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한바퀴]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1. 부재
허공이 자유로울지도.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갈피를 찾기 어려웠다. 무언가의 부재가 느껴진다. 뭘까. 음, 뭐가 없길래 이렇게 한글을 내려놓기가 어려울까. 나는 한참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자박거리고 있다.
행위자의 부재려나. 늘 내 앞에서 ‘지금’을 실연해주던 누군가— 숨 쉬고, 움직이고, 소리를 내던 퍼포머가 없어서일까, 그 공백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비워진 곳에 머무는 이는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그리고, 펼쳐내고, 부르는 사람들일까. 연주를 하거나, 동작을 하거나, 노래하는 이들일 것이다. 누군가의 예술을 제 숨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사람들. 왜 그곳에 있는가. 그러게. 왜일까. 멋대로 추측해보자.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쁜 것을 마음 깊숙이 들여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생각보다 무언가에 일생을 바칠 때 거창한 이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파고드는 것 앞에서 속절없이 제 방 한 칸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작곡가가 있었는데, 어떤 안무가 있었는데, 어떤 그림이 있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하기로 했어. 그들은 이런 걸 만들어냈다? 나도 꼭 내 손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어.”
가련하고도 어여쁜 사람들. 어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가. 예술가가 누군가의 예술을 끊임없이 흠모하며 나아가는 그 발자취를 몇 개나마 따라가 보니, 내 세속적인 마음이 간질해질 때가 많다. 예술이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우리는 왜 이것을 감히 손아귀에서 내려놓지 못하는가.
답이 뭐겠나. 너-무 재밌으니까. 하루가 금방 지나가니까. 괴롭지만 이것이 곁에 없을 때보다는 살 만하니까. 내가 가장 ‘몰입’할 수 있으니까. 이유는 더 많겠지만, 이 글을 내려놓는 지금 내 곁에는 첨언을 해줄 당신이 없으니 내 세상의 이유들로 주석을 달아본다.
당신이 내놓은 시간을 기록하는 그 재미가 꽤 크다. 섣부르게 추측하고, 끊임없이 되묻고, 함부로 칭찬할 수 있어 좋다. 내 생각과 다르면 크게 속상해할 수도 있다. 나에게 이익도 손해도 되지 않는 타인의 것에, 내 일인 양 몰입해볼 수 있다.
누군가를 뚫어져라 쳐다볼 수 있다. 아예 외면해볼 수도 있다. 말 한마디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함께 웃을 수 있다. 방금까진 아무 인연도 없던 우리가 잠깐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전시를 보기 직전까지 나는 걱정했다. 늘 누군가의 예술을 그려내는 ‘현재’들만 감상해오지 않았던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퍼포머가 나타나 작품을 시연해줬는데, 여기에는 없다. 이미 완벽히 큐레이션된 전시장을 정해진 루트대로 걸어다니며 벽에 걸린 것을 구경하면 되는데… 그 점이 참 자유로우면서도 난감했다.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박물관이나 미술관만 가도, 압도적인 기세의 명화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 충분한 사전 지식을 쌓고 왔다면 많은 걸 배워갈 수 있을 텐데, 아는 바가 없으니 멍하니 그림 앞에 3~5초 서 있다가, 안내문을 잠깐 읽었다가, 동행이 있다면 “이런 그림이래.” “아, 그래…?” 하고 얼버무리는 것.
궁금한 전시여도 막상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 놓이면 뭘 기억해야 하나,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서성이게 된다. 오디오북이나 프로그램 안내서를 읽으면 되지 않냐 싶지만, 이상하게 잘 안 들어온다. 말솜씨 좋은 가이드와 함께하는 그림 여행이 아닌 이상, 그냥 제멋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향유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이 전시가 어느 정도의 의의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안 가기엔 아깝고 배울 것이 많아 보였다. 무엇보다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까지 600년 동안 서양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는데!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100년 동안 해외로 내보낸 적 없는 상설 컬렉션 25점을 한국에서 처음 공개하고, 일본 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28점이 서울에서 새롭게 공개된다니—그 사실이 내…가 아니라 내 친구가 매우 흥미로워할 것 같았다.
전시를 함께 다니던 그 친구와 마침 그날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감기로 만남이 통째로 취소됐다. 그게 16일, 일요일이었다.
출발 시간이 자유로워진 주말 아침, 침대에 뒹굴며 몇 시에 갈까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굳이 오전이나 낮에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을 처리하고—못했지만—저녁도 일찍 먹고 5시쯤 나가 입장 마감 전에 들어가 전시를 보고, 30분 정도 산책하고 집에 오자.
라고 생각했으나… 식사 중 나만의 작고 위대한 호랑이—엄마다—께 그 계획이 들켜버렸다.
