I SMILE

판타지 세계 속 중세 시대의 한 작은 마을에 내가 잠시 머무는 손님이 된 것 같은 곳, 어딜 가나 기분 좋은 웃음을 하고선 나에게 메르하바를 말하는 사람들과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개와 고양이가 함께 머무는 곳, 터키의 따뜻함이나 다정함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앗던 그 곳, 아 여기는 사프란볼루다. 로쿰이 유명하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나는 아직 돌아갈 날이 한참인데도 가장 맛있다는 사프란볼루의 로쿰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이 가게, 저 가게 한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들어간 한 가게, 한참을 종업원과 수다를 떨다가 덜컥 그 가게에서 몇 상자를 사버렸다. 먹어 보라며 내 입에 넣어주던 로쿰이 뛰어나게 맛있었다기 보다는, 내게 건네 준 애플티에 미안해서라기 보다는, 진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의 미소가 나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했달까.

그의 이름은 이즈마일 (Ismile) 이었고, 친구를 가게를 잠시 봐주고 있는 이발사라고 했다. 한국인을 아주 좋아한다는 그는 나의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나는 아마시아로 갈거야."

"아마시아? 아마시아를 간다는 한국인은 처음이야! 언제 떠나는데?"

"오늘 떠나려고. 이미 체크아웃 했어."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돼? 오, 왜 이제야 나랑 친해진거야?"

그는 치과 떄문에 어차피 시내에 나가야 한다며 나를 배웅하겠다고 나섰다. 같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도중 그의 친구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친구는 경찰이라며 내게 소개한다. 그의 친구가 경찰이라는 사실에 내 마음도 안도한다. 사실 좀 두렵기는 했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보여도, 아무리 안전한 동네라고 해도, 낯선 곳, 낯선 사람을 아무 의심 없이 무작정 따라 나섰다는 게.

그와 함께 티켓을 사기 위해 걸어가는 길목, 그는 그랬다.

"내가 나중에 너와 너의 가족들을 다 초대하면 다시 한 번 와줄 수 있어?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꼭 초대하고 싶어!"

"그래, 그렇게 되면 꼭 올게!"

"모두 다시 온다고 하고선 한 명도 안오더라. 너도 그런 Yes 인 거지?"

기분이 묘했다. 다른 나라에 사는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 내가 잠시 까메오로 등장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 까메오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 속에 등장해 달라는 이 남자. 그의 그 말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 홀로 여행의 첫 발, 따뜻한 사람을 만났다는 게 나를 축축히 적신다. 나는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나를 초대해주지 않아도 꼭 한 번은 오겠다고 손가락까지 걸어버렸다. 갑자기 그는 내게 잠시만 이라며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한 손에 장미꽃을 덜렁 덜렁 들고 내게 뛰어왔다.

"터키에 온 걸 환영하는 선물이기도 하고, 꼭 다시 와주길 바라는 뇌물이기도 해."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한국 여성을 보면 상습적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순간 순간의 진심들에 영원을 쏟아 붓는 그가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에 저지르는 사소한 이벤트 일지라도, 장미꽃을 선물받는 여자의 마음이란. 

아마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한 송이의 뇌물이 내 평생 처음 남자에게 선물 받은 꽃이라는 걸. 그리하여 그 꽃이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도 절대 버리지 않고 여행 내내 데리고 다녔다는 걸. 그의 기분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기분좋은 상상을 한다. 그가 내 인생 처음으로 내게 꽃을 건넨 남자가 되었듯이, 나 역시 그의 인생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과 차 한잔 하는 여자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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