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여행3
패키지여행은 소요되는 비용에 더하여 선택관광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서너 번 동남아 여행을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사가 정한 비용이 싸다고 해서 싼 것이 아님을, 결국 여행사의 비용보다 현지에 가면 선택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두세 배의 비용이 더 든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여행 비용이 다소 더 비싸도 노 옵션, 노 쇼핑을 하는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편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패키지여행은 선택관광을 하지 않을 경우 멀뚱히 다른 여행자들이 추가로 선택한 곳을 다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눈치 주는 가이드의 시선이 부당스러울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여행 기분을 망치기 십상이기도 하고 드물게 끈질긴 가이드를 만나는 경우는 은근히 진이 빠진다. 지난 중국 시안 여행이 그랬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계산을 잘하는지 결국 더하고 빼다 보면 금액은 거기서 거기다. 여행사의 안내서에는 선택관광은 필수가 아니라는 친절한 뉘앙스의 문구가 들어있긴 하지만 다녀온 후의 생각은 패키지여행을 덥석 물면 안 되는 거였다.
보홀 첫 번째 여행(작년 3월) 가이드는 현지 가격보다 터무니없게 이윤을 챙겼다. 말이 통하지 않고 낯선 초행길에서 가이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가이드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고 지갑을 열기도 한다. 몇 번의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여행을 즐겁게 하려면 가이드와 얼마큼의 좋은 거래를 하느냐에 따라서 여행의 질이 달라진다.
두 번째 보홀 여행의 가이드는 연륜이 있어 보였는데 훤칠한 키에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고민을 했던 선택관광의 여부를 묻기 위해 오전에 객실로 오겠다고 했다. 우리들도 잠들기 전 어떤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입을 맞췄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쉬는 여행, 첫 번째 여행에서 겪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는 여행을 하기로 모두 동의했다.
오전, 가이드와의 미팅도 순조로웠다. 나팔링 리프의 정어리 떼를 보는 것, 로복강크루즈를 타며 점심을 먹는 것, 마지막 날 보디 테라피가 추가되었다.
밤 비행기로 도착해서 고단했던 우리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헤난 계열의 타왈라 리조트의 조식은 딱히 특별나게 맛있는 음식은 없었다. 다만 열대과일을 먹는 것에 기대를 했다. 사철 자라는 바나나와 코코넛, 특히 망고와 파인애플, 수박 등을 맘껏 먹을 수 있을 거란 상상으로도 신났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우리나라에서 열대 과일을 맘껏 먹기란 녹녹지 않다. 아침 뷔페에서 다른 것은 아주 조금 먹었고, 대신 세 번이나 과일 코너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삼 일 동안 수박과 파인애플만 나올 것이라는 사실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다행히도 여행사에서 제공해 준 잘 숙성되어 맛이 끝내주는 망고 덕분에 열대 과일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있었다. 헤난타왈라 보홀리조트의 조식의 별점은 5점 만점에 2.5점을 준다. 숙소의 최고 장점은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유명한 알로나비치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거였다.
