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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25. 2022

'아베의 죽음'이 '아베 시대의 종말'로 이어질까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 일본, 한국, 한일관계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만의 독특한 독서 방식을 피로한 바 있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남긴 저작을 모두 모아 한꺼번에 읽으면서 그를 추모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독서 추모'라고 할 수 있다. 존경하는 인물 여부에 관계없이 한 사람이 남긴 글과 저작만큼 그 사람의 전모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어려울 터이니, 숨진 인물을 평가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 보수세력, 극우세력의 상징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됐다. 그는 모두 두 차례에 걸쳐 8년 9개월 동안 총리를 지냈다. 전후, 전전을 통틀어 최장기 총리 기록 보유자다. 그는 또  98명의 의원이 속해 있는 자민당 안의 최대 파벌의 수장이었다. 이런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총리를 관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인물이었다. 

그의 총리 퇴임 뒤 정치적 영향력은,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다나카 가쿠에이에 견줄 수 있다. 다나카는 금권정치가 문제가 되어 1975년 총리직을 사퇴한 뒤에도 198년대 중반까지 최대 파벌인 다나카파를 이끌며 이후의 미키, 후쿠다, 오히라, 스즈키, 나카소네 등 5개 내각을 좌지우지한 '음지의 총리' 노릇을 해왔다. 아베는 퇴임 뒤 스가, 기시다 내각을 주무르며 다나카 이상의 영향력을 과시했으나 돌연한 죽음으로 더 이상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는 중단됐다. 

지금은 경계가 많이 흐려졌지만 다나카파(경세회)와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는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였다. 외교면에서 다나카파는 아시아 중시 차원에서 중국(대륙)을 중시하는 외교를 편 데 반해, 아베파는 반공전선의 강화 차원에서 대만을 중시했다. 아베파는 지금도 중국 봉쇄, 중국과 대만 충돌 때 대만 지원 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도 두 파는 결이 매우 다르다. 다나카파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서민에게 나누어 주면서 지지를 획득하는 '이익유도 정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다나카파의 이익유도 정치의 위력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아베파는 다나카파의 세력을 꺾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자민당을 부수겠다"는 구호를 들고 나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대표적인데, 그는 집권 내내 우정족, 건설족 등 자민당의 이익유도 장치세력, 즉 다나카파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런 노력이 시대의 흐름과 맞닿으면서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진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아베는 67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는 숨지기 전만 해도 10년 내지 20년은 더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최대 실수는 후계자를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리 '유훈 정치' 분위기가 강하다 한들 세월을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베의 돌연한 죽음 이후, 아베가 구축해 놓은 '아베 정치'가 지속할지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아베 이후 일본 정치는 '아베 지속'과 '아베 중단'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베 국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본 안의 찬반 논란이 그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베가 쓴 책을 다 읽지는 않더라도 아베의 정치에 관해 논한 책들을 들춰보는 것은 '아베 이후의 아베 정치'가 어떻게 흘러갈지 내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베 시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박문사, 남기정 엮음, 2022년 5월 19일)는 아베 죽음 이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은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서울대 일본연구소가 아베 정치가 정점에 이르던 2017년 기획한 공동연구 결과를 담았다. 한일의 내로라 하는 한일관계 또는 일본 연구자들이 각 분야를 나누어 집필했다. 아베 전성기에 연구를 시작했으나 이 책이 나온 시점은 아베가 퇴진하고 스가 내각을 거쳐 기시다 내각이 활동하는 때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유용성이 약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 기시다 내각의 성립과 운영에 아베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고, 앞으로도 아베 정치의 관철 여부가 일본 정치를 해석하는 가장 강한 열쇠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아베시대의 정치에서는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이  '아베 시대 자민당 우위 체제의 재구축 전략'을, 이정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일본 농업 이익유도 정치의 쇠퇴'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교수가 '저출생 고령화 시대 일본의 복지와 방위'를 주제로 아베 정치를 분석했다. 박 원장은 2012년 아베 시대가 다시 시작한 이래 자민당의 안정적인 지배가 야당의 분열과 여당의 승리 연합 구축, 유연하고 포괄적인 지지 동원 전력, 무당파층을 끌어들이는 정제 의제 설정 등에 서 찾으며 당분간 이런 자민당 우위 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이익유도 정치가 작동했던 농업 분야의 개혁이 총리실 우위 정치, 구조개혁이라는 시대 흐름 속에서 어떻게 쇠퇴해 가는가를 자민당 농림족과 총리실의 역학 변화에 주목해 분석했다. 남 교수는 아베 시대에 사회보장비에 견줘 방위비가 증가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궤적 속에서 보면 사회보장 우선으로 정책 경향이 변화하는 커다란 흐름 속의 작은 변화임을 여러 가지 통계를 통해 분석했다.

2부 아베 시대의 대외정책에서,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중국을 둘러싼 한일관계'라는 논문을 통해  탈냉전 이후 한중일 3국이 모두 수교함으로써 과거 냉전 시대와 달리 중일관계에서 한반도 요인과 한일관계에서 중국 요인이 중요해졌다면서, "결국 미중관계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괴리가 한일관계의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아베 정부의 미일동맹과 지구본 외교'라는 논문에서 아베의 외교정책을 '국제적 협조주의'와 '전략적 자율성'의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아베가 미국과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일본의 이익을 지키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의 고립주의 강화에 대비해 중국, 러시아와 독자외교를 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취했다고 말하면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도 아베 외교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미일동맹 강화를 국제협조주의의 틀로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베 외교가 한국에서 보듯이 한 방향으로만 경사된 것은 아니란 점은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고 본다.

3부 아베 시대의 시민사회와 운동에서 경제희 고마자와대학 강사는 아베 정권 시기의 일본 여론과 외교 안보정책을 비교했다. 경 강사는 이 글을 통해 정치권의 헌법 개정 여론이 일본시민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각종 여론조사 분석을 통해 보여줬다. 진필수 류큐오키나와연구소장은 아베 시대 이후 오키나와의 운동이 반미군기지라는 보수-혁신 대립 구도에서 자결권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일본-오키나와의 구도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추적했다.

이 책 서문에서 남기정 교수는 아베의 돌연한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아베 시대 일본은 후대 역사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사를 크케 둘로 나눌 때, 그 후반부를 지칭하는 시기 구분의 이름이 될 것이다"라면서 "아베 이전과 아베 이후를 구분하는 기준, 이를 확인해 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아베를 모르면 아베 이후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베를 아는 것이 아베에서 떠나는 가장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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