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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건주 Nov 11. 2019

딴짓#5 : 억대 수익 벌어 본 떡볶이집 사장

딴짓 좀 해도 회사는 굴러가

자영업! 직접 해보지 않고 논하지 마라!


 16년 한해에 우리나라 치킨집 기준 하루에 매일 10개 매장이 개업하고, 그 중 7개는 문을 닫는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최근에는 경제 상황이 더 안 좋아졌으니 그 더 7개보다 더 많아졌을 수도 있다. 이러한 통계를 실감 못하겠다면, 주위 근처 가게를 잘 살펴보라. 작년 이맘때 그 점포에는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 ‘임대문의’라는 문구가 있는지? 안 망했다고 치자. 하지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치킨집의 평균 영업이익이 2,360만원, 즉 월 2백만원 수준 번다는 이야기고, 이는 중소기업 신입사원 평균 연봉 수준 밖에 안되는게 현실인 것이다.


 나와 같은 직장 나이 40세. 이쯤이면, 직장의 고용 불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런 고민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고민 “회사 때려치고 장사나 해볼까?” 나 또한 이런 생각으로 자영업을 쉽게 시작했다. 직장일처럼 열심히만 하면 수입이나 일자리가 유지 될 것이라는 자만감. 내가 사장이니, 쉬는 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직장생활보다 자유를 느끼며 살꺼라는 달콤한 미래. 하지만 나는 떡볶이집 사장이 되면서부터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떡볶이집 사장이 되다.


 회사 다니면서 창업 경험은 필요하다고 예전부터 느꼈다. 하지만 회사 월급 생활에만 익숙한 나는 ‘창업’이라는 단어 앞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퇴근 후 창업 관련한 서적을 닥치는데로 읽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창업 박람회가 열리는 곳은 참석했다. 그러던 와중에 창업 박람회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S 떡볶이를 알게 되었다. 보자마자 ‘바로 이 아이템이야’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가맹 계약을 하고 떡볶이 집을 오픈했다. 그러던 대망의 오픈날. 한시간이 지났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초조해 지기 시작할 무렵 첫 손님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니 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만큼 고마웠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일 것이다.

     

 그 후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매장은 한 두 테이블을 채우더니 불과 몇 시간이 안되서 가게 안에 사람이 꽉 찾다. 신기하게도 별도로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렇게 우여 곡절 끝에 장사 첫날을 마감 했다.

     

 첫날은 소위 ‘오픈빨’ 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첫날 하루 매출 100만원을 시작으로 매출은 점점 증가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2층 일본 선술집 복도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주말에는 가게 문을 열기도 줄을 서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소위 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 회사는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똑같았지만, 가게는 내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회사 밖에서 돈 버는 거 그리 어렵지 않다는 자만심마져 들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쉽게 시작하지 마라. 


 시간이 자날수록 손님은 넘쳐났다. 그리고 아마도 장사를 시작한지 6개월부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심이라고 하기보단 자만심에 가득찼던거 같다. 곧장 2호점을 내야겠다 생각했다. 그 때부터 인근 지역에 가게 터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자만심에 가득찼기에 2호점 정도도 가뿐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호점을 덜컥 계약하게 되었다. 자금이 부족했기에 조금 외진 곳에다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나의 자만심 앞에 장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1년도 안되어 2호점을 열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불행은 몰아서 온다고. 갑자기 매출이 줄어 들기 했다. 알고 보니, 가게 근처에 비슷한 종류의 떡볶이 집이 들어선 것이다. 우선 2호점 매장이 급격히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6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1호점 마져도 못 버틸 만하게 되었다. 인원을 줄이고 원가를 줄여봤지만 버티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픈한지 2년 만에 성공신화는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내가 망한 이유 세 가지


요식업 창업은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도 같다. 

나는 요식업을 하면서 2년 동안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그 연 매출 5억 되는 매장을 운영하는 대박집 사장에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본 빈털터리가 되었다. 나는 퇴사 후 너무 쉽게 요식업 하겠다고 생각하면 극구 말리고 싶다. 

일년안에 퇴직금 몇 억 날리는건 일도 아니다. 

그만큼 요식업 창업은 쉽지 않다. 그래도 퇴사 후 굳이 요식업에 도전하게 다고 한다면, 

내가 망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본 결과를 알려주고자 한다.

     

첫째, 나는 너무 유행에 민감한 아이템을 선택했. 

우리나라의 요식업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3대째 내려오는 우리 집만의 곰탕 맛을 낼 수 비법 없이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특히 묻지마식의 유행에 민감한 프랜차이즈를 선택했다면 백전백패일 것이다. 불과 몇 년전에 유행했던 음식점 브랜드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해 보면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둘재, 나는 너무 프랜차이즈를 믿었다. 프랜차이즈를 선택 하는 것은 장단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는 본사에 돈을 바치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경험이 없고, 창업의 두려움으로 유명 프랜차이를 선택하게 된다.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이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은 프랜차이즈 본사일 것이다. 우선 프랜차이즈를 가맹을 하면, 가맹비, 교육비를 몇 백만원을 지출한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본사에서 지정한 곳에서 한다. 또한 물품, 재료비 등을 본사를 통해서 구입해야하고, 일정 수수료 까지 매달 가져간다. 그리고는 프랜차이즈는 근처에 계속 매장을 오픈하기 떄문에 제살 깍아 먹다가 끝내는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셋째, 나는 너무 손익은 무시한채 매출에만 신경 썼다. 하루하루 매상만 신경쓰다보니, 얼마나 남는지 무심했다. 인건비를 너무 많이 썼다. 소위 대박집을 보면 가족들이 모여서 운영한다. 가족들은 힘들어도 한 가족이니 참고 견딘다. 하지만 남을 쓰면 힘들면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그냥 하루아침에 나가버린다. 특히 음식을 주방실장에게 의존하다가 주방실장이 하루아침에 그만 두게 되면 더욱 난처할 것이다. 이에 주인도 음식을 할 줄 아는건 기본이고, 인건비를 절감하며 가족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딴짓 중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뽑으라면 단연 자영업이다. 

그만큼 자영업은 고통스럽고도 어려운 일이다. 


며칠 전 대학 동창 P에게 연락이 왔다. 요새 회사 일이 힘들다고 한다. 

퇴직금과 모은 돈으로 아담한 커피숍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구체적인 준비가 없어보였다. 그냥 현재의 회사의 삶이 싫다는 것이었다. 

내가 답해준 결론은 냉정하리만큼 짤막했다. ‘친구야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야. 최대한 버텨라’ 라는 말고 함께 소주 한잔을 사주면서 돌려보냈다.


나는 인생 수업료를 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았다. 결코 자영업은 쉽게 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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