첫날이 지나간다. 여행의 좋은 점은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더하여 여기저기 골고루 산해 진미를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폭립(pork rip)이랑 비슷한 필리핀식 돼지갈비가 점심으로 나왔다. 보기엔 먹음직하지 않았는데 제법 맛있었다. 친구들도 와구와구 잘 먹는 것을 보니 괜스레 내가 흐뭇하다. 이상한 것은 여행객들은 지난해 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스킨스쿠버 강습장소로 이동했다. 피곤해서 참여하지 않고 호텔 수영장 야자나무 벤치에서 망중한을 즐겼던 지난 여행과는 달리, 이번에는 참여하기로 했다. 약 15분간 스킨스쿠버와 스노클링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까맣게 그을린 한국 여자 다이버는 다부져 보였다. 교육을 받은 후 스쿠버 연습을 할 수 있는 풀장으로 갔다. 함께 온 친구들은 나이를 잊은 듯 적극적으로 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함께 온 다른 여행객들(부부를 제외한 열 명 정도가 더 합류를 했다.) 보다 어찌나 열심이던지. 스쿠버 강사의 교육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의 눈길을 놓칠세라 안달을 하는 어린이의 눈빛이 그럴까. 카메라에 친구들의 모습을 담으며 참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간호사들은 못 말려! 그 누구보다도 적극성과 도전성이 강한 사람들이지 ' 그러나 물이 무서워 쭈뼛거리던 나는 결국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 스스로를 적극적인 사람이라 자부하고 살았었는데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활동적인 여자들이며, 나 못지않게 열정적인 친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뽀송한 옷을 입은 나와는 달리 친구들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고 첫 번째 선택관광인 나팔링 리프 (Napaling Reef)를 향해 지프니에 올랐다. (지프니 <Jeepney>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남긴 군용 지프 <Jeep>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산호초 사이로 수천 마리의 정어리 떼 ((Sardine Run)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여행안내서에는 노련한 스킨 스쿠버들이 멋있는 포즈로 정어리 떼와 찍은 사진들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직접 바닷속 정어리 떼를 만날 수 있을까? 바다에 떠있는 고래상어를 만났을 때처럼 경이로울까? 흔들리는 지프니 위에서 마음이 요동쳤다. 야자수 나뭇잎들은 내 맘과 다르게 바람 부는 데로 평화롭게 춤을 춘다.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바다 내음이 콧속을 간지럽히는 것이 벌써 바다에 도착한 듯 보였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벌써 도착한 일행들이 파도를 타며 정어리 떼를 만나고 있었다. 나도 장비를 갖추고 바닷가로 내려가 파도에 닿았다.
어머나! 무서워라!
보통 때 보다 오늘은 파도가 높았다. 구름이 낀 날씨라 바다색도 검게 보였다. 내가 만났던 지난해의 보홀 바다색이 아니었다. 바다가 잔잔해도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릴 판에 파도까지 한몫을 더하다니! 정말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우리를 데리고 다닐 남자 필리피노가 튜브를 가지고 첨벙 바다로 뛰어든다. 이미 친구들도 가이드의 튜브를 잡고 둥둥 바닷속 여행할 준비를 마쳤다. 너무나 즐거워하는 친구들과 머뭇거리는 나 사이에 출렁이는 파도가 있다. 절대로 친절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들어와 봐!' 친구들이 흔드는 손짓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지난 보홀 여행의 첫 스노클링 때처럼 용기를 냈다. 입으로 숨 쉬는 연습 세 번, 안경이 제대로 쓰여있는지 한 번 더 체크!
풍덩! 바다에 안겼다. 바다는 나를 몰아붙이는 듯 파도와 함께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또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이드의 손가락이 세시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들의 고개가 그쪽을 향했다.
우와!!! 어느 감탄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바다 앞에 너무나 미물인 나! 셀 수 없을 만큼의 수천 마리의 고기떼가 줄줄이 묘기를 펼치며 손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물 밖 세상이었으면 고함을 쳤겠지만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대로 커진 눈을 마주치며 엄지척을 하는 것뿐이었다.
파도가 높은 물 밖과는 달리 바닷속은 의외로 평온했다. 일렬로 한 곳을 향해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게서 느껴지는 경이로움이란! 삶의 어떤 경계선, 숨 못 쉬는 물고기와 숨을 쉬는 동물 사이의 이질감!. 친구들은 한 마리의 물고기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 한 번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물고기 떼가 사라지자 물속 5미터 아래에 스킨스쿠버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내자 두 명이 한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 발아래에 사람들이 있어 안심이 되자 웃기게도 감사함이 몰려왔다. 내가 혹시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저 사람들이 구해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바다는 서로를 향한 믿음을 주는 힘이 있는 게 아닐까. 나의 생각은 물고기들처럼 제멋대로 헤엄치고 있었다.
머리를 바닷속으로 담근 채 고개를 돌려 보니 깜깜한 바다 절벽이 보였다. 흠칫 소름이 돋았으나 그 깊은 곳을 자유로이 다니는 커다란 물고기와 거북이를 보는 행운을 만났다.
이번 두 번째 보홀 여행, 무서웠던 바다를 동경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