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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14. 2024

보홀여행 2. 알로나비치에서 만난 사람들

알로나비치

얼마나 무거워져서 돌아가게 될까? 아침은 호텔부페, 점심은 졸리비 스파게티를 먹었다. 저녁은 여행패키지에서 주는 필리핀 가정식이라니 안먹을 재주가 없다. 여행의 반은 '먹는 즐거움'이라고들 한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천장낮은 지프니에 여행각 십여명이 나누어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지프니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인데 버스보다는 작고 지프보다는 좀 크다. 타고 내리는 문과 창문은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사방에서 들어온다. 출퇴근 시간이면 젊은이들은 차 뒤에 아슬아슬하게 잘도 매달려 간다. 여행객들은 낮은 천장에 익숙지 않아 탈 때마다 머리를 찧곤한다. 키작은 내가 그럴진대 길다란 사람들은 말해 뭐하랴. 마주보고 앉으면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래도 쇠파이프 손잡이가 매끈한걸 보니 새 차이다. 필리핀 정부가 잘 해서인지, 살기가 넉넉해져서인지는 몰라도 툭툭이며 지프니들이 옛날 내 기억보다 깨끗하다.

필리핀 가정식 4인분이 이미 식탁에 차려져 있다. 필리핀 잡채 빤식, 후라이드치킨, 돼지고기 꼬치, 새우튀김, 새우찜, 공심채 나물, 안남미로 지은 쌀밥과 달디단 붉은 주스가 나왔다. 우리식구들은 바닥이 보이도록 그릇을 싹 비웠다. 꼭 육체적인 노동으로만 대사가 되는것은 아닌가보다. 여행 다니며 긴장해서인지, 신비로운 대자연에 앞에 감동해서인지, 평소보다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졸리비 에서 먹은 음식은 일찍이 소화됐다.

우리 가족은 일행들을 뒤로하고 알로나 비치로 향했다. 보홀에서 제일 멋진 바닷가. 큰 길에서 바닷가 까지 나있는 길은 점점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번화가라고 했지만 기대한 만큼 북적이지 않았다.

바다를 향한 내리막 길에는 진주알을 파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사람은 눈을 맞추며 진주를 들이민다. 마음이 흔들려서  순간적으로 진주를 사버리면 진주는 서랍속 물건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거절을 했다. 이번 여행부터는 절대로 물건은 사지 않기로 다짐하고 왔다.

진주상인을 지나쳐 몇발자국 걷기도 전에 부끄러워 다가오지도 못하는 앳된 소녀를 만났다. 그녀의 손엔 마사지 팜플렛이 들려 있다.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바다에서 막대한 체력이 소모되는 물놀이를 한 후 마사지를 받는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동남아 여행중 꼭 들어있는 마사지코스.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가격과 서비스 종류를 물어 보았다. 시간내서 가 보겠다고 말했는데 그냥 하는 말인줄 그녀도 직감하는 눈치다. 그럼에도 친절한 눈빛이 곱다. 나중에 무슨 수로 그녀를 찾아 예약을 하겠냐마는 일단 정보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내가 어디를 가건, 무엇을 사건, 모두 흔쾌히 그러라고 하는 남편이 이야기 하는 동안 뙤약볕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그는 내게 툴툴대지 않는다. 가끔은 이 사람이 툴툴대는 것을 모르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내게서 배워갈지도 모르니 나의 툴툴거리는 횟수를 줄여볼까나! 특히 그는 해외에 나가면 나를 보호하는 보디가드로 자동변신한다.

내가 어디에서나 당당할 수 있는 힘은 80%가 그가 곁에 있어서다. 남은 20%는 순전히 나의 저돌적 똥배짱일뿐.

바다가 보였다. 무슨 색이라고 해야 맞을까. 시시 때때로 일렁이는 바다는 세상의 모든 푸른색을 갖고 있다. 블랙홀처럼 짙은 색부터 감청색,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윤슬, 새하얀 구름과 어울리는 파도까지. 푸른색들은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덩어리 처럼 넘실댄다. 자연의 색을 닮은 수많은 배들이 여유롭게 떠 있다. 필리핀 전통배 방카(Bangka)는 대부분 구름과 파도색처럼 흰색이다..