어딜 혼자 놀러 가려고! 같이 가!
“네!”
2. 같이
뒷모습
커튼을 걷었다. 짙고 세련된—약간 쇼팽이 떠오르는—붉은 벽이 우리를 맞이했다. 둥근 금테 사이에 놓인 ‘masterpieces’ 글씨가 눈에 딱 들어와, 나는 얼른 핸드폰을 들며 외쳤다.
“엄마, 저기 서봐.”
원래 이런 기념사진은 남기고 보는 맛이 아니던가.
이날은 촬영 가능한 그림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구분되어 있어서 오히려 관람에 도움이 됐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끊임없이 엄마를 찍었을 테니… 집중력도 금세 흐트러졌을 것이다. 화가들의 서로 다른 화풍을 살펴보는 재미도 물론 있었지만, 전시를 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어머니는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딸이 생기고 나서인지, 그림을 보다가도 ‘촬영 가능’ 표시만 보이면 어김없이 “이거 찍어도 된대. 찍어.” 하고 일러주셨다. 물론 본인도 열심히 사진을 남기시면서!
“이것도 되네. 예쁘다. 찍어!”
“네!”
혼자 왔으면 어쩔 뻔했나.
눈맞춤
사실 전시에 오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길게 말했지만, 나는 은근히 믿는 도끼가 하나 있다. 누군가에게 작품 관람 방법을 아주 진하게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냐고? 바로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의 저자 비앙카 보스커 씨. 그만의 감상 꿀팁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작가는 말하길, 한 작품을 진–득하게 지켜보라고 했다. 저게 뭘까 생각하면서 눈도 맞춰보고, 모르겠으면 각도를 바꿔보고, 세밀하게 훑어보라고.
흑마법 같은 주문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아주니 나는 ‘대단한 기술력’ 앞에서도 쫄지 않을 수 있었다. 대범하게 신기해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단한 그림이네’ 하고 뒤로 물러서는 대신,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 그림과 눈을 맞췄다. 말없이 서 있는 그들을 두고 우리는 작은 만담을 벌였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네.
손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렸대.
이 꽃은 뭐니, 왜 이렇게 예쁘니.
네덜란드 사람이래.
누가 그렸어? 몰라—(이 사람이래).
왜 이렇게 화질이 좋니.
그러게 말이야.
스페인 왕자래. 귀엽다.
여성 화가란다. 눈이 다 닮았네.
엄마 여기 봐, 이 옷 좀 봐. 색깔 너무 예뻐.
(뚫어져라 감상하는 중)
옷감이 조명을 받아 생기는 결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갈색 브로치의 반짝임은 또 어떻고. 진주의 윤기, 손끝의 선홍색 표현은 어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그리고 저기—왕관도 있다! 액자는 또 왜 이렇게 고풍스러울까. 이걸 그대로 보존해왔단 말이야? 인류란… 정말…
어느새 우리는 그림 하나 지날 때마다 물음표를 열 개씩 띄워놓고 묻고, 대답하고 있었다. 액자 하나하나를 책장을 넘기듯 차근차근 훑어보고 있었다.
그림마다 숨겨둔 작가의 서명을 찾아보고, 오래된 그림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눈을 마주친 인물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광활한 풍경 속 아주 작은 사람들을 찾아 ‘윌리를 찾아라’를 하기도 했다.
그 고요하고 진중한 전시장에서 우리는 소근소근 버라이어티 쇼를 찍어버린 것이다. 어쩌겠나. 구경거리가 너무 많은 골동품 가게였는걸.
내가 바로크?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어디였을까? ‘공간’이라고 한 이유는, 각 시대가 공간과 색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화풍도, 그리는 대상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그림 하나만 꼽기엔 아쉬웠다.
이번 전시에서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은 구역은 붉은 색의 ‘바로크’였다. 에? 내가 바로크를? 바로크 시대의 하이든과 바흐를 그렇게 낯설어하던 내가, 미술에서는 바로크를 좋아한다고?
나도 모르겠다. 딱 ‘어, 이 그림 뭐지?’ 했던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안토니오 디 벨리스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다. 팔의 선, 뒤쪽의 극적인 그림자와 대비… ‘이게 뭐지?’ 싶어 설명을 읽어보니 ‘키아로스쿠로 기법(극적인 명암법)’이라 했다.
아, 이런 명암법이구나. 빛과 어둠이 이렇게까지 생생할 수 있구나.
이 작품만큼은 꼭 실물로 보길 바란다. 인터넷 이미지로는 내가 느꼈던 그 ‘어!’ 하는 순간이 절대 전달되지 않는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명암이 숨 쉬듯 번지고 있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서 그것을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이 걸린 곳 너머로 이어진 바로크 작품들 또한 좋았다. 유독 층고가 높았고, 묘하게 신실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쌌다. 시선이 오래 남는 인물들도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뚫어져라 나를 보길래, 어쩔 수 없이 그 시선을 1분 정도 받아냈다. 소리가 없어도 이렇게 강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림 옆옆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그려진 그림도 꼭 보시라. 붉은 벽지, 황갈색 액자, 짙은 검정 옷자락, 그 모든 색감이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로 끌어올렸다.
그 공간에서는 유독 음악이 선명하게 들렸는데, 알고 보니 라벨의 곡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아는 이름’을 만난 것뿐인데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친한 것도 아닌데, 익숙한 단어 하나에 마음이 괜히 들썩였다.
한 문장씩, 하얀 물감 하나
작품뿐 아니라 벽에 적힌 인물들의 한 문장도 오래 남았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낡은 붓들과 홀로 서서 주님께 영감을 갈구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이렇게 그려놓고는 평범한 사람이라니. 정말 천재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바로크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길의 하얀 벽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문장도 적혀 있었다.
“이성에게 버림받은 환상은 불가능한 괴물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성과 환상이 결합하면 예술의 어머니이자 경이의 근원이 된다.”
퍽 공감됐다. 사실 여기 걸린 작품들도, 이곳의 문장들도 다 이성과 환상이 결합된 결과물 아닌가. 음, 저 사람들이나 우리나 나름 바람직하게 살고 있네— 같은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크를 지나오니 확실히 그림이 달라졌다. 신앙 중심에서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담은 장면들로, 짙은 색감에서 조금 더 파스텔톤으로—조금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물론 옷감이나 피부 표현은 여전히 기가 막혔고, 그라데이션은 그야말로 ‘예술’이더라.
액자도 이전보다 단정하지만 한층 더 다채로워졌다. 잎사귀 문양, 열매 장식, 단정한 선의 프레임… 무척 다양했다.
전시의 마지막 연분홍 벽에 다다랐을 때, 나보다 훨씬 높고 기다란 캔버스에 햇살 아래를 흰 원피스로 걸어가는 여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치맛자락 위에 짧게 찍힌 하얀 물감 하나. 그 표현 하나로 햇살이 비치는 오전과 한낮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되니 신기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한 날씨가 느껴졌다. 그 온기를 조금 더 전해 받고 싶어 하얀 선만 오래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3. 기척
커튼을 걷었다. 하얀 벽지가 전시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다시 바로크 시대로 걸어 들어갔다. 아까 길게 눈싸움을 나눴던 그림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의 눈망울에 생기를 불어넣는 법을 아는가? 까맣게 칠한 동자 위에 아주 작은 하얀 점 하나를, 정확한 자리에 톡— 올려놓으면 된다.
왜인지 그 눈망울이 자꾸 생각났다.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이 걸렸다. 한 번 더 보고 가라는 기척을 주는데, 어찌 계단을 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시대를 역행했다.
마음에 걸린 작품과 마지막 인사까지 하고 나오니, 기념품 숍이 있었다. 엇—방금까지 멀찍이서 바라보던 그림들이 편지지에 인쇄된 채 진열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 집어 들었는데, 엇—뭔가 이상했다. 방금까지 ‘우와’ 했던 그림들이 그 안에서는 어쩐지 평범해 보였다. 분명 멋져 보였던 인물이었는데 여기선 엇, 살짝…무섭잖아? 싶은 느낌까지 들었다.
역시 작품은 전시장에서 봐야 하는 걸까. 하긴, 실제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의 그 압도감이 이 작은 인쇄면에 온전히 담길 리는 없지 않은가. 결국 뭐든 직접 두 눈으로 경험해야 하는 게 맞나 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19일 밤.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며칠이 지난 나는 아직도 그날의 전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보통 무난한 전시는 하루만 지나도 무엇을 봤는지 흐릿해지기 마련 아닌가. 어떤 그림인지도 모르고 가볍게 둘러본 정도라면 더 그렇고.
아직 내 안엔 막달라 마리아의 눈망울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의 시선이, 어두운 풍경 속 조그마한 두 사람의 몇 걸음이 남아 있다. 촬영 가능 표시가 뜰 때마다 내게 알려주던 이의 옆모습도, 어둑한 복도도, 라벨의 피아노 소리도 생생하다.
기억나는 장면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일요일 오후를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전시였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 개관 100주년, 즉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라 하지 않았던가.
이거, 대단한 생일 축하 파티에 우리가 이렇게 긴 호사를 누려도 되나— 하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클래식과 진하게 친구가 되고 자리를 잡으면, 얼른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들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키아로스쿠로 기법?
아, 미래에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