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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31. 2022

속속 드러나는 통일교와 일본 우파 정치인의 유착

아베 신조 암살, 통일교, 정치와 종교 유착

일본 우익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암살을 계기로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 보수 정치권과 통일교의 유착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미디어에 통일교과 연관 있는 정치인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일본의 정치권과 매스컴은 아베 암살 사건 발생 때만 해도 '우익 정치세력과 통일교의 은밀한 관계'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범인이 수사를 받으면서 사건의 배경에 통일교가 있다고 진술했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단체'라는 용어로 통일교의 이름을 덮으려고 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들이 말하고 주류 미디어들이 추수하면 진실도 덮을 수 있는 시대는 일본에서도 끝났다. 경찰이 '특정 종교단체'라고 설명하고 주류 미디어들이 이를 그대로 따랐으나, 이런 노력은 2~3일을 버티지 못했다. 특히, 60년대 말부터 통일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자민당은 당초 철저한 함구령을 내려 통일교가 표면에 나오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민당의 억제력이 미치지 않는 주간지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통일교라는 이름이 흘러나오면서 정치권도 미디어도 더 이상 통일교라는 이름을 은폐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공식적으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 기자회견을 통해 범인의 어머니가 회원이었다는 것을 밝힌 11일을 기점으로, 거의 모든 미디어가 특정 종교단체에서 '옛 통일교'로 표현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인과 통일교의 유착관계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일교는 1954년 '재림 예수'를 자처한 문선명(1920~2012)이 세운 교회로, 반공을 고리로 세계 우파 정치인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성장했다. 일본에서는 1964년 종교법인으로 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포교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좌파 학생들의 투쟁이 맹렬했던 1968년에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일본 우익의 거물들인 기시 노부스케, 고타마 요시오, 사사카와 료이치와 손을 잡고 국제승공연합을 세웠다. 이것이 일본 우익과 통일교의 첫 접점이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점차 반공을 매개로 한 접점은 약해졌다.


80년대 이후에는 정치와 관련한 일보다 이른바 '영감상법'이라고 불리는 물건 판매와 대규모 합동결혼식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통일교가 큰 주목을 받았다. 영감상법은 영계에서 고통받는 조상을구하려면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며 도장과 항아리, 묵주 등의 물건을 고가로 파는 상법을 말한다.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통일교는 최근 30년만 따져도 3만4537건에 1237억엔의 영감상법 피해를 일으켰다고 한다.


90년대 말부터는 영감상법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고 옴진리교 사건의 충격으로 눈에 띄는 정치 유착 활동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국제승공연합을 통해 맺어진 자민당 우파 정치인과 관계와 상호 호감은 이어왔다고, 종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마조노 스스무 전 일본종교협회 회장(도쿄대 명예교수)는 31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2010년 들어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통일교와 적극적인 상호 이용 관계가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정치인은 통일교에서 조직과 자금을 지원받고 통일교는 정치인의 지원을 지렛대로 교세 확장에 이용하는 상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통일교는 선거 때 열성 신도를 보수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우익 정치인의 선거 운동원으로 파견해 적극 지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아베 암살 사건은 일본 정치의 음습하고 추한 단면을 폭로하고 있다. 더욱이 통일교에 대한 일반 여론이 아주 나쁜 터여서, 통일교와 자민당 우파 의원들의 깊은 관계가 폭로되는 것은 자민당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자민당 의원 외에도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입헌민주당 등에도 일본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정치인이 드러나고 있지만, 자민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어 물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민당 우파 의원과 통일교의 유착을 드러내는 보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 그리고 이런 폭로로 일본 정치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일교와 자민당 의원들의 유착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자민당이 더욱 큰 곤경에 빠져들 것만은 확실하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이 아베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의 재판이다. 재판을 통해 아베의 암살과 통일교의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판적인 철학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자민당과 정권 쪽에서는 아예 암살범을 정신병자로 몰아 재판에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본의 <룬디>라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정부와 자민당은 범인이 깊은 정신병을 앓아 망상적으로 범행을 한 것이므로 통일교와 자민당을 연결하는 것은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그를 정신병원에 수감시켜 미디어 앞에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어쨌든 재판에 넘기지 않고 '유치장이나 병원에서 자살'이라는 스토리가 그쪽에게 가장 바람직한 전개가 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시나리오를 간파하고 떠들고 있으니까 그러기는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최근 암살범 야마가미에 대한 검찰의 정신감정을 받아들였다. 그는 오사카구치소로 옮겨져 11월 29일까지 4개월간 정신감정을 받는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없다.


 바야흐로 일본 정치는 아베 암살을 계기로 아베 찬양세력 대 아베 비판세력, 우파 정치인과 통일교의 유착 폭로 세력 대 유착 감추기 세력의 힘겨루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싸움에서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일본 정치의 향방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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