배 양편으로 새의 날개같은 모양의 대나무가 균형을 잡아준다. 작은 쪽배들은 날개를 지지대 삼아 달려간다. 날리는 물보라는 마치 수륙양용 비행기를 타고 있는듯 착각을 일으킨다. 가끔 엔진이 없이 노를 저어야 갈 수 있는 배도 있다. 그 배를 타게 되면 사공이 힘이 들까봐 나도 모르게 다리를 들기도 하고 엉덩이도 들썩이게 된다. 소용없는 일인줄은 잘 알지만, 그래도 맘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다. 엄마의 자궁안도 물로 채워져 있다. 눈 앞에 펼처진 푸르고 맑은 바다를 만나며 처음 아기가 생긴 태초의 물색은 푸른 색이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물은 아기를 보호하고 활동 공간을 제공해 준다. 어떤 모양도 모두 받아들이는 물은 작은 생명에게 어떤 불편감도 주지 않는다. 원래 사람은 태초부터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동물이지 않을까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특히 따듯한 물은 진통하는 여성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기를 낳고 있는 산모들은 진통을 받아들임으로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변화되는것을 경험한다. 일렁이는 물의 움직임은 호흡과 맥박에 맞춰 리듬을 탄다. 리듬을 받아들이면 통증은 확연히  줄어든다. 진통하며 물을 만나면 아기를 쉽게 낳는다. 물을 만날 수 없다면 상상하거나 물소리를 듣는것만으로도 효과를 본다. 그 동안 아기를 받으며 물이 통증을 다독여 주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지구에서 바다가 차지하는 면적과 우리 몸에서 물이 차지하는 퍼센트는 똑같이 대략70%이다.

신비하지 않은가? 자연은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인 것을 바다를 만나는 여행을 통해 깨닫는다. 자연앞에 고개가 숙여지는건 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감정이다. 물속이 다 드려다보이고 그 안의 생물들과 교감하며 아기를 낳는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러시아의 산모가 바다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과 집근처의 냇가에서 아기를 낳는 미국산모의 유튜브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파도와 닿아 있는 백사장은 북적이지 않아 더 좋다. 한가히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긋해진다.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나는40년 넘도록 조산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껏 여행을 하면서 단 한번도 "출산" 이라는 생각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멋진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아기를 낳고, 받는 상황은 머릿속에 남아있곤 했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났고 그 일은 조산원을 찾아온 산모의 출산을 돕는 거였다. 너무 먼곳으로 와서 출산을 돕지 못할 상황에서조차 그랬다. 이번 여행지 보홀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출산"이라는 단어를 잊어보려 한다. 나의 쉼은 또다른 에너지가 되어 애쓰며 아기낳는 산모들을 위해 쓰일것이다. 너른 바다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한다.

'쉬어도 돼,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럼에도 맑은 바다에서 아기낳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나, 영낙없는 조산사일 수 밖에 없다.


모래사장 위 야자수 그늘아래에 허름한 마사지가게가 있다. 자연 마사지 샵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보너스고 부드러운 모래가 침대다. 힘좋아 보이는 필리핀 마사지사 들의 손놀림조차 바람처럼 여유롭다. 비키니를 입은 서양여자, 웃통을 벗어저친 남자, 젊은이, 나이든 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마사지를 즐긴다. 인기가 있는지 빈 자리도 없다. 나는 부끄러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딜! 벌건 대낮에 온몸을 내놓고 한데 누워있어!' 할아버지가 나무라실 것만 같다.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디까지 자유로워도 될까. 좋은 사람은 예절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예절의 범위는 얼마만큼인가. 혹여 지키지 않아도 될 예절에 신경쓰고 사느라 원래의 색이 바래지지는 않았을까?  원색을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살면서 얼만큼의 원색을 드러내보이고 살았나. 머뭇거릴 이유를 점차 줄여도 될 나이가 되었다.

시선을 멀리두니 와글거리던  마음이 맑은 바다로 변한다. 파인애플쥬스와, 코코넛주스를 주문하고 야자수 나무그늘에 앉았다. 아무려면 어때!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알로나 비치에서 투어를 소개하는 현지인을 만났다. 자기 이름은 저스틴이라며 선뜻 손을 내민다. 한국 가이드는 현지인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살아본 경험이 있던 우리는 현지인에 대해 긍정적이다. 저스틴은 물만난 고기처럼 신이나서 이것저것 안내를 했다. 제일 하고싶었던 것은 고래상어를 가까이서 보는 투어라고 말했다. 온순한 고래가 코앞에서 헤엄을 친단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경이롭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순간을 경험할거라고 했다. 오케이!오케이! 노프라블럼! 을 연신 말하며 일정의 가격을 깍아주기도 했다. 길거리에 서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슬금 슬금 두 명의 진주 상인이 다가왔다 갔을 뿐이다. 저스틴과 꼼꼼히 가격과 장소, 시간을 정했다. 오늘밤에는 로복강 밧딧불 투어로 저스틴과의 투어가 시작된다.

돌아가는 날 낮동안엔 세계문화유산인 초코릿힐오르기,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안경원숭이(타르시어 원숭이)만나기 , ATV타기, 멘매이드포레스트 등을 가기로 결정했다.

아주 훌륭한 금액으로 계약을 한 후 선금을 지불했다. 계약을 성사시키는데는 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척척 알아듣고는 여기저기 싸인을 한다. 딸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젔다. 어디에 내 놓아도 잘 살아갈거라는 확신했던 딸이지만 역시나다.


도착한 첫날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다니. 더욱 알차게 보낼 여행에 신이난다.

이제 모든 일정이 짜여졌다. 작은 걱정들이 날아갔다. 내 몸 구석구석에 보홀이 차곡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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