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Oct 13. 2023

결혼 13년 만에 알게 된 남편의 말

햄버거를 문 채 남편의 말을 먹는 아침


한글날 휴일이 월요일이었다.

주말을 다 쓰고도 또 휴일이 남았다. 여유는 더더욱 푸근한 아침을 만들었다. 아침 메뉴도 퍽 프리하게 고른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햄버거를 먹기로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늦잠을 자고 있고 일찍 깬 남편과 나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tv를 켰다. 한글날답게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인연을 다룬"천문"이라는 영화를 하는 중이다.

영화를 보다 남편과 나는 시대를 앞선 이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가족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를 뛰어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민낯을 마주하고 생활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사이 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착각에 예의나 배려를 삭제한 직진 언어의 남발 때문일까.


연애 때는 열정과 사랑에의 어린 단어들을 썼고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우리의 언어는 양육전선, 혹은 살림살이에 대한 언어로 바뀌었다. 역할이 많아지니 당연히 역할의 버거움을 토로하는 언어들이 많아졌을 테고 그 언어에 감정의 덧댐은 자칫 화를 부르는 위험한 언어로 돌변하기 쉬웠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시대를 앞선 장영실과 같은 인물이 느꼈을 갖가지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조받지 못한 앞선 생각들로 살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외로웠을지언정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산다는 용기는 어떤 것일까, 세종처럼 타인을 향한 생각과 행위는 도대체 어떤 추동에 의한 것인가. 인간으로 태어나 값지게 산다는 것은 어떤 류의 삶인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어 타인과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의 어려움, 온갖 탄압과 내쳐짐의 고난 속에서도 그 축을 허물어뜨리지 않는 힘, 그것을 지향이라 이름 붙일 때 지향의 끝에 발견된 자신만의 단독의 큰 기쁨(자쾌)에 대해 성실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하는 일이 책방에서 요일별 토론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남편과 나눈 대화에서 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이를테면 아주 밀착되어 있는 감정의 공유, 내지는 공감의 영역을 가진다는 데 대한 즐거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그 어렵다는 가족, 그것도 남편과의 대화에서 말이다.


연애 때는 나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에 감동해서 결혼했다면 결혼하고는 서로의 다름이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시간들이었다. 더 이상 무조건적 희생도 연애 때의 달콤함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언어의 감이라는 게 있다. 추상과 이상이 과감히 삭제되어 생활로 오는 민낯. 이건 필시 조율될 수 없는 것이겠다 단언했다. 서로의 정당성이 너무 확고해 네가 틀렸다는 식의 억지식 싸움에 피토할 때도 있었고 도무지 화성과 금성의 생명체인 것처럼 더 이상의 대화나 타협 자체가 불가한 존재들이구나. 꽉 막힌 벽 앞에서 하소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한 것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생각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당신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차분한 언어들로 표현된다는 것의 더없는 만족감, 우리가 이제껏 시행착오로 겪은 숱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우리도 이제 밀착 언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전율이 왔다.






말수가 적은 남편의 말을 끌어내기 위한 질문은 언제나 갑갑했다.


나는 운전하면 바로 음악을 튼다. 남편은 운전할 때 음악을 잘 켜지 않는다. 그런 남편을 정서적으로 메말랐다고 내 위주의 판단을 내리고 살았다. 말이 잘 없는 남편은 나의 그런 오류 가득한 당신에 대한 해석에도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원하니 말없이 음악을 트는 것 외에는 자신이 왜 음악을 틀지 않는가에 대한 변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이 답답했고 내 해석이 옳다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연애 12년 결혼 13년.


나는 샤워를 할 때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불꽃처럼 팡팡 터진다. 남편은 운전을 할 때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앞에 사람이 운전하는 습관을 보며 불꽃처럼 터지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음악을 듣지 않아도 생각의 불꽃을 켜느라 충분히 하다고. 음악보다 그 생각의 시간이 더 좋다고 했다.


나는 13년 만에 남편이 왜 운전할 때 음악을 틀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햄버거를 먹는 13년 가을 어느 아침에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뭐게?"

이게 무슨 말인가.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껏 내게 물어야 마땅한 남편의 말은 이런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구 선수는 누구게?


평소 같으면 우리 아이들 이름이나 죽고 못 사는 당구나 언제나 열심히 본능에 충실한 음식 관련 단어를 내었을 것이나 오늘 남편의 질문은 그런 정해진 답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나의 자쾌는 연장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말...... 말이라고? 힌트를 줘야지?'


"인간과 00" 이렇게 많이들 말하긴 하더라.


"뭐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연(自然)"이라고 했다.

풀벌레 소리, 나무와 하늘 바람 같은 자연, 시골살이 대한 동경의 한편인 그런 자연이 아니었다.


나는 나답고 너는 너 답고 모든 생명이나 무생물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그 자체의 말.

남편은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말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

그 언어의 존재가, 존재의 현상이, 그것을 찾아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이 "모두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그것"이라 햄버거를 문 입으로 놀라움을 자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말이 내 마음에도 꼭 든다.


그간 노력한 13년의 시간이 지나니 서로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건너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 좋은 시간을 아침에 눈떠서부터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하는 말이 가족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당신에게도 움직이고 나에게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햄버거를 문 채 당신의 말을 먹는 아침.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처럼 흐르게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