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더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가, 그래도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곤 했다. 12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아프고 힘들었다. 그 길고긴 시간 끝이 기쁨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엄마는 천국에서 웃고 계실 거라 믿으며 일상을 살아나간다.
아픈 엄마를 돌보는 딸.
이건 여태 나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내가 엄마를 전적으로 돌본 것이 아니었는데도, 옆동에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저 매일 엄마가 드시는 죽을 끓여다 드리는 게 마지막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제 돌볼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고 힘들다. 내가 어떤 모습을 취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살면 되는데 어떤 모습을 취해야한다는 말 자체가 몹시 어색하지만 내 마음은 그랬다. 감옥에서 오래 살다 나온 죄수의 느낌이 이러할까?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나 간극이 커서 어떤 게 나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예전의 나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사람을 좋아했으며 밝고 따뜻했다. 노는 것도 좋아했고 뭐든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술도 좋아했고 내가 생각하는 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다.
지금의 나는 상당히 부정적이고, 긴장을 잘 하며 아이들에게도 잔소리가 많다. 술은 이제 거의 마시지 않고 뭐든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노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뭘 하고 놀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 별로 없다.
이 정도면 사람이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또 예전의 내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땐 신이 나서 추진하다가 체력이 훅 떨어져서 골골대며 아프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 기분을 다 감당할만한 체력을 가졌었는데 이젠 그 반의 반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가 어느 정도 기분을 내도 되는지,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모습을 취해야할지, 이렇게 하면 그들이 싫어하진 않을런지.. 별 것 아닌 일상인데, 이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생각도 해봤지만, 이제 그건 별로 큰 의미가 없다. 예전의 내가 그토록 밝고 긍정적이었던들,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예전과 비교해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