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나도 건물주
그래도,
우리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닙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40대는 조금 불쌍하다고요.
지금 40대라면,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말입니다.
IMF를 겪었고,
금융위기를 통과했고,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운 세대입니다.
회사 선배가 술 마시자고 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따라 나갔습니다.
술이 싫어도 마셨고,
야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말 출근도 당연한 시절이었고,
부장님 눈에 들기 위해
눈치성 야근과 회식은 기본이었습니다.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회식이 거의 없습니다.
야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야근을 꺼리고,
술자리를 굳이 만들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말도
MZ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는 삶.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굳이 마셔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술자리는 더 줄었고,
회식은 선택이 되었고,
야근은 예외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아주 빠르게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지금의 40대가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장이 되었거나,
팀장이 되었거나,
조직의 중간쯤에 서 있습니다.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 생각이 남아 있지만,
아래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예전처럼
“내가 해봤는데 말이야”라고 말하기엔
세상은 너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윗사람이 승진을 해야
내 차례가 왔고,
그래서 승진이 누락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과로 평가받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나보다 어린 30대
상사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게 잘못됐다거나
억울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인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40대의 자리는
조금 버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냥 40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아니고,
과거가 그립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너무 열심히 살았고
너무 많은 변화를
견뎌왔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회사 밖에서의 삶을
조금씩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회사가 전부였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를 쉽게
놓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닙니다.
그래서 40대는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회사 밖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은퇴 이후의 삶을
너무 늦게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질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떠오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대충 살지 않았고,
요령만 부리며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간들이
지금 당장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는
기초 체력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조금 불쌍한 세대일 수는 있어도,
헛되게 살아온 세대는 아닙니다.
지금 40대라면,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져도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 살아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