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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l 11. 2018

죽음을 선택할 권리(1)

존엄사와 연명의료결정법

 2018년 2월 4일, 한국에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웰다잉 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환자의 병세가 심각해 어떤 치료로도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마련한 것이다. 한 마디로 존엄사가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전까지 존엄사는 논란이 뜨거운 사안이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존엄사 판결'이 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존엄사에 대해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다. 수술 후 회복 중이지만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는 환자였는데, 치료비 부담 등을 이유로 보호자인 아내가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 측에서는 보호자에게 사망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고 서약서를 작성한 뒤, 퇴원을 허가하였으며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인공호흡이 이루어지지 않자 환자는 곧 사망하였다. 이후 사망자의 가족 중 한 명이 이를 경찰에 신고했으며 법원에서는 보호자인 아내에게 살인죄를, 의료진에게는 살인방조죄를 인정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김 할머니 존엄사 판결은 다시 존엄사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의료진이 살인방조죄 판결을 받은 이후 당연히 의료진은 보호자들의 연명의료 중단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 했다. 김 할머니의 가족들 역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병원 측에서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최종적으로 김 할머니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후 2009년 6월에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었는데, 환자는 스스로 호흡하며 무려 200일가량을 더 생존하다가 사망했다. 이 사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판례로 알려져 있다.


 다시 10여 년이 지나 한국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한 연명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전까지 논쟁이 뜨거웠던데는 이유가 있으므로, 이러한 법의 시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의식 불명인 경우 가족 전원의 합의를 받아야 한다는 절차의 복잡성이나, 의료진이 환자에게 사망 선고와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회복 불가능성에 대한 완전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료진의 부담 증가와 같은 문제들은 연명의료결정법과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다.


 보완할 점이 없지 않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능한 순간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과 '본인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면 후자가 내 가치관에는 더욱 가깝다. 물론 반대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것도 결국 개인이 스스로 정의하기에 따라 달라질 테니.


 다만, 이제 우리는 자신이 그러한 회생 불가능의 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이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본인이 의식 불명의 말기 환자가 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평소 이에 대한 생각을 밝혀 놓는다면 가족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보다 까다로운 주제가 있다. 바로 의사조력자살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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