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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08. 2017

복수의 칼날이 향하는 종착역

<파리 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파리 5구의 여인>은 아내와 딸, 그리고 직위와 명예 등 모든 것을 잃고 미국에서 도망쳐 프랑스에서 파리 생활을 시작한 남자 '해리 릭스'와 아름답지만 의문투성이인 중년의 여인 '마지트 카다르'라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러로 몰입도가 굉장해서 그저 재미있게 읽기도 좋지만 생각해 볼거리가 많기도 하다. 두 주인공 마지트와 릭스에게는 공통적으로 삶을 망쳐버린 '복수의 대상'이 존재하지만 둘은 그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관이 전혀 다르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소재는 단연'복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수단의 부재, 잔혹한 복수

 복수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마지트가 살아있을 때 저지른 살인 행위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신문사의 편집장이었던 아버지가 반정부 신문을 펴냈다는 이유로 헝가리 비밀경찰은 그녀의 어머니를 구타, 아버지를 살해했고 강제로 그 모든 과정을 마지트가 보게 만들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른 후에 또다시 남편과 딸이 뺑소니를 당하는 비극을 겪는데 이번에도 범인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돈으로 풀려나는 비극을 겪자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모든 인간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행하기 시작한다.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들은 내 가족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상황. 그리고 부모, 남편, 자식을 모두 잃고  혼자 남겨진 상황, 결국 마지트는 이성을 잃지만 과연 그 상황에서도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초인(超人)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마지트가 선택한 방식에 모든 독자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복수라는 선택 자체를 비난하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책을 읽다 그녀의 남편과 딸을 죽인 남자가 강도의 칼에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통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후에 그 범인이 마지트였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였기에 큰 충격은 아니었다.

 우리가 충격을 받게 되는 포인트는 마지트가 헝가리 비밀경찰을 살해하는 과정이다. 그들은 공산당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과연 '죽어도 싸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인간상이지만, 마지트가 그들을 묵어놓고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고 '안달루시아의 개'의 오프닝처럼 면도칼로 눈을 도려낼 때는 끔찍한 기분(루이 뷔니엘의 영화를 봤다면 더욱 선명하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인이 된 그 비밀경찰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도 그런 식의 살인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사회적인 처벌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참고 살아가거나, 혹은 자신도 죽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사회는 그들의 편을 들고 죄인은 죄를 빌지 않는데 용서라는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마지트의 살인행위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트가 겪은 것은 사회가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기도 하다. 그녀의 살인 행위는 개인적인 복수이자 그릇된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나는 '마지트의 살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마지트에게 말하기에는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살인행위를 이미 사회는 묵인해버렸다. 헝가리 비밀경찰의 눈을 면도칼로 도려내는 잔혹함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억지로 봐야 했던 딸에게 가해진 폭력이 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복수의 칼날이 향하는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연쇄 살인의 끝이 좋을 리가 없다. 딱히 좋은 결말을 기대하고 행한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타락한 사회가 만들어낸 악마

 <파리 5구의 여인>은 판타지다. 비극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지트는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가 해리 릭스를 만난다. 그리고 릭스의 복수를 대신하는 마지트와 엄격한 미국적 윤리관을 가진 릭스는 대립한다. 마지트와 릭스의 대립은 유럽과 미국의 가치관 대립, 그리고 한 개인의 원초적 자아와 초자아의 대립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릭스의 원초적 자아가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형(異形)의 존재가 된 마지트는 이제 릭스의 삶에 해가 되는 자들을 죽이거나 혹은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기 시작한다. 릭스는 막막했던 상황에서 벗어나지만 삶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마지트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후반부에 책을 읽으면서 공포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지트가 완전한 악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트는 릭스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릭스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인다. 릭스가 자신을 떠나려고 할 때는 그의 딸을 혼수상태에 빠뜨렸고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을 때는 그 여자의 어머니를 죽였다. 살아 있을 때는 그녀의 행동을 선악(善惡)이라는 흑백논리로 쉽게 구분 지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명백한 악(惡)이 되었다. 


 마지트는 타락한 사회가 만들어낸 악마다. 그러나 그녀의 복수가 무고한 사람을 행하는 것은 명백히 그릇된 것이다. 마지트는 릭스의 추궁에 '증거도 없으면서'라고 답할 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릭스를 모함한 롭슨의 삶이 마지트에 의해 무너질 때 우리는 통쾌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트가 정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릭스라는 타인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통제하려 했을 뿐이다. 타인의 삶을 대신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파리 5구의 여인>을 읽으며 우리는 바닥을 치는 막막한 릭스의 삶을 함께 느끼면서 그의 시선으로 함께 파리의 어두운 이면(裏面)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그의 심정에 공감하기도 하며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휘몰아치는 전개에 몰입하게 된다.


 결말 부분에서 릭스는 파리에서 4개월 동안 썼던 소설을 과감하게 버렸고 우리가 읽고 있는 <파리 5구의 여인>은 릭스가 마지트를 만난 후 새로 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이 사실은 릭스가 파리에서 홀로 썼던 글은 아닐까? 릭스는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은 삶 속에서 스스로 마지트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소설 속에서나마 자신의 삶을 되찾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어두운 사무실에서 홀로 밤을 새워야 했던 그에게 마지막 탈출구는 스스로의 글 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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