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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ug 20. 2018

고향을 여행하는 일

어떻게 변했을까,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고향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방문했을 때의 울림은 학창 시절 견학으로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가까운 사람에게 고향을 소개하려고 마산으로 떠났던 겨울, 그곳에서 3.15 민주묘지를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감동했지만 아무래도 울림이 더 컸던 쪽은 오히려 소개를 담당한 나였던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도 그때의 여행을, 마산이라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긴 도시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녀를 떠올리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립 3.15 민주묘지


여행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온종일 걸어보면 어떨까?



 주말을 이용해 근 반년만에 고향에 내려갔던 날, 그런 생각과 함께 발에 땀이 나도록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거리와 풍경을 바람 한 점 무심코 보내지 않는 여행자처럼 담아보면서.



 

 버스터미널이 자리를 잡고 있는 번화했던 시내 중심부는 가장 빠르게 변할 것 같지만 어쩌면 가장 그대로인 곳이었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무수히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기를 반복해도 그 혼잡한 거리가 주는 느낌은 익숙한 것 그대로였다. 좋아하는 식당은 다행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만족스럽게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시내버스에 오른다. 명확한 목적지는 없지만 버스는 나의 어린 시절과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향한다.



 가끔 공연을 보러 단체로 방문하곤 했던 아트센터에 들렀다. 곧 보러 가야 할 목록에 올라있는 뮤지컬 '시카고'나, 한 층의 전시관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그렇게까지 전시할 내용이 많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무민 원화전', 그리고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은 공연들이 한참이다.


'여기서 이런 것도 하는구나'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주 방문하는 도시가 아니다 보니 '셀럽'들이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가 여러 장 붙어있는 고향의 복합 문화공간을 보고 다소 생소한 기분도 들었다. 여기에 사는 동안에도 학교 행사 같은 이유가 없으면 방문했던 기억이 없는 곳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는 점도 의외였다. 미리 공연을 알아보고 주말에 시간을 보내면 참 좋을 것도 같은데 참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 고향에 대해 어쩌면 잘 알지 못한다는 의심도 조금씩 확인되기 시작했다. 태어나 자란 곳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아무리 가깝다한들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가치를 느낄 수 없는 법이다.


여행에 간식은 필수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니 금세 배가 고파왔다. 이럴 땐 한참 걷다가 잠깐 먹으며 쉬기를 반복하는 여행 방법이 최고. 잠시 요깃거리를 찾기 위해 인근 백화점의 푸드코트에 들렸다. 다양한 종류의 만두가 올라와있는 진열대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부담스럽지 않은 간식으로 딱이라 몇 가지 골라본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걸 맛이 아주 좋다. (이곳은 프랜차이즈긴 하지만) 역시나 입에 꼭 맞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여행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고, 몇 번이고 돌아갈 고향에 자주 방문하고 싶은 가게가 하나 생겼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고향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교 방문

 

 다시 걷기 시작하니 한 걸음마다 조금 더 익숙한 풍경이 다가온다. 3년을 다녔던 고등학교가 가까워질수록 기억 깊은 곳에 숨어있던 장면들이 하나씩 거리 위로 그려진다. 두발 검사에서 머리카락을 잘리지 않기 위해, 혹은 이미 잘린 머리카락 때문에 한숨을 내쉬며 미용실로 가던 길, 야자를 째고 (왠지 야자 뒤엔 '짼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몰래 PC방으로 향하던 길, 따스한 햇빛이 내리던 토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던 길, 그 수많은 길들 위에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모교를 방문하는 일은 늘 손쉽게 우리를 감상에 젖게 만들곤 한다.




 고향인 마산에는 어린 시절엔 꽤나 번화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많이 줄어든 것 같은 '창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따금씩 '망한 동네'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나도 학창 시절 한 번은 그 생기를 잃은 듯한 거리의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 창동을 오랜만에 다시 방문했다.



 밤이면 수많은 청년들이 모이는 번화가의 역할은 오래전에 다른 곳으로 넘겨주고, 망했다는 비아냥을 듣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한 것일까. 생기를 잃은 곳이라는 부족했던 기대와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거리가 활짝 여행자를 반겼다. 전보다 사람들도 조금은 많아진 듯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이 있다. 골목으로 펼쳐지는 각종 전시관과 카페들, '창동 예술촌' 사업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난 듯한데 마산을 떠나고 나선 한 번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아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향에 대한 관심이 식었지만 오래된 번화가는 여전히 사람들을 끌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망한 동네'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불렀던 것이 몹시 미안해지면서, 이곳을 걸으며 왠지 마음 한편이 따듯해진다. 내 고향의 한 곳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았기에.



 도시도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




 왠지 훨씬 더 조용해진 듯한 거리도 있다. 한 때 크게 불이 나서 까맣게 탄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냈던 북마산 가구거리는 이제 완전히 회복된 모습이지만 왠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고독해 보이기도 한다. 한적한 고향의 오래된 거리는 어느덧 많이 늙어버린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활기가 있던 곳에 평화로움과 조용함이 자리 잡은 그 모습 때문일까. 


 어쩌면 이 거리는 그대로인데, 친구들과 철 없이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사라졌기 때문에 익숙했던 곳에서 외로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여행하는 일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낸다. 추억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다. 더 활기차게, 혹은 더 쓸쓸하게 변한 모습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고 새로운 마음으로 익숙한 곳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가깝다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도시를 어쩌면 가장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마주하게 된다. 마술로 사기를 치는 영화 <나우 유 씨 미>에서 가까울수록 진실을 볼 수 없다고 했던가.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처럼, 고향에 대해서도 너무 가깝다고 생각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신 미술관에서 내려다보는 마산


 과연 우리는, 태어나 자라온 날들의 도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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