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함에 마음이 놓인다.
몇 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 들어가서도 진정이 안 됐다. 가족에게 가시 돋힌 말을 하고 괜한 짜증을 내고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 오늘 힘드니까 말 걸지 마-
언젠가부터 그러나 나는, 일 때문에 마음이 힘든 날 외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며 살짝 웃는다. 그럼 내 가족은, 내 과년한 딸래미가, 지독히 까다로운 내 언니가 내 누나가 오늘은 별일 없었나보네, 하며 무심히 인사를 한다. 그 무심함에 문득 마음이 놓인다. 어쩐지, 정말로 오늘의 그 지질하고 속상한 일들이 별일 아닌 것만 같아져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나름의 신중을 기한 일들이 어그러지는 순간, 누군가의 다짜고짜, 정말 맘 상하는 그런 일들. 뭐 어쩌겠는가. 살아가자. 별일 없다는 듯이. 때로 인생은 긴 것이고, 어느 책 제목처럼,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