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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07. 2018

한 잔 하고 시작할까요?

사소한 여행의 이야기들

 서울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왠지 서울에 오면 순댓국이 먹고 싶다. 부산에는 맛있다는 국밥집이 수도 없이 많지만 서울에서 먹는 순대국밥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은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번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예 순대골목으로 직행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의 프레젠테이션 일정 상 여의도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었던 서울의 늦은 밤, 영등포 시장은 위치로나 먹거리로나 제격인 여행지였다.


 입구에 볼빨간 돼지가 올라가 있는 영등포 시장 순대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가게는 오래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돼지머리가 통으로 진열되어 있는 길목을 지나 지체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편육이 서비스로 나오는 바람직한 상차림에 먹음직스러운 빛깔의 순댓국이 나오자 한 잔 곁들이고 싶은 기분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의 여행 메이트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서울 여행, 한 잔 하고 시작할까요?



1000일 여행의 시작이 순대국에 소주라니, 그녀와 나는 왠지 웃음이 났다.

 

 공모전으로 인한 출장, 기다리던 서울 여행, 기념일 등 복합적인 상황에서 시작된 서울의 여로였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서울에 와있고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다 가면 될 일이다. '기념일이니까, 기다리던 여행이니까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해!'라는 생각 따윈 시작부터 집어치우고 끌리는 데로 움직였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의 여행은 어찌나 즐거운 일인지, 늦은 저녁의 소박함에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순댓국은 정말로 맛있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음식이란 딱 그 맛만큼 여행의 풍미를 더한다.


 유일하게 안타까웠던 사실은, 영등포 시장에는 치킨이 한 마리에 4천 원 이라거나 하는, 가볍게 즐겨보고 싶은 음식들도 많았는데 풍족한 순대국밥 집에서 이미 위의 용량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었다.



영등포 타임 스퀘어


 여행으로 영등포를 왔으니 시장에서 가까운 타임 스퀘어도 걸어가 보기로 한다. 한 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방송에 나온 뒤로 아주 유명해졌다는 영등포 시장 사거리의 포장마차를 지나니 금방 화려한 건물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며 신나게 구경을 하다 보니 문득 '서울 사람들이 보면 촌스러울까?'라는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다.


 물론 곧 아무런 상관도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상도 그러할지 모르는데, 낯선 여행지에서 마저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는 여의도로 향했다. 한강 공원에서 그 은박접시 라면에 맥주 한 잔 해보는 일이 또 서울 외지인들의 로망 중 하나 아닐까? 한강에 도착하자마자 역시나 술을 떠올렸지만 다행히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음을 기억했고, 곧 커피와 초콜릿 우유를 하나씩 든 채로 공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기가 한강 공원이구나-'


 라면과 맥주는 없었지만 역시나 기대만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부산에서 온 두 여행자는 강 건너편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광안대교와 마포대교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여기도 뷰가 이렇게 좋은데 마포대교도 광안대교처럼 화려하게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광안대교는 새까만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하니까 다리를 화려하게 꾸며도 예쁜 거지. 이렇게 불빛이 많은 도시가 배경인 마포대교는 그렇게 만들면 별로였을걸?"



"오- 그럴듯한데?"



화려한 게 장땡이 아니라는 깨우침의 순간. 그리고,



"그나저나 여기 참 좋다-"



 조금도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대화들, 떠오르는 데로 자유롭게 내놓는 감상들, 한강 앞에서 주고받았던 그런 사소한 여행의 이야기들은 왠지 유명한 관광명소의 경치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곤 했다.






  여행이 주는 설렘이란 질리지가 않는 것일까. 늦은 시간 도착해서 마땅히 묵을 곳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첫날부터 왠지 잔뜩 기대를 하게 된다. 순댓국에 소주 한 잔, 한강 공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시작된 서울 여행. 이번에는 또 얼마나 즐거운 기억을 쌓